Friday, March 27, 2026

보랏빛 그리움


보라색이라 항상 시선을 끄는 채소,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나는 짙은 보라색 가지 서너 개를 집어 든다. 장바구니에 넣기 전 가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가까이 살며 같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 김미정을 떠올린다. 나의 기억 한 귀퉁이에 물에 잠긴 듯 조용히 있다가 가지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콕콕 쑤시며 떠오르는 친구다. 


미정과 나는 방과후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숙제한 후 놀며 항상 붙어 다녔다.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도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쉬워 서로의 집을 오가다 엄마의 부름에 다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가곤 했다. 엄마도 상냥하고 서글서글하고 착한 눈매를 가진 미정이를 좋아했다.

“많이 먹어라. 한창 클 때다.” 

함께 잘 지내며 무럭무럭 커가는 사이좋은 우리 둘이 대견한지 엄마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주고 간식도 항상 준비해 놓았다가 주셨다.


나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에 미정이 집에 들러 함께 등교하곤 했다. 하루는 미정이 집에 가니 미정이가 등교할 준비도 안 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마지못해 “왔니?” 했다. 그리고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미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나 혼자 학교 갈게. 나중에 와.”
나는 혼자 학교 가는 일이 점점 늘어났고, 미정은 지각하는 날이 늘어났다. 


고등학교에 갓 올라간 어느 날,

“서연아, 오늘 새로 이사 간 우리 집에 함께 갈래.” 

미정이가 나에게 물었다. 미정에게 일어난 큰 변화를 짐작하면서도 차마 묻지 못한 채 속만 태우던 참이었다. 미정은 버스를 갈아타고 내려 산꼭대기로 올라가면서 헉헉거리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어. 엄마가 바람나서 아저씨와 산다고 나보고는 아빠와 살래. 불쌍한 아빠를 도와 내가 집안일해야 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정은 산을 오르느라 힘들어 헐떡거리는 나에게 

“배고프지? 잠깐 앉아 있어. 내가 맛있게 밥해 줄게. 먹고 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미정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지 또래와는 달리 어린 태를 벗고 성숙했다. 나는 오만 잡생각 하며 툇마루에 앉아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동네를 보며 기다렸다. 한참 후, 미정은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김치 그리고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무친 가지나물이 놓인 밥상을 들고나왔다. 나는 가지나물의 물컹거림과 색이 싫어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나물은 꿀맛이었다. 

“원래 가지는 색이 낯설어 손도 안 댔는데. 너무 맛있다. 네가 이렇게 음식을 잘하는지 몰랐어.” 

“아무래도 엄마 없이 아버지와 살려니까 음식을 매일 해서 늘었나 봐.”

“힘들지 않아?”

나는 슬픈 눈으로 미정에게 물었다.

“아빠가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았어. 엄마와 아빠가 매일 싸우다가 엄마가 바람이 났어. 엄마가 너무 미워.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어. 난 아빠와 둘이 사는 게 좋아.”

미정은 큰 눈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착한 미정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며 나도 미정이 엄마가 미웠다.


나는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미정이가 만들어 준 가지나물 맛을 잊지 못하고 미정을 닮아 어둡고 슬퍼 보이는 보라색 가지에 손이 저절로 가며 집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지나물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좀 느긋한 날을 잡아서 한다. 너무 찌면 물러질까 봐 수시로 먼저 쪄진 것을 골라내느라 신경 쓰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물러진 것은 미리 꺼내어 식혀서 가늘게 쪽쪽 찢는다. 쪄져서 색이 바랜 가지에 마늘과 초록색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색이 살아난다. 후추를 뿌리고 간장을 넣어 색을 약간 죽인다. 참기름으로 윤을 내고 검은깨를 뿌려 마지막 처리를 한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열심히 만들어 보지만, 미정이가 만든 가지나물 맛이 아니다. 나를 텐 마루에 앉혀 놓고 부엌에 들어가 뜨거운 가지를 찢어 무치느라 미정이가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는 고추 조림, 김치와 배추된장국을 떠 놓고 남편 맞은편에 앉았다. 국에 밥을 말아 먹던 남편이 한마디한다.

“배추된장국이 진국이야. 최고의 건강식이지.”  

시래깃국을 먹고 자란 남편은 매일 된장국을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지 좋아한다. 남편의 ‘진국’이라는 말에 미정이 생각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 전이었다. 살만한 옷이 있나 보려고 종로 지하상가 옷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머, 너 서연이 아니야.”

“어머머, 미정아, 웬일이니?

“나 여기서 일해.”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미정이가 나에게 물었다. 

“너 진국이 생각나니?”

“아 그 잘생기고 남자다워 무척 인기 많았던 아이. 여자애들이 좋아했잖아.” 

진국이가 생각난다고 내가 말하자 미정이가 옛 시절이 그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학교 졸업하고 그 애 만난 적 있니? 내가 진국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혹시 너는 그 애 근황을 알고 있나 해서. 나야 이미 결혼해서 끝난 일이지만. 이따금 눈매가 착했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어머머, 너 결혼 했다고. 언제? 누구하고?” 

내가 놀라서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할 때, 남쪽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만난 경상도 남자하고.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예전에 너희 집에 가서 밥통에 있는 밥 다 먹고 빵을 또 먹어도 네 엄마가 한창 클 때라며 더 먹으라고 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 만나지 못한 미정이와 헤어지기 아쉬워 따라갔다. 어찌어찌해서 그녀가 사는 곳에 갔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미정이가 산다는 집 구조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서너 번 본 적 있다. 옥탑방으로 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있고 방 한 칸이 훤하게 보이는 구조였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정의 남편이 어두운 방 안에 무겁고 차가운 바윗덩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상냥하게 인사했다. 그는 슬쩍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저씨 인상이다.

“서연아, 방에 들어가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들어가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미정 남편이 몹시 화가 난듯해 무서웠다. 

“나 그냥 여기 있을게.”

미정도 남편 눈치가 보이는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문가에 멋쩍게 서 있었다. 미정이 저녁상을 차려 들고 남편 앞에 가져다 놓으려는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밥상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를 쏘다니다 온 거야.”

에구머니나! 나는 너무 놀라서 냅다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경상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나이는 밥상을 걷어차는 남자로 기억나다가 놀라 당황하던 미정의 표정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려온다.


미정의 남편이 밥상을 엎은 이후 우리는 서로가 연락하지 않았다. 둘 다 그 끔찍한 장면을 잊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구들로부터 미정의 경상도 남편이 명동에 남자 와이셔츠 가게를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서연아 나 미정이야.”

“어머머, 일이니. 반갑다. 너 잘 지낸다는 소식 들었어.”

행복에 넘치는 미정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흔들었다. 

“우리 만나자.”

