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 2022

중독자들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피곤한 몸을 다시 침대에 뉘었다. 아침 햇살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틈새를 비집고 창안으로 들어와 내 눈을 간지럽힌다. 커튼을 닫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고요한 시간과 공간에서 잠에 푹 빠졌다. 비몽사몽간에 누군가가 우리 집 안을 들락거린다. 바위에 눌린 듯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꽝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구둣발 소리가 쿵쿵 계단을 오르더니 내려가고 오르고를 반복한다. 짜증이 솟구쳤다.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었다.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려는데, 이삿짐을 나르는 인부 중에 말쑥한 남자의 구릿빛 얼굴이 빛났다. 졸린 눈동자를 크게 떴다. 잠이 확 달아났다. 


 문을 재빨리 닫았다. 3R 아파트가 한동안 비어 있었다. 그곳으로 이사 들어오는 사람인가? 그가 나의 후줄근한 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했기를 바라며 발돋움해서 문에 달린 핍홀로 내다봤다. 
‘와, 오 마이갓. 멋지네’. 
가구를 나르는 인부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그의 낮으면서도 서늘한 목소리 또한 지적이다. 

 노트르담의 꼽추를 연상시키는 스미스 부인의 구부정하고 느릿한 모습이 이삿짐 나르는 인부들 틈에 끼어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올라와 2층 복도에서 멈췄다. 3층 계단의 높이를 확인하는 듯 오른쪽으로 고개를 잠깐 뒤틀고 올려다본다. 숨을 고르고 난 후 둔중하게 계단을 밟아 천천히 올라간다. 아, 그러고 보니 1일이다. 

 새로운 세입자의 이삿짐이 다 올라갔는지 조용하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보통 날보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장 보러 나갔다. 내가 사는 2층 2R 아파트와 마주한 2L에 사는 아이린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아이린, 멋진 남자가 이사 왔는데 봤어요?” 
“네. 건물 앞에서 짐 내리는 인부들과 말하는 젊은 남자를 봤어요. 잘생겼지요? 인부들이 옮기는 그의 가구들 봤나요? 비싼 고가구예요” 

 늘 똑같던 일상에 새로운 멋진 이웃이 생겼다는 것이 신이 났다. 나는 귀를 쫑긋 새우고 눈을 더욱 크게 뜨고 그 남자에 대해 뭔가 알아내려고 건물 안을 살폈다. 

 발소리만 나면 나는 핍홀로 복도를 내다봤다. 키가 작아 내다보기 불편해서 아예 문 앞에 발판을 가져다 놓았다. 내가 핍홀로 내다보며 밖을 살피는데 아이린이 문을 열고 나왔다. 스키니 진 위에 뚱뚱한 허벅지를 가리는 검은 바탕에 주홍과 베이지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슬리퍼에 발꿈치를 끼우고 있었다. 여러 개의 가는 금팔찌를 찬 그녀의 팔목이 번쩍인다. 오늘따라 멋을 꾀부리고 어딘가를 가려나 보다. 나는 문을 열었다. 
“아이린, 어디 좋은 데 가나 봐요?” 
“오늘 PTA 모임 있잖아요.” 
“오마이갓. 깜박했어요. ” 
“내가 먼저 갈 테니 준비하고 학교로 와요.” 

 아이린은 통통한 몸과 청동빛 피부에 큰 눈을 가진 필리핀 이민자다. 그녀는 폴란드인 남편, 아들 그리고 딸과 함께 산다. 당연히 그렇듯 혼혈인 아이들은 인물이 훤칠하다. 그녀는 영어를 못하는 남편과 폴란드어로 말할 정도로 재주가 많은 여자다. 

 두 남녀의 결혼 과정도 무척 재미있다. 아이린이 간호사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출입국 관리소 같은 줄에 서 있던 폴란드 남자와 한 방에 눈이 맞았다. 그 둘은 만난 지 2주 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폴란드인이 많이 사는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똬리를 틀었다.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부터 이 건물에서 살고 있던 그녀는 같은 동양인인 나를 무척이나 반겨줬다. 

