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이라 항상 시선을 끄는 채소,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나는 짙은 보라색 가지 서너 개를 집어 든다. 장바구니에 넣기 전 가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가까이 살며 같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 김미정을 떠올린다. 나의 기억 한 귀퉁이에 물에 잠긴 듯 조용히 있다가 가지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콕콕 쑤시며 떠오르는 친구다.
미정과 나는 방과후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숙제한 후 놀며 항상 붙어 다녔다.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도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쉬워 서로의 집을 오가다 엄마의 부름에 다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가곤 했다. 엄마도 상냥하고 서글서글하고 착한 눈매를 가진 미정이를 좋아했다.
“많이 먹어라. 한창 클 때다.”
함께 잘 지내며 무럭무럭 커가는 사이좋은 우리 둘이 대견한지 엄마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주고 간식도 항상 준비해 놓았다가 주셨다.
나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에 미정이 집에 들러 함께 등교하곤 했다. 하루는 미정이 집에 가니 미정이가 등교할 준비도 안 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마지못해 “왔니?” 했다. 그리고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미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나 혼자 학교 갈게. 나중에 와.”
나는 혼자 학교 가는 일이 점점 늘어났고, 미정은 지각하는 날이 늘어났다.
고등학교에 갓 올라간 어느 날,
“서연아, 오늘 새로 이사 간 우리 집에 함께 갈래.”
미정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미정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못하고 궁금했던 중이었다. 미정은 버스를 갈아타고 내려 산꼭대기로 올라가면서 헉헉거리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어. 엄마가 바람나서 아저씨와 산다고 나보고는 아빠와 살래. 불쌍한 아빠를 도와 내가 집안일해야 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정은 산을 오르느라 힘들어 헐떡거리는 나에게
“배고프지? 잠깐 앉아 있어. 내가 맛있게 밥해 줄게. 먹고 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미정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지 또래와는 달리 어린 태를 벗고 성숙했다. 나는 오만 잡생각 하며 텐 마루에 앉아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동네를 보며 기다렸다. 한참 후, 미정은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김치 그리고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무친 가지나물이 놓인 밥상을 들고나왔다. 나는 가지나물의 물컹거림과 색이 싫어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나물은 꿀맛이었다.
“나 원래 가지나물 색이 이상해서 먹지 않았는데 너무 맛있다. 네가 이렇게 음식을 잘하는지 몰랐어.”
“아무래도 엄마 없이 아버지와 살려니까 음식을 매일 해서 늘었나 봐.”
“힘들지 않아?”
나는 슬픈 눈으로 미정에게 물었다.
“아빠가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았어. 엄마와 아빠가 매일 싸우다가 엄마가 바람이 났어. 엄마가 너무 미워.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어. 난 아빠와 둘이 사는 게 좋아.”
미정은 큰 눈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착한 미정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며 나도 미정이 엄마가 미웠다.
나는 한국 마켓에 갈 때마다 미정이가 만들어 준 가지나물 맛을 잊지 못하고 미정을 닮아 어둡고 슬퍼 보이는 보라색 가지에 손이 저절로 가며 집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지나물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좀 느긋한 날을 잡아서 한다. 너무 찌면 물러질까 봐 수시로 먼저 쪄진 것을 골라내느라 신경 쓰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물러진 것은 미리 꺼내어 식혀서 가늘게 쪽쪽 찢는다. 쪄져서 색이 바랜 가지에 마늘과 초록색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색이 살아난다. 후추를 뿌리고 간장을 넣어 색을 약간 죽인다. 참기름으로 윤을 내고 검은깨를 뿌려 마지막 처리를 한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열심히 만들어 보지만, 미정이가 만든 가지나물 맛이 아니다. 나를 텐 마루에 앉혀 놓고 부엌에 들어가 뜨거운 가지를 찢어 무치느라 미정이가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는 고추 조림, 김치와 배추된장국을 떠 놓고 남편 맞은편에 앉았다. 밥상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남편 눈치를 살폈다. 국에 밥을 말아 먹던 남편이 한마디한다.
“배추된장국이 진국이야. 최고의 건강식이지.”