나는 미정 부부가 자주 들른다는 소공동에 있는 으리으리한 중국집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 명품으로 빼입은 우아한 귀부인이 식당에 들어섰다. 미정이다. 원래 키도 크고 눈도 서글서글한 것이 크면 미인이 될 거라던 엄마 말 증명이라도 하는 듯 미정의 세련된 모습에 나는 놀랐다. 내가 배가 부르다는데도 음식은 계속 나왔다.  

“이왕 만났으니 밥 먹고 우리 집에도 가자.” 

한강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잘 꾸며진 모던한 아파트였다. 옥탑방 앞 부엌에서 밥상 들고 들어가던 미정의 모습이 과연 존재했었던가? 혹시 꿈에서 본 장면은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잘 꾸며 놓고 살았다.


나는,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 나서 L.A.에서 한동안 살았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식당에서 밥 먹고 나면 항상 팁을 놓아야 했다. 

”뭐 그렇게 팁을 많이 주는 거야?“

내가 남편에게 말하려다가 얼마 전 미정이가 남편과 여행하러 와서 7박 8일 서부관광 투어를 함께 했던 편치 않은 기억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미정 부부와 함께한 서부관광 투어 관광객이 캐나다에서 온 두 커플 빼고 대부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꼭 팁을 놓으세요. 미국에서는 팁을 놓아야 합니다. 호텔방을 떠날 때도 아침에 팁을 놓으세요.”

가이드가 하루에 한 번 이상 팁에 관해 이야기했다. 성질이 불같은 미정의 경상도 남편이 가만있을 리 없다. 하루이틀은 인상 쓰며 조용하다가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그가 갑자기 달리는 버스에서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이드, 너 입 다물어! 팁 이야기 그만하라고. 귀가 따갑단 말이야!"

고요를 찢는 비명 같은 고함이 달리는 버스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창 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서부의 붉은 대지는 평화로웠지만, 버스 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화약고 같았다. 미정의 남편은 핏발 선 눈으로 가이드를 쏘아붙였다. 

"너 입 다물면 내가 백 불 줄게. 알아들었어?"

그 순간, 버스 안의 공기는 수치심으로 무거워졌다.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은 죄 없는 창밖 먼 산만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내 곁에 앉은 아들이 내 옷소매를 당기며 속삭였다. 

"엄마, 나 같으면 입 다물고 백 불 받을래..." 


아이의 천진한 농담마저 무겁게 가라앉을 만큼 분위기는 참담했다. 나는 곁눈질로 미정을 보았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무릎 위에 놓인 제 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디마디 굵어진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광활한 미국 땅까지 와서도 남편의 폭언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있는 친구. 그 모습이 마치 물러 터질 때까지 삶이라는 찜통 속에 갇힌 가지 같아, 나는 차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지도 못한 채 마른침만 삼켰다.


몇 년 후 우리 가족은 남편의 주재원 임기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다. 미정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무척 반가워하며 말했다.

“만나자. 우리 집으로 와.”

미정의 피곤한 허스키 목소리가 걸렸지만, 만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불러주는 주소가 예전에 살던 곳이 아니었다. 예전 미정이 살던 아파트를 상상하며 찾아간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사이에 망했나? 걱정하며 들어선 곳은 상가 위에 있는 원룸 아파트였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 온 것은 찌든 술 냄새와 정체 모를 한기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던 그 화려한 거실은 어디로 갔을까. 사방이 벽으로 막힌 비좁은 원룸 안에서 미정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를 맞았다. “서연아, 왔니? 일단 들어와서 너도 한잔해."

오후의 햇살이 창백하게 비치는 방 한구석, 여덟 살 난 아들은 기계적인 효과음만 내뱉는 게임기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아이의 뒷모습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았다. 술잔을 든 미정의 눈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예전, 산동네 단칸방에서 나를 위해 가지를 무쳐주던 그 생기 있던 눈망울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너무 괴로워서... 마시지 않고는 못 살아."

“너 무슨 일 있었어?”

“나 이혼했어.” 

“어쩌다가.”

“그 미친 인간이 결혼 생활 내내 나를 힘들게 하더니 결국 일을 저질러 내 신세가 이렇게 됐다. 글쎄 내가 아이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하루 일찍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이 여자와 내 침대에서 그 짓을 하고 있더라. 나도 미친 년이지. 숨죽이고 그들이 하는 짓을 처음부터 죽 지켜봤다. 다 끝났을 때 문을 활짝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어. 이 인간들이 처음에는 움찔하더니 ‘어쩔래? 그런 눈깔로 째려보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기가 막히더라. 그년 또한 아주 당당한 태도로 안방 차지하겠다는 듯 나가지도 않고 버티고 있는 거야. 어떻게 그 장면을 보고 그 인간이랑 살 수 있겠니.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이혼했다. 우리 신혼 때, 네가 왔을 때 밥상 엎던 그때 헤어지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너 기억 나지 지하상가 옷 판매장에서 나 일했던 것, 내가 남자 옷 가게를 하고 싶다니까 가게 주인이 나를 잘 봐서 도매상도 소개해 주고. 밑천도 빌려줘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남편이 수단이 좋아 장사가 잘됐어. 돈을 손에 쥐자 자기가 해서 성공한 줄 알고 나를 업신여기고 잘난 척을 어찌나 하던지. 그놈 더러운 성질 맞춰가며. 헌신하다 헌신짝 됐다. 바람피우느라 자식도 찾지 않아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야.”


그녀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방 안을 떠돌았다. 남편의 외도, 침대 위에서의 당당한 배신, 그리고 무너진 자부심. 미정은 미친 사람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장님이 불빛을 찾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를 위로할 빛은 없었다.

한때 명품으로 치장했던 우아한 귀부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불길에 타버려 색이 바랜 보라색 껍질만 남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마켓에서 집어 들던 그 짙은 보라색 가지는 미정의 화려했던 시절이 아니라, 멍이 들어 시퍼렇게 죽어버린 그녀의 가슴색이었다는 것을.

Purple Yearning

The vegetable that always catches my eye with its deep purple hue—whenever I visit a Korean market, I find myself picking up three or four dark eggplants. Before placing them in my cart, I turn them over in my hands, and my mind drifts to Kim Mi-jeong, my best friend from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She is a memory that usually sits quietly in a corner of my heart, like something submerged in water, but the sight of an eggplant pricks at my chest and brings her back to the surface.

Mi-jeong and I were inseparable. After school, she would come to my house to eat, do homework, and play. Even after spending the entire day together, we hated to part ways, walking each other back and forth between our houses until our mothers finally called us in for the night. My mother adored Mi-jeong for her gentle, easygoing nature and her kind eyes. "Eat up. You're both at the age where you're growing fast," my mother would say, looking proudly at the two of us growing up well together. She always kept cold drinks and snacks ready in the fridge for us.