 우리 아이들이 프리킨더가든에 입학하자마자 그녀는 나에게 PTA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나는 부지런히 몸단장하고 학교로 향했다. 서두르며 걷다가 챙겨가야 할 준비물을 깜박 집에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린,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교무실에 가서 빌려다 써도 될까요?” 
“안 돼요.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의 손을 덜어주려고 일하는데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그들의 도구를 쓰면 지장을 주잖아요. 차라리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사다가 쓰지요.” 

 우리는 학교 일이 끝나면 종종 가까운 폴리시 레스토랑에서 점심으로 pierogi(만두)와 golumpki(양배추 롤)을 시켜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다. 
“들었어요. 3L에 사는 스미스 부인 아들 이야기.” 
“아니요.” 
“스미스 부인이 집세만 내고 오랫동안 그 아파트에서 살지 않잖아요. 마약 하는 아들이 툭하면 찾아와서 돈 달라고 협박해서. 결국엔 감옥 갔지만. 늙은 스미스 부인은 아들이 감옥에서 나와 또 못살게 굴까 봐 남의 집에서 노인을 돌보며 숨어 살아요. 그런데 어제 그 아들이 감옥에서 나왔는지 스미스 부인 아파트 문을 두드리며 한참을 서성거렸어요. 그러더니 우리 문을 두들기길래 내다봤지요. 자기 엄마를 보지 못 했냐고 묻는 거예요. 이곳에 살지 않은 지 오래됐고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아니 어쩌다가 남편 없이 키운 하나 있는 자식이 엄마를 그리 괴롭힌 데요.” 
“글쎄 말이에요. PTA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합시다. 아, 참 그리고 새로운 세입자 소식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하는 중인데 뭐 하는 사람이래요?" 
“제임스라고 싱글로 남미와 백인 혼혈이래요.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네요.” 
“어쩐지.” 

 와인을 마시며 나의 옛 낭만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다시 젊은 싱글로 게다가 멋진 여자가 된다면 깊고 서늘한 눈동자를 한 제임스와 연애 한번 해보고 싶다. 과하지 않은 근육으로 날렵하게 빠진 몸매, 탄력 있는 올라간 엉덩이가 그의 케주얼 하면서도 미니멀한 옷차림을 더욱 살린다. 와인잔 바닥에 남겨진 붉은 와인을 흡혈귀가 피를 빨듯 입에 털어 넣고 빈 잔을 멍청히 쳐다보며 옛 생각에 빠졌다. 

 여고 시절, 학교 갔다 올 즈음, 반주하는 아버지 옆에 앉아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애교를 떨면 기분 좋아진 아버지는 지갑을 열고 용돈을 주며 
“너도 한잔해라.” 
나는 조그만 예쁜 잔에 담긴 술을 홀짝홀짝 들이켜며 입맛을 다셨다. 당시 국내 수준으로 손색이 없는 포도주라고 떠들어대던 ‘마주앙’으로 이어져 와인 없는 세상은 ‘앙꼬 없는 찐빵.’일 정도로 두 번 임신했을 때를 빼고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오랜 세월 함께했다. 

 살면서 술 먹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릴 적엔 아픈 엄마를 두고 바람피우는 아버지가 미워서 마시고, 결혼 전엔 노처녀로 결혼 못 해 괴롭고 외로워서 마시고, 결혼 후엔 생활고로 마셨다. 오늘은 멋진 남자와 제대로 사랑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가버린 젊은 청춘이 서럽고 아쉬워 마신다. 

 현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 신상품이 우후죽순 쏟아져도 술만 한 발명품이 있을까?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핍홀로 내다봤다. 4L에 사는 마이클과 소냐 그리고 멋진 제임스가 우리 문 앞에서 서성이며 웅성거린다. 소냐는 손으로 코를 막고 있다. 아뿔싸! 오븐에 올려놓은 청국장이 끓어 넘쳐서 냄새가 문밖으로 나간 것도 모르고 술을 처마시고 있다니!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 죽여 살금살금 걸어서 오븐의 불을 껐다. 그리고는 숨죽이고 있었다. 문 앞에서 한동안 그들은 뭔가 더 수군거리다가 되돌아갔다. 