시래깃국을 먹고 자란 남편은 매일 된장국을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지 좋아한다. 남편의 ‘진국’이라는 말에 미정이 생각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 전이었다. 살만한 옷이 있나 보려고 종로 지하상가 옷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머, 너 서연이 아니야.”
“어머머, 미정아, 웬일이니?
“나 여기서 일해.”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미정이가 나에게 물었다.
“너 진국이 생각나니?”
“아 그 잘생기고 남자다워 무척 인기 많았던 아이. 여자애들이 좋아했잖아.”
진국이가 생각난다고 내가 말하자 미정이가 옛 시절이 그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학교 졸업하고 그 애 만난 적 있니? 내가 진국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혹시 너는 그 애 근황을 알고 있나 해서. 나야 이미 결혼해서 끝난 일이지만. 이따금 눈매가 착했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어머머, 너 결혼 했다고. 언제? 누구하고?”
내가 놀라서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할 때, 남쪽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만난 경상도 남자하고.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예전에 너희 집에 가서 밥통에 있는 밥 다 먹고 빵을 또 먹어도 네 엄마가 한창 클 때라며 더 먹으라고 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 만나지 못한 미정이와 헤어지기 아쉬워 따라갔다. 어찌어찌해서 그녀가 사는 곳에 갔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미정이가 산다는 집 구조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서너 번 본 적 있다. 옥탑방으로 문을 열자마자 부엌이 있고 방 한 칸이 훤하게 보이는 구조였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정의 남편이 어두운 방 안에 무겁고 차가운 바윗덩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상냥하게 인사했다. 그는 슬쩍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저씨 인상이다.
“서연아, 방에 들어가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들어가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미정 남편이 몹시 화가 난듯해 무서웠다.
“나 그냥 여기 있을게.”
미정도 남편 눈치가 보이는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문가에 멋쩍게 서 있었다. 미정이 저녁상을 차려 들고 남편 앞에 가져다 놓으려는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밥상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를 쏘다니다 온 거야.”
에구머니나! 나는 너무 놀라서 냅다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경상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나이는 밥상을 걷어차는 남자로 기억나다가 놀라 당황하던 미정의 표정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려온다.
미정의 남편이 밥상을 엎은 이후 우리는 서로가 연락하지 않았다. 둘 다 그 끔찍한 장면을 잊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구들로부터 미정의 경상도 남편이 명동에 남자 와이셔츠 가게를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서연아 나 미정이야.”
“어머머, 웬일이니. 반갑다. 너 잘 지낸다는 소식 들었어.”
행복에 넘치는 미정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흔들었다.
“우리 만나자.”
나는 미정 부부가 자주 들른다는 소공동에 있는 으리으리한 중국집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 명품으로 빼입은 우아한 귀부인이 식당에 들어섰다. 미정이다. 원래 키도 크고 눈도 서글서글한 것이 크면 미인이 될 거라던 엄마 말 증명이라도 하는 듯 미정의 세련된 모습에 나는 놀랐다. 내가 배가 부르다는데도 음식은 계속 나왔다.
“이왕 만났으니 밥 먹고 우리 집에도 가자.”
한강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잘 꾸며진 모던한 아파트였다. 옥탑방 앞 부엌에서 밥상 들고 들어가던 미정의 모습이 과연 존재했었던가? 혹시 꿈에서 본 장면은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잘 꾸며 놓고 살았다.
나는,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 나서 L.A.에서 한동안 살았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식당에서 밥 먹고 나면 항상 팁을 놓아야 했다.
”뭐 그렇게 팁을 많이 주는 거야?“
내가 남편에게 말하려다가 얼마 전 미정이가 남편과 여행하러 와서 7박 8일 서부관광 투어를 함께 했던 편치 않은 기억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미정 부부와 함께한 서부관광 투어 관광객이 캐나다에서 온 두 커플 빼고 대부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꼭 팁을 놓으세요. 미국에서는 팁을 놓아야 합니다. 호텔방을 떠날 때도 아침에 팁을 놓으세요.”