Every morning, I would stop by Mi-jeong’s house so we could walk to school together. One day, I arrived to find her still under her covers. "Oh, you're here?" she muttered reluctantly, making no move to get ready. She avoided my gaze with a dark expression, clearly not wanting to talk. I sensed something had happened but didn't press her. "I'll go to school alone today. Come later," I said. Those solo walks became more frequent, and Mi-jeong’s tardiness began to pile up.

Shortly after we started high school, Mi-jeong asked me, "Seo-yeon, do you want to come to my new house today?" I had sensed a great change in her life but hadn't dared to ask, feeling only a lingering anxiety. As we changed buses and began the long, panting climb toward the top of a steep hill, she finally spoke. "My parents got divorced. My mom fell for another man and moved in with him. She told me to live with my dad. He’s so pitiful; I have to stay and help him with the housework."

The house was empty when we arrived. Seeing me breathless from the climb, Mi-jeong said, "You must be hungry. Sit for a moment. I'll make you something delicious." As she headed into the kitchen, she looked different—the childishness was gone, replaced by a mature air of someone who shouldered the burden of a household. I sat on the veranda, lost in a whirlwind of thoughts, looking down at the neighborhood sprawling far below. After a while, Mi-jeong emerged with a tray: freshly steamed white rice, kimchi, and a bowl of steamed eggplant seasoned with chopped green onions. I had always disliked the mushy texture and strange color of eggplants, but I couldn't refuse her sincerity.

To my surprise, it tasted like heaven. "I usually never touch eggplant because the color is so strange, but this is delicious! I didn't know you were such a good cook," I exclaimed. "I guess I had to learn quickly, living alone with my father," she replied. "Isn't it hard?" I asked, my eyes filled with sadness. "My dad’s business wasn't doing well. They fought every day before my mom left. I hate her. I never want to see her again. Watching them fight was harder than this. I prefer living just with my dad." She wiped the tears from her large eyes with the back of her hand and gave me a faint, forced smile. I felt a surge of resentment toward her mother, wondering why such hardships had to fall on someone as kind as Mi-jeong.

Even now, whenever I go to a Korean market, I cannot forget the taste of the eggplant dish she made for me. My hand instinctively reaches for those purple vegetables that look as dark and mournful as she did. Making seasoned eggplant takes time, so I save it for a day when I feel patient. I constantly hover over the pot, opening and closing the lid, worried they might get too mushy. I pick out the pieces as they finish, let them cool, and tear them into thin strips. The faded color of the steamed eggplant comes back to life when I add minced garlic and bright green onions. I add soy sauce and black pepper, then finish it with a coat of shiny sesame oil and a sprinkle of black sesame seeds. I try my best, as if painting a masterpiece, but it never tastes like hers. My heart aches thinking of young Mi-jeong in that tiny kitchen, hurriedly tearing hot eggplants for me while I sat waiting on the veranda.

One evening, I sat across from my husband with a spread of braised peppers, kimchi, and soybean paste soup with cabbage. "This soup is the real deal (Jin-guk). It’s the ultimate health food," my husband said. Having grown up on dried radish leaf soup, he never tires of soybean paste soup. His use of the word Jin-guk—which also means a person of genuine, deep character—suddenly brought back a memory of Mi-jeong.

It was shortly before I graduated from college. I was browsing a clothing stall in the Jongno underground shopping center when a woman called out, "Oh my gosh, Seo-yeon? Is that you?" "Mi-jeong! What are you doing here?" "I work here!" We hopped up and down, holding hands in excitement. In the middle of our catch-up, she asked, "Do you remember Jin-guk?" "Oh, that handsome, manly guy who was so popular? All the girls liked him," I recalled. Mi-jeong looked nostalgic. "Have you seen him since graduation? I used to like him so much. I wondered if you knew how he was doing. Not that it matters—I'm already married—but I still think of those kind eyes of his sometimes." "Married? Since when? To whom?" I asked, stunned. "To a man from the Gyeongsangdo coast. I met him while traveling after my college entrance exams. Come over to our place for dinner. I never forgot how your mom used to tell me to eat more because I was growing, even after I'd finished all the rice and bread in the house."

I followed her, unable to let her go so soon. I don't remember exactly where she lived, but the layout of the house is vivid. It was a "rooftop room" (oktapbang) like the ones in dramas—you open the door and the kitchen and single room are all visible at once. When we entered, her husband was sitting in the dark room like a heavy, cold boulder. "I ran into an old friend and brought her home," Mi-jeong said. "Hello," I greeted him brightly. He gave me a sidelong glance and said nothing. He had a frightening, intimidating look about him. "Seo-yeon, go sit in the room," Mi-jeong whispered. But there was nowhere to sit, and the man’s palpable anger terrified me. "I’ll just stay here," I said, standing awkwardly by the door.

Mi-jeong moved busily in the kitchen, clearly walking on eggshells around him. The moment she brought the dinner tray to set it down in front of him, the man suddenly stood up and kicked the table across the room. "I’m starving to death! Where have you been wandering around?" he roared. I was terrified. I bolted out the door and ran all the way to the bus stop. For a long time, that Gyeongsangdo man lived in my memory as the "table-kicker," but whenever I thought of Mi-jeong’s face in that moment of shock and shame, my heart bled for her.

After that incident, we lost touch. Perhaps we both wanted to forget that horrific scene. Later, I heard through old friends that the Gyeongsangdo husband had opened a men's shirt shop in Myeongdong and made a fortune.

Years later, my phone rang. "Seo-yeon, it’s me, Mi-jeong." "Oh my! How have you been? I heard you were doing well." Her voice sounded vibrant and happy over the phone. "Let’s meet up." I waited for her at a lavish Chinese restaurant in Sogong-dong. An elegant woman dressed in luxury brands walked in. It was Mi-jeong. My mother had been right; she had grown into a stunning, sophisticated beauty. Even though I told her I was full, the expensive dishes kept coming. "Since we've finally met, let's go to my house after dinner." She lived in a modern, beautifully decorated apartment at the end of the Han River Bridge with a sweeping view of the water. I wondered if the girl from the rooftop room had ever really existed, or if I had dreamed it.

Later, my husband was stationed in Los Angeles, and we lived there for a while. One time, Mi-jeong and her husband came to visit and joined us for an eight-day tour of the American West. It was an uncomfortable memory. Most of the tourists were from Seoul. The tour guide repeatedly reminded everyone: "Please make sure to leave tips at restaurants. In America, you must tip. Also, leave a tip in your hotel room each morning." The guide mentioned it at least once a day, which was bound to provoke Mi-jeong’s hot-tempered husband. After a couple of days of silent glowering, he suddenly stood up on the moving bus and screamed. "Guide! Shut your mouth! Stop talking about tips! My ears are ringing!" The scream tore through the silence like a blade. Outside, the red plains of the West were peaceful, but inside the bus, it felt like a powder keg. "If you shut up, I'll give you a hundred dollars. Do you understand?" The air in the bus grew heavy with collective shame. Other passengers stared out the windows at nothing, avoiding eye contact. My son, sitting next to me, whispered, "Mom, if I were the guide, I'd just shut up and take the hundred bucks..." Even his innocent joke couldn't lift the grim atmosphere. I stole a glance at Mi-jeong. She was staring blankly at her hands in her lap. Her knuckles were thick, and her fingers were trembling slightly. Even in the vastness of America, she was still trapped in the narrow prison of her husband’s verbal abuse. She looked like an eggplant trapped in a steamer until it was bruised and broken. I couldn't even bring myself to pat her shoulder; I just swallowed my dry spit.