 제임스가 이사 온 후, 조심한다고 더욱 신경을 썼는데 어쩌다 술에 취해서 그만 깜빡했다. 분위기 있는 멋진 이웃과 함께 산다는 것이 불편만 하지 좋지만은 않다. 냄새나는 한국 음식 해 먹기도 조심스럽고 문밖을 나갈 때도 그와 마주칠까 봐 거울을 보고 신경 써야 하니. 

 며칠 전 청국장 냄새를 풍겼는데도 복도에서 마주친 제임스는 하얀 치아를 들어내고 나를 반겼다. 따듯한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하며 나의 이름을 물었다. 고맙기도 하지! 비눗방울 같은 상쾌함이 통통 튀기는 친절함이다. 

 제임스의 아파트도 엿볼 겸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조각 이불을 만들며 집안에서 보내는 4R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갔다. 그녀는 눈이 어두워 바늘귀가 빠지면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바늘귀를 끼워주면 우리 아이들 덮어주라고 조각 이불을 만들어 줬다. 조각천들은 마리아가 젊은 시절 바느질 공장을 다니며 모아둔 오래된 천들이다. 너무 낡아서 몇 번 빨면 찢어져 사용할 수 없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모르는지 열심히 조각 이불을 퍼즐 맞추듯 조각조각 잇는다. 마치 잊힌 그녀의 옛 시절을 더듬는 듯이. 

 노크했다. 대답이 없다. 돌아서려는데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린다. 마리아가 열쇠를 따고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문을 열자마자 마리아와 평생을 함께한 재봉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녀 말대로 100년이 넘은 재봉틀이 90을 갓 넘은 그녀보다 성능이 좋다며 자랑하면서 그녀의 늙음을 아쉬워하는 푸념을 한다. 

 마리아는 2차 대전 후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을 떠나 배를 타고 미국에 왔다. 그녀는 오직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이도 낳지 않고 남편 토니와 열심히 돈을 모았다. 돈이 모이자 고향을 방문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또 돌아갈까 찾아가니 아버지도 세상에 없었다. 한두 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미루다가 형제, 일가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없는 고향으로 끝내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스트강 건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1930년 당시 뉴욕의 모습이 지금 모습과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 자신만이 늙어 변했다며 한숨을 내쉰다. 자신은 죽어 사라져도 맨해튼은 건재할 것이라며 늙어감을 아쉬워하는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마리아의 아파트를 나와 층계를 내려오는데 마침 제임스 아파트 문이 열려 있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보통 가구들이 아니다. 60~70년대 고가구다. 해 놓고 사는 모습 또한 뭔가 남다른 분위기와 품위가 있다. 그가 이사 오고 난 후 건물 안 분위기도 업그레이드된듯하다.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스미스 부인에게 “하이.” 하며 반겼다. 대꾸가 없다. 한 손으로 왼쪽 눈을 가리고 귀찮은 듯이 오른쪽으로 머리를 잠깐 틀었다가 도로 숙였다. 나를 쳐다본 것인지 아니면 벽을 향한 눈빛인지 알 수 없는 비웃는 굳은 얼굴이다. 영국 태생인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살던 렌트 컨트롤 아파트 3R 리즈를 잃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이곳에 살지 않으면서도 매월 1일 3시경이면 집세를 내러 온다. 그리고는 전깃불도 없는 아파트에 서너 시간 머물다가 바삐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서너 시간씩이나 어두운 아파트에서 뭘 하는 것일까? 나의 상상력은 끝없이 또 다른 상상력을 낳는다. 

 그날도 1일이었다. 스미스 부인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핍홀로 내다보기에는 급한 상황인듯해서 문을 열고 나갔다. 누군가가 그녀의 아파트문을 따고 물건을 훔쳐 갔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건물을 뒤흔들었다. 그 시간에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죄다 나와 웅성거렸다. 아이린이 바닥에 앉아 울부짖는 그녀를 달래서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나도 쫓아갔다. 아이린은 차를 끓여 대접하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감옥에 갔던 아들이 어떻게 찾아냈는지 얼마 전에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때리려고 해서 주인이 경찰에 신고해서 잡혀갔어요. 감옥에 있을 아들의 소행은 아니고 귀중품은 두지 않아서 도둑도 아닌 것 같아요. 가구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다가 뭔가 횅하니 빈 느낌에 찬찬히 살펴보니 꽤 많이 없어졌더라고요. 이 건물 안에 도둑이 있는 것 같아서 다 들으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소란을 피워 죄송해요.” 