가이드가 하루에 한 번 이상 팁에 관해 이야기했다. 성질이 불같은 미정의 경상도 남편이 가만있을 리 없다. 하루이틀은 인상 쓰며 조용하다가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그가 갑자기 달리는 버스에서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이드, 너 입 다물어. 팁 이야기 그만해. 귀가 따갑게 들었다. 너 입 다물면 내가 백 불 줄게. 알아들었어.”
버스 안이 폭탄을 맞아 모두가 죽은 듯 고요했다. 옆에 앉아 함께 여행하던 우리 아들이 미정 남편에게 대답하듯이 작은 소리로
“엄마, 나 같으면 입 다물고 백 불 받을레. 가이드도 입 다물면 백 불 벌 텐데.”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세상이 갑자기 멈춘 듯 버스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은 미정의 남편이 가이드 말에 또 토를 달며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로 심기가 불편했다. 미정이 남편은 하루 일정이 끝나면 미안했는지, 사람들을 모아 맥주를 대접하면서 명동에서 와이셔츠 비즈니스를 해서 돈 많이 벌었다며 지껄여대며 잘난척했다. 나는 성질 더러운 남자랑 사는 미정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미정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몇 년 후 우리 가족은 남편의 주재원 임기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다. 미정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무척 반가워하며 말했다.
“만나자. 우리 집으로 와.”
미정의 피곤한 허스키 목소리가 걸렸지만, 만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불러주는 주소가 예전에 살던 곳이 아니었다. 예전 미정이 살던 아파트를 상상하며 찾아간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사이에 망했나? 걱정하며 들어선 곳은 상가 위에 있는 원룸 아파트였다.
“서연아 반갑다. 들어와.”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반기는 미정에게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너 술 마셨니? 대낮부터.”
“일단 들어와서 너도 한잔해.”
술잔을 들고 방안을 둘러봤다. 그녀의 8살 된 아들이 방구석에서 게임하고 있었다. 난 아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괜찮은 거야? 아이 앞에서 술 마시는 것.”
“내가 너무 괴로워서 마시지 않고는 못 살아.”
“너 무슨 일 있었어?”
“나 이혼했어.”
“어머머 어쩌다가.”
“그 미친 인간이 결혼 생활 내내 나를 힘들게 하더니 결국 일을 저질러 내 신세가 이렇게 됐다.”
얼빠진 얼굴로 대꾸도 못 하고 쳐다보는 미정의 눈에 핏발이 섰다.
“글쎄 내가 아이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하루 일찍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이 여자와 내 침대에서 그 짓을 하고 있더라. 나도 미친 년이지. 숨죽이고 그들이 하는 짓을 처음부터 죽 지켜봤다. 다 끝났을 때 문을 활짝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어. 이 인간들이 처음에는 움찔하더니 ‘어쩔래? 그런 눈깔로 째려보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기가 막히더라. 그년 또한 아주 당당한 태도로 안방 차지하겠다는 듯 나가지도 않고 버티고 있는 거야. 어떻게 그 장면을 보고 그 인간이랑 살 수 있겠니.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이혼했다. 우리 신혼 때, 네가 왔을 때 밥상 엎던 그때 헤어지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너 기억 나지 지하상가 옷 판매장에서 나 일했던 것, 내가 남자 옷 가게를 하고 싶다니까 가게 주인이 나를 잘 봐서 도매상도 소개해 주고. 미천도 빌려줘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남편이 수단이 좋아 장사가 잘됐어. 돈을 손에 쥐자 자기가 해서 성공한 줄 알고 나를 업신여기고 잘난 척을 어찌나 하던지. 내가 비즈니스 기반 잡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다고. 그놈의 더러운 성질 맞춰가며. 헌신하다 헌신짝 됐다. 바람피우느라 자식도 찾지 않아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야.”
나는 아이가 듣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아이 쪽으로 계속 고개를 돌리고 쳐다봤다. 아이는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엿듣는 것도 같은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술에 찌든 미정은 미친 여자처럼 큰소리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둘지 몰라 장님이 불빛을 찾아 허우적거리듯 사방을 둘러봤다. 그 어디에도 그녀를 위로할 밝은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