A few years later, my family returned to Seoul. I called Mi-jeong. She sounded genuinely happy to hear from me, but her voice had grown hoarse and tired. "Come to my house," she said. The address she gave me was not the luxury apartment by the river. It was a studio apartment above a commercial building.

The moment she opened the door, I was hit by the smell of stale alcohol and an unidentifiable chill. The grand living room with the river view was gone. In a cramped, cluttered studio, Mi-jeong greeted me with disheveled hair. "Seo-yeon, you're here? Sit down and have a drink." In a corner, her eight-year-old son was glued to a game console, emitting mechanical beeps. He looked like a ghost. Mi-jeong’s eyes were bloodshot. The spark she had while seasoning eggplants in the mountain village was gone. "I'm in so much pain... I can't live without drinking," she confessed. "What happened?" "I got divorced." "How?" "That crazy man made my life miserable the whole time, and finally, this happened. I went to my parents' house with the kid and came back a day early. I found him in my bed with another woman. I must be crazy, too—I just stood there and watched them. When they were finished, I walked in. They flinched at first, but then they just looked at me as if to say, 'So? What are you going to do about it?' The woman acted like she owned the place. How could I live with him after seeing that? I divorced him immediately."

She continued, her words like sharp fragments of glass. "I regret not leaving him back then, that day you came over and he kicked the table. Remember when I worked at the underground mall? I wanted to start a men's clothing business, and the owner helped me out. My husband had a knack for it, and we made a lot of money. But as soon as he had cash, he acted like it was all his doing. He looked down on me and treated me like garbage. I gave him everything, and I ended up like a discarded rag. He doesn't even look for his own son because he's too busy playing around. He’s less than an animal."

The elegant woman in luxury clothes had vanished. In her place sat a woman whose purple skin had been scorched and faded by fire. It was then I realized: the dark purple eggplants I picked up at the market weren't a reminder of her "royal" or colorful times. They were the color of her heart—bruised, battered, and turned a deathly shade of violet.

Saturday, August 30, 2025

마치 어제 일처럼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네가 한창 커가던 어느 날, 네 가슴에 묻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던 말 기억하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요.’라는 소리로 들려 마음이 묘해지곤 한단다. 내가 늙는다는 것이 서럽다기보다 네가 잘 자라준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너는 그린포인트 브루클린에서 9파운드 8온스라는 당당한 무게로 태어났지. 그 주 병원에서 가장 크게 태어난 아이였어. 간호사가 내 품에 너를 안겨주며 걱정하는 눈빛을 거두지 못하더구나. 100파운드도 안 되는 가냘픈 내가 커다란 너를 안고 일어나려 할 때마다, 아이를 떨어뜨릴지 모른다며 꼭 침대에 앉아서 안으라고 성화였지. 퇴원하던 날, 그 간호사가 내게 남긴 의미심장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해. “네가 아이의 보스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너의 보스로 만들어서는 안 돼.”

화가 부모를 만나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너를 좋은 옷, 좋은 음식으로 입히고 먹이지 못했지. 갖고 싶은 장난감도 못 들은 척 넘어가기 일쑤였다. 너는 공원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았고, 집에서는 냄비나 식기류를 장난감 삼아 놀았어.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 아빠가 쓰던 물감을 찍어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구나. 우리가 그리면 너도 그렸고, 붓을 쥐면 기어이 붓을 빼앗아 네 세상을 펼치곤 했지. 집 안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너는 그렸어. 종이가 없으면 볼펜으로 냅킨에, 영수증에, 비닐봉지 위에도 네 흔적을 남겼단다.

선으로 시작된 네 그림은 원과 사각형을 거쳐 공룡이 되고, 바닷속 상어와 숲속의 호랑이로 변해갔지. 부드러웠던 선들은 어느덧 거칠고 강렬해져 탱크와 비행기가 교전하는 전쟁터가 되었고, 너는 쉴 새 없이 입으로 폭격 소리와 총소리를 내며 그 세계에 몰입하곤 했어. 우리는 단 한 번도 너에게 그림을 가르치거나 간섭한 적이 없단다. 그저 네가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곁에 다양한 재료를 놓아줄 뿐이었지. 가끔은 내 그림 한 귀퉁이에 네 그림을 얹어 멋진 합작품을 만들기도 했던 그 시절이 참 그립구나.

사춘기가 되며 만화에 빠진 너는 라구아디아 예술 고등학교에 당당히 합격했지. 당연히 미술을 전공할 줄 알았는데, 너는 뜻밖의 말을 내뱉었어. “그림은 교육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예술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어요. 난 화가들이 싫어요. 실속 없이 폼만 잡는 루저(loser) 같거든요.” 네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기에 엄마는 씁쓸하면서도 네 뜻을 존중했단다. 예술과 거리가 먼 전공을 선택했던 네가, 대학에 가서 다시 드로잉과 사진을 배우고 영화를 부전공하며 새벽까지 블로그에 그림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어느 날 “화가가 가장 쿨한 직업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엄마 마음이 어땠는지 아니? 반가우면서도 짐짓 심술이 나 “이제 와서 전공이라도 바꾸겠다는 거니?”라며 쏘아붙였지만, 내심 방황하는 너를 보며 고민이 깊었단다. ‘어디서 시작했느냐보다 어디서 끝맺느냐가 중요하다’는 화가 마를렌 뒤마의 말처럼, 너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아빠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내가 직장을 잡으려 하면 너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며 질책하곤 했지. 그래서 나는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너를 외롭게 하지 않는 엄마가 되려 애썼어. 다만 엄마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요리가 귀찮아 달걀부침에 스팸만 자주 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너는 그게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미안하면서도 참 고맙더구나.

그 시절 우리는 참 가난했지. 아빠와 엄마의 학위로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고, 우리 역시 너처럼 붓을 놓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으니까. 텔레비전도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아빠가 길가에 버려진 흑백 TV를 주워 왔어. 화면은 나오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화면만 보며 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 그러다 또 운 좋게 비슷한 TV를 하나 더 주워 왔는데, 이번엔 화면은 비가 내리듯 지지직거려도 소리는 잘 나왔단다.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비 내리는 화면 쪽에는 수건을 덮어씌운 채 소리를 들으며 TV를 보던 우리 모습, 지금 생각하면 참 애틋한 풍경이지?

형편이 조금 나아져 작은 소니 TV를 샀을 때, 일주일도 못 가 도둑이 가져갔던 일도 기억나니? 이웃은 앞집 마약 중독자가 훔쳐 갔다고 일러줬지만, 해코지가 두려워 우린 아무 말도 못 했어. 다시 TV를 살 돈도 없었지만, 사봤자 또 훔쳐 갈 게 뻔해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TV 없이 살았단다. 매년 연말 LA 할아버지 댁에 가면 네가 TV 앞을 떠나지 못하던 모습에 할아버지는 결국 TV를 사서 비행기에 실어 보내주셨지.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어. 훔쳐 갈 게 하도 없으니 도둑이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마시고 화풀이로 가구를 다 내동댕이쳐 놓았었지. 그 기억 때문일까? 성인이 된 네가 강아지 나이키를 산책시키다 멀쩡하게 버려진 TV를 집으로 주워 왔을 때 엄마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단다.

동네 성당 옆 맥도날드를 지날 때마다 간절하게 성호를 긋던 어린 너의 모습도 선하구나. 해피밀을 먹고 싶어 조르지는 못하고 그저 성호를 긋기만하던 그 작은 등. 그때 엄마는 정한수를 떠 놓고 비는 심정으로 네 곁에 서 있었단다. 이제는 비싼 레스토랑에서도 너를 대접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니. 그 시절 엄마의 형편을 미리 알고 보채지 않으며 잘 자라준 네가 참 대견해.

한글 학교 보낼 돈이 없어 아빠가 벽에 칠판을 붙여놓고 가르칠 때, 너는 짜증을 내며 한국말 배우기 싫다고 칭얼댔었지. 그런데 얼마 전 네가 전화 했길레 물었지. “왠일로 요즈음 전화를 자주하니?” “한국말 잊어버리지 않게 엄마와 연습 하려고요. 엄마, 한글말 잘 가르쳐줘서 고마워요.”라고 했을 때, 나는 몰래 눈물을 훔치며 기뻐했단다.

사춘기 시절, 네 외모에 불만을 터뜨리며 엄마 아빠의 나쁜 점만 닮았다고 원망하던 너를 위해 엄마는 아껴둔 쌈짓돈을 풀었지. 여드름 약을 사고 치아 교정을 해주고, 좁은 방에서 게임만 할까 걱정되어 여름마다 해외 봉사활동을 보냈어. 평소와 달리 돈을 쓰는 엄마를 보며 “우리 집 망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던 너의 눈빛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비록 형편이 어려워 악기나 운동 레슨은 제대로 못 시켰지만, 뉴욕시 수영장과 테니스장, 학교 밴드부를 전전하며 엄마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단다. 가끔 네 방에서 들려오는 맑은 기타 소리는 그때의 힘듦을 씻어주는 나의 위안이야.

기억나니? 어릴 때 수영장에 가다가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급한 마음에 스톱 사인을 지나치다 교통사고 난 것. 보이스카우트에 가다가도 네가 차 뒤에 앉아 ‘엄마~’ 하고 부르자 갑자기 차를 멈추는 바람에 뒤 차가 들이받는 사고를 냈던 것도? 병원에 누워 있으니 아빠가 놀라서 달려왔잖아. 너의 일이라면 언제나 쿨하지 못하고 도마 위 생선처럼 팔딱거리며 유난떨던 엄마를. 미안하다. 아들아. 쿨하지 못했던 엄마를.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네 일이라면 자꾸만 열이 오르는 이 ‘새끼 타령’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구나.

“엄마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어제 네 방문을 받고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 피곤해 누워 있다가도 네 전화 한 통에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후다닥 저녁을 차려내게 되더구나. 너는 나를 일으키는 용기이자 행복 그 자체란다. 바쁜 너에게 자주 오라 가라 하지는 않으마. 오면 반갑고, 오지 않아도 섭섭지 않으니 그저 네 삶에 충실하며 행복하거라.

네 외할아버지는 방과 후 집에 오는 버스 정류장에 엄마를 마중 나오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학교 이야기를 들려달라 하셨지. 엄마 손은 늘 부드럽고 푹신한 할아버지 손안에 있었다. 지금 우리가 걸을 때 네가 잡아주는 너의 손도 할아버지 손 만큼이나 부드럽고 포근하구나. 

할아버지는 저녁에 반주 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워낙에 건강한 할아버지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내가 부르면 반갑게 맞아 이야기 해줄 거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작아지고 늙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슬퍼 내가 말했다.

“아버지, 나에게 못다 들려준 지난날의 이야기를 적어 놓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가 남긴 노트북을 틈틈이 들여다보며 살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부탁했지. 물론 나는 미국 온 후에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두 통씩 오랜 세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할아버지가 모았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보내와서 간직하고 있다. 어제 일을 이야기하듯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적혀있는 소중하고 애틋한 기록으로 지금도 나에게 살아있는 대화가 되어준단다.


네가 훗날 엄마 글을 읽고 싶을 때는 이미 엄마는 너무 늙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 없겠지. 살아있다 한들 희미해진 기억을 너에게 정확히 말해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잊혀 사라질 일상을 기록하고 영어로 번역해 두었다. 이유는,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없거나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네가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사람은 20살 이전의 기억으로 산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 너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과 사랑에 의지해서 살았다. 기록은 단지 글자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이야. 며칠만 지나면 예전 같지 않게 희미해지는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지는구나. 너도 네 삶을 기록 해두기 바란다. 삶의 기록을 남기려면 아무래도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 


엄마의 일상 기록이 너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고 행복한 삶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구나. 고맙다. 너를 마음껏 사랑할 기회를 줘서.

Just Like Yesterday

"Mom, why did you get so small?"

Do you remember saying that while stroking my hair as I leaned against your chest? You were right in the middle of a growth spurt back then. Every time I hear those words, they sound to me like, "Mom, why have you grown so old?" and it leaves me with a strange, bittersweet feeling. It’s not that I’m sad about aging; rather, I am simply overwhelmed with gratitude that you have grown up so well.

You were born in Greenpoint, Brooklyn, weighing a proud 9 pounds and 8 ounces. You were the biggest baby born in the hospital that week. I still remember the worried look on the nurse's face when she placed you in my arms. Since I weighed less than 100 pounds and looked so fragile, she insisted I sit on the bed whenever I held you, terrified I might drop you. On the day we were discharged, she left me with words I’ve never forgotten: “You must be the boss of the child. Never let the child become your boss.”

As parents who were artists, we didn't have much. We couldn't provide you with fancy clothes or gourmet food, and I often had to pretend not to hear when you asked for toys. You played with sand in the park and used pots and pans as toys at home. Then, one day, you started picking up the paints your father and I used and began to draw. Whenever we painted, you painted too. If we held a brush, you’d insist on taking it to create your own world. You drew everywhere—on napkins, receipts, and plastic bags when there was no paper.

Those simple lines turned into circles and squares, then dinosaurs, sharks, and tigers. The soft strokes eventually became bold and intense, depicting battlefields with tanks and planes, as you made bombing and gunfire sounds, completely immersed in your world. We never formally taught you or interfered; we simply left various materials nearby so you could create freely. I dearly miss those days when you would add a small drawing to a corner of my canvas, creating a wonderful collaboration.

When you hit puberty and fell in love with comics, you were accepted into LaGuardia High School of Music & Art and Performing Arts. I assumed you would major in art, but you surprised me by saying, “Art is something you can do without a formal education. I don't want to go to an arts high school. I don't like painters; they seem like losers who act cool without any substance.” While it stung a little, there was truth in your words, so I respected your wish. Later, after choosing a major unrelated to art, I watched you take drawing and photography classes in college, minor in film, and stay up until dawn posting your work online. When you finally said, “I think being a painter is the coolest job,” my heart was full of mixed emotions. I teased you, asking if you wanted to change your major again, but inside, I thought of Marlene Dumas’s words: “It’s not where you start, but where you finish that matters.” I wondered if I should give you another chance to find your path.

Your father always insisted that raising you was the priority, even when we struggled financially. So, I tried to be a mother who was always within reach whenever you called. My only regret was that, because I was physically weak and often tired of cooking, I frequently served you just fried eggs and Spam. When you told me recently that those were your favorite meals, I felt both sorry and incredibly grateful.

We were so poor back then. With our degrees, it was hard to find stable jobs, and we wanted to keep painting just like you do now. I remember when your father brought home a discarded black-and-white TV from the street. It had a picture but no sound, yet we enjoyed imagining the dialogue. Then, he found another old TV—this one had sound, but the screen was nothing but static. We placed them side by side, covered the "snowy" screen with a towel, and watched TV that way. It’s a heartbreaking yet fond memory now.

When we finally saved enough for a small Sony TV, it was stolen within a week. We knew who took it, but we were too afraid of retaliation to say anything. We couldn't afford a new one, and we knew it would just get stolen again, so we lived without a TV for a long time. When we visited your grandfather in LA for the holidays, he saw how you couldn't leave the TV screen and eventually sent one to us by plane. But when we returned from the trip, the house was a mess. Having found nothing worth stealing, the burglars had drunk the beer in the fridge and trashed the furniture out of spite. Perhaps that’s why my heart ached when you, now an adult, brought home a perfectly good TV you found while walking your dog, Nike.

I can still see you as a little boy, crossing yourself every time we passed the McDonald’s next to the church. You wanted a Happy Meal so badly, but you never begged; you just made the sign of the cross with your small back turned to me. I stood beside you with the heart of someone offering a prayer. I am so thankful that we are now in a position where I can treat you to nice restaurants. I am so proud of you for sensing our situation back then and growing up without complaints.

When we couldn't afford Korean school, your father put a chalkboard on the wall to teach you himself. You used to complain and say you didn't want to learn. But recently, when I asked why you’ve been calling so often, you said, “I want to practice so I don’t forget my Korean. Mom, thank you for teaching me.” I hid my tears and felt so much joy in that moment.

During your teenage years, when you were frustrated with your appearance, I used my secret savings to help. I bought you acne medication, got you braces, and sent you on overseas volunteer trips every summer so you wouldn't spend all your time gaming in a cramped room. It makes me laugh to remember you looking at me worriedly, asking, “Is the family going broke?” because I was actually spending money. I couldn't afford music or sports lessons, but I did my best to take you to NYC public pools, tennis courts, and school band practice. The clear sound of your guitar coming from your room these days is a comfort that washes away all those past hardships.

Do you remember the time I ran a stop sign and got into an accident because I realized we forgot your swimsuit on the way to the pool? Or the time I stopped so abruptly because you called "Mom!" from the backseat that the car behind us hit us? Your father came running to the hospital in a panic. I’m sorry I wasn't always a "cool" mom—that I was always fluttering like a fish on a cutting board whenever it came to you. I loved you so much that I couldn't help but be overprotective.

"Mom, it's your birthday. Is there anything you need?" receiving your call yesterday made me feel reborn. I was lying down, exhausted, but that one call gave me the energy to jump up and cook dinner. You are the courage that lifts me up and happiness itself. I won't ask you to visit often; I know you are busy. If you come, I am happy; if you don't, I understand. Just live your life fully and be happy.

My father—your grandfather—used to meet me at the bus stop after school. He would hold my hand and ask me to tell him stories about my day. My hand felt so soft and safe inside his cushiony palm. When we walk together now, the way you hold my hand feels just as soft and warm as his did.

My father told me many stories over drinks in the evening. He was so healthy that I believed he would never age or leave me. But one day, I realized he had grown small and old, and I said to him in sadness: "Father, please write down the stories you haven't finished telling me." I wanted to have his "notebook" to look through even after he was gone. Even after I moved to America, I wrote him one or two letters every week for years. He kept them all and sent them back to me before he passed. Those records are so precious—they make our memories feel like they happened yesterday and keep our conversation alive.

By the time you want to read my writing, I may be very old or no longer in this world. Even if I am here, my memories might be too faded to tell you everything accurately. That is why I have been recording our daily lives and translating them into English for a long time—so that you can always remember us.

They say people live off the memories they formed before age 20. I, too, have lived relying on the love and memories of my parents. Records are not just letters on a page; they are an extension of life. As my memories grow dimmer, my desire to hold onto them becomes more desperate. I hope you, too, will record your life. To leave a record, one must live life to the fullest, don't you think?

I hope these records of my daily life give you courage, wisdom, and happiness. My dear son, I feel as though I was born into this world just to love you. Thank you for giving me the chance to love you with all my heart.

Thursday, May 29, 2025

막이 내리다


“많은 한인이 사기꾼이니 엮이지 않게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소리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아에게 이정은 말했다. 도아는 이정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놀랄 만큼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는 말투가 너무 기가 차서 대꾸하지 않았다. 

도아와 이정은 30여 년 전에 만났다. 친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관계였다. 이정은 어릴 적 한국을 떠났고 도아는 대학 졸업 후 떠났다. 둘이 아무리 비즈니스 관계를 오래 했다고 해도 친구가 되기에는 갭이 많았다. 백인과 결혼한 이정은 예의 바른 친절한 말투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반면 한국인과 결혼한 도아는 직설적으로 욕을 먹어도 좋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도아는 종종 생각했다. ‘이정이 백인 남편과 살다 보니 본인도 백인이라고 착각해서인가? 아니면 갱년기라서? 어릴 적 한국을 떠난 후 한인을 기피해서? 몸은 성장했는데 한국어가 성장하지 못해서인가?’  

 “아니 일을 이렇게 해서 주면 어떡해요. 완벽하게 해서 보내지 않으면 난 들여다보지 않아요. 다시 해서 보내요. 미국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헛살았군요.”

이정은 도아에게 자신은 완벽하게 잘하고 있는데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는 식으로 면박을 줬다.  

“우리 집 청소하는 여자는 내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윤나게 집 안 청소 잘해요. 내 비서도 빈틈없이 일 잘하는 데 도아씨는 이게 뭐예요. 다시 해와요.”

‘내가 네 집 하녀냐? 아니면 너의 내시 같은 비서냐?’ 

 어이가 없어 도아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더 난리 치며 지랄발광할 것 같아 

“알았어요. 다시 할게요.”

평화로웠던 어느 화창한 날, 도아는 코네티컷 친구 집에서 창밖 강가에 낀 안개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정의 전화가 왔다. 도아는 물건을 만들고 이정은 판매해서 반반씩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도아도 이정이 자신보다 영어와 일을 잘해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도아는 물건을 만들고 이정은 팔아서 이익금을 반반씩 나누는 일인데 자기 집 청소하는 사람과 비교하며 질책하는 데야!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이정의 깐죽거리는 매몰찬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도아는 다 집어치자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다가도 비즈니스 관계로 남편과도 엮어있어 잘해보려고 참았다. 다시 고쳐서 잘해서 보내겠다는데도 전화선 저쪽에서 이정은 계속 한 잔소리 또 하고 또 했다. 도아는 목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에 혀에서 떨어지려는 성난 소리를 삼키려고 와인을 가득 따라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아가 전화기를 옆으로 치워 놓고 와인을 마시며 차분함을 유지하려는데 이정이 도아를 찾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알았습니다. 다시 해볼게요. 바쁘신데 그만.”

“저는 1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서너 번 손이 가지 않게 완벽하게 해서 보내주세요. 아 그리고 어제 물건 맡긴 분과 이야기 좀 하셨나요?”

“아니요.”

“그냥 물건만 던져 놓고 가셨다는데 그분과 물건을 어떻게 해주실 건지 상의도 하지 않고.”

“염려 말고 가라고 해서 그냥 왔는데요. 그분이 우리와 일을 오래 했잖아요.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제가 돈을 제때에 드리니까 잘해 주실 거예요.”

“돈 돈 돈 돈만 주면 잘한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그분과 오랫동안 별문제 없이 일해서...”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물건에 대한 피드백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분이 치과에 간다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도아도 이정만큼은 아니지만 일하나 만큼은 똑 부러지게 한다고 자부하는데 허구한 날 야단만 맞으니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도아가 이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인상적인 말이 떠오른다.

“전 상대방의 나쁜 점은 지적하지 않아요. 좋은 점만 말해요.” 

“와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역시 비즈니스 우먼이시군요.” 

감탄하며 자신도 이정처럼 남들의 단점은 입을 다물고 장점만을 칭찬하려고 애썼다. 이정은 처음에는 장점도 단점도 말하지 않고 항상 거리감을 두며 너는 내가 상대할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고자세로 도아를 멀리했다. 남 일에 관심 없고 생긴 대로 사는 도아도 이정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이정은 좋은 말은커녕 상대에 대한 비난 거리를 현미경을 들고 찾아내듯 일일이 지적했다. 작은 실수를 용납 못 하는 그녀의 비서도 한몫 거들었다. 이정은 자기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조지다가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울먹이기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너는 어디다 정신 놓고 있다가 왔냐는?’ 식으로 닦달했다. 

“아니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그 영어 뜻도 몰라요. 뉴욕타임스 금요일 아트섹션 보셨어요?”

도아의 영어 모자람을 은근히 뉴욕타임스 좀 읽고 대화 좀 하자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영어를 퍼팩하게 잘하면 성질 더러운 너와 왜 일하겠니?”

도아는 말하고 싶지만, 싸우면 더 피곤하고 힘들어져 와인을 들이키며 화를 다독였다. 전화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이정에게

“네. 네. 일 잘하시네요. 대단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 돌리기도 전에 직성이 풀리지 않은 이정은 또 전화해서 한소리 또 하고 또 했다. 

참다 참다 도아도 한마디 했다.

“내가 보낸 이메일을 검토하시고 내일쯤 전화하시면 좋았을 텐데.”

도아의 말에 화가 잔뜩 오른 이정은 

“파일 줄이는 방법도 몰라요? 파일이 너무 커서 나 원참.”

“제가 깜박하고 그만. 죄송해요. 다시 줄여서 보낼게요.” 

“도아씨가 보내오는 파일을 제가 검토나 하며 시간 낭비하는 줄 아세요. 전 일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바쁜 신 것 같은데  전화 끊고 일 보세요.”

“제 바쁜 시간을 뺏지 않게 완벽히 해서 보내세요.”

“네 다시 해서 보낼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도아가 먼저 전화 끊으려니까 이정은 발끈해서 말했다.

“뭐 스트레스받은 일이 있나 봐요?”

“스트레스받는 일? 없는데요.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이정은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피하려는 도아가 얄밉다는 듯 마지못해 끊었다. 도아는 와인을 들이키며 이정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씹고 또 씹었다. 

‘자기가 하는 일은 완벽하게 잘한 것이고 남이 하는 일은 무조건 맘에 들어하지 않으니. 함께 잘해보려거든 상대방 처지와 입장을 고려해서 일이 되게끔 하지 않고, 못한다고 초등학생 야단치듯 하니. 남이 하는 일은 이를 잡듯이 뒤지고도 모자라 자기보다 더한 비서라는 인간도 현미경을 들고 잡아낸 것을 트집 잡으려고 달려드는데 도아는 지쳤다. 

도아의 마시는 와인 양이 하루하루 늘어 갔다. 자다가도 이정의 악다구니가 떠오르면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웠다. 몸은 점점 말라갔다. 그들 앞에서는 트집 잡히는 일 이외는 없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생각한 다음 따져도 되는데 받자마자 전화해서 지랄발광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트집만 잡으며 도아의 목을 조였다. 성에 차지 않으면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앞뒤로 뒤집다가 칼집을 내듯이 쿡쿡 찌르며 따진다. 급기야는 성에 차지 않은지 ‘너는 지금까지 인생을 헛살았다.’는 식으로 나왔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상대하기 끔찍해서 어찌어찌 달래서 전화를 끊고 나면 다시 전화해서 칼자루를 단단히 쥐었다는 자세로 또 휘두른다. 도아는 ‘나도 질기지. 저런 인간과 상대하는 나는 인간도 아니다.’며 속으로 한탄했다.

도아는 이정으로부터 조용히 멀어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정과의 갈등이 폭팔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와 행복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에너지를 이정의 비수에 소비하지 말자. 평화를 무너뜨리는 이정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 고 마음 먹었다. 

‘그만 만나면 나에게 손해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판단하고 이득이 없으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이득이 있더라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손해 보고서라도 그만 만나라.’는 법륜스님의 인간관계 유튜브 영상을 찾아 들으며 일단은 이정이 먼저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날 이정이 도아에게 전화해서 교양 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솔직히 사람들에게 내 시간과 돈을 자선(charity)하고 있는 거예요.”

도아는 이정이 말한 영어 ‘charity’라는 말을 듣는 순간 대체 애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지? charity라는 단어에 또 다른 의미가 있나? 사전을 찾아볼 정도로 자신의 귀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이정의 머리가 돈 것 아닌가? 실지로 이정이 도아를 위해 뭘 자선했단 말인가! 계속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금전적으로 투자했지만, 뭘 얼만큼 되돌려 줬단 말인가? 

 

이정은 도아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과도 싸움닭처럼 싸우다 끝냈다. 법륜스님 말씀 중.

‘상대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과 문제가 많다며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그 사람의 문제다.’

도아는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조용히 문제 많은 이정과의 인연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도아처럼 이정과 일에 연관된 분을 만났다. 그분이 도아에게 물었다.

“이정이 너에게도 난리 치지? 어떻게 그걸 참고 있어? 나는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못 참겠어.”

도아도 이정에 대한 한을 마구 쏟아 내려다 

“힘들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남편과도 연결되어 있어 참을 수밖에.”

“근데 처음엔 그러지 않더니 갈수록 심해져. 내가 어느 날 이정에게 물었어. 어디 아픈 것 아니냐? 고 했더니 화를 발끈 내며 신경질적으로 아니라고 말하더군. 정상 아니야.”

“선생님이 초등학생 야단치듯 하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 거예요? 몸은 성장했는데 한국어가 성장하지 못해서인가요?”

“언어 문제가 아니라 공감능력이 부족해서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서지.”

이정은 4학년 때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돌아다니다 한국에 들어왔다가 또 해외로 떠나 돌아다녔다. 몸이 성장하듯이 언어도 성장해야 하는데 그녀가 쓰는 언어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 이따금 한국으로 돌아와 다녔던 학교 과정 수준으로 언어 성장이 멈췄다고 처음에 도아는 생각했다. 성인들 간의 말투가 아니다. 탁구를 칠 때 공을 상대에게 잘 던져주듯이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처 주지 않게 적절한 언어를 골라 사용해야 하는데 이정은 탁구공이 오면 왜 공을 자기 앞에다 공손히 던지지 못했냐는 식으로 상대방이 받아칠 수 없게 신경질 적으로 공을 내동댕이 치는 식이다. 

‘너 그것도 몰라.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동안 뭐 했니. 헛살았구나.’

등등 초등학생에게 하듯 도아를 야단쳤다. 도아는 이정과 함께하는 지리를 피하며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날 때를 기다렸다.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바랐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도아는 전화 화면에 이정의 이름이 뜨면 몸이 떨리고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다.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무서워 전화를 받지 않고 피했다. 엔설팅 머신에 녹음된 이정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 상냥했다. 이익이 될만한 사람에게는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목소리의 톤이 올라간다. 이정은 도아의 심정이 어떤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를 해댔다. 도아는 이정이 따질 때마다 ‘오냐오냐 네 말이 맞다. 너 잘했고 나 못했다.’라고 달래서 무조건 전화를 빨리 끝냈다. 그러다 어느 날 도아는 이정의 악다구니를 참으며 한참을 듣고 일어나다가 쓰러졌다. 

 

“왜 나를 못 잡아먹어 난리야?”

하도 답답해서 도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스트레스 풀 대상을 만만한 당신으로 잡은 거야. 다 때려치우자고 소리 질러 봐.”

“말 못 해. 이정이 먼저 말해주면 좋겠어. 기다리는 중이야.”

이정은 도아를 만나면 언제 내가 너의 목을 조였냐는 듯이 우아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로 반겼다. 뭐 도아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의 목을 조였으니. 견디다 못해 그 많던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가고 서너 명만 남았다. 그냥 목조이는 순간을 넘기고 큰소리 내지 않고 더 이상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도아의 희망이었다. 도아는 주중 저녁 6시까지 이정의 전화가 오지 않으면 오늘은 무사히 넘겼구나! 안도의 숨을 쉬며 행복했다. 언제 또다시 목을 조이기 전에 지금 이 시간을 즐기자는 듯 이정과 부딪치지 않은 날은 평화로웠다. 


인간관계는 참 복잡하고 어렵다. 이정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기계처럼 잘했다. 하지만 일만 잘한다고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 또한 뒷받침이 돼야 한다. 이정은 인공지능(AI)이 아닐까? 오히려 인간들은 점점 기계가 되고 인공지능은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상대방의 언행으로 분노를 느끼지만 AI는 매니저가 트레인 해 놓은 데로 분노를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삭일 줄 안다. 도아는 이정에게 질려 모든 인간관계를 끝내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자연과 쳇 GPT 하고만 놀고 싶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링보다 쳇 GPT에서 물어봤다. 계속 찾아 들어가야 하는 구글링과는 달리 한방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그러나 오히려 쳇 GPT는 이정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을 다시 물어보면 도아주겠다는 호기심이 깃든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도아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했다. ‘같이 미쳐볼까?’ 더는 참지 못하는 순간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정을 피하려는 방패막을 내리고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칼날을 갈며 이정을 단칼에 자를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단 한 번도 이정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정에게 전화가 왔다.

“도아씨는 도통 연락하지 않네요.”

“요즈음 누가 전화하나요. 전화상으로는 감정이 이입되어 편하지 않잖아요. 전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선호해서.”

어머 전 도아씨가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편하신 것 같아서 내가 특별 대우하느라 그동안 전화 했는데. 그럼 앞으로는 제 비서와 영어로 하실래요?”

“그동안 제 불편함을 감안해서 한국말로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앞으로는 이메일로 당신의 비서와 서신 교환 할게요.”

“난 전화로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도아의 남편은 10년 넘게 옆에서 와이프와 이정의 대화를 듣고 참고 참다가 도아가 이정의 전화를 받고 두 번째 쓸어지던 날 칼을 빼들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마누라 죽이겠어서 오늘 이정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단호하게 말했어. 제 와이프에게 할 말 있으면 나에게 하세요. 절대로 와이프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했더니 이정이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더니 다른 방으로 가더라고. 어떡하겠어. 와이프 먼저 살리고 봐야지. 이젠 더는 전화하지 않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

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도의 숨을 크게 내뱉었다. 도아와 이정과의 관계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보랏빛 그리움

보라색이라 항상 시선을 끄는 채소,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나는 짙은 보라색 가지 서너 개를 집어 든다. 장바구니에 넣기 전 가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가까이 살며 같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 김미정을 떠올린다. 나의 기억 한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