 영어권 나라 필리핀 이민자인 아이린은 언어가 나보다 월등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건물 안에서나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녀는 친절하고 부지런해서 정보 수집도 빨랐다.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이었다. 남편 건축 사업도 번창해서 서너 볼록 떨어진 곳에 세 가구 건물을 사서 이사했다. PTA 회장이었던 그녀의 두 아이가 명문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내가 PTA 회장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 교육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를 자주 만났고 그녀도 적극적으로 나를 도왔다. 하지만 영어가 영어인지라 평상시에는 그런대로 소통하다가도 많은 사람이 모인 PTA 모임이라던가 졸업식 연사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위스키를 핸드백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들이켜야 삐꺽거리는 기계에다 기름을 치듯 버벅대던 영어가 술술 나왔다. 드디어 우리 아이들도 명문 중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나의 술 주량 또한 늘었다. 

 아이린과 나의 아이들이 커가는 사이에 제임스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는 직장을 잃었다. 그렇지 않아도 건물 안을 들락거리는 그의 초췌한 모습과 자주 마주쳤다. 조용하던 그의 아파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지 룸메이트를 들였다. 종종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서 핍홀로 내다보면 귀한 고가구를 들고 나갔다. 여자도 들락거렸다. 언성을 높이고 싸우며 우는 소리도 들렸다. 

 복도에서 마주친 제임스가 뭔가를 말하려는지 머뭇거렸다. 그의 시선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표정이다. 
“괜찮은 거예요?”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봇물이 터지듯 두서없이 마구 지껄였다. 직장을 잃고 동네 술집에 들락거리다 여자를 만났단다. 여자가 마약을 하는 것을 후에 알았고 자기도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것이 헤어날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며 흐느꼈다. 
“나 기억하지요? 내가 이 건물에 처음 이사 왔을 때를,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하루하루 망가져 가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참회의 하소연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스미스 부인의 아파트 문이 열리고 노트북을 든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그녀는 훗날 돌아와 살려고 애지중지 수집한 가구들을 도둑맞은 후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들어 더는 노인을 돌볼 수 없어 돌아온단다. 소셜 워커들이 그녀가 돌아 올 아파트 컨디션을 점검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건물 안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제임스가 마약값을 충당하려고 스미스 부인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제임스 물건은 거의 내다가 팔아 그의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렌트도 낼 수 없고 건물 안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그를 멀리하자 제임스는 건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린의 아이들이 명문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평상시와는 다른 목소리다. 우리는 공원에서 만났다. 항상 나를 반기던 그녀의 표정은 굳었고 말이 없다. 나는 내 주위에 일어난 별일 아닌 일을 큰일인 양 조잘거리며 그녀의 거동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계속 심드렁했다. 이상하다. 우리는 공원을 나와 상가를 걸었다. 집에 가서 저녁밥을 지어야 할 시간인데 집에 가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했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슬픈 표정으로 저녁노을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의 빰에 눈물이 흘렀다.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라도 맞은 듯 갑자기 그녀의 눈이 붉어지며 콱 울다가 멈췄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우리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나는 몸이 굳어져서 할 말을 잃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겼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해맑게 잘생긴 그녀 아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내 목을 조이는 듯했다. 그녀를 위로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 막막하고 가슴이 먹먹해 나도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에 갈 생각을 포기하고 그녀의 팔짱을 꽉 끼고 어두운 밤길을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쓰라린 가슴이라도 녹이려는 듯 그녀는 계속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일본 식당에 들어가 새우 우동에 슬픈 얼굴을 처박고 국수 가락을 입에 넣었다. “미안해요.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딸과 남편을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살아야 해요.” 
그녀의 무거운 그림자를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서는 내 두 다리는 마치 깊은 수렁에서 끌어내어 걷듯 버거웠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와인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뚜렷하지 않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몽롱한 기분이 나를 조금은 위로했다. 

 “하루에 사과 한 알을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잖아요. 나를 방문 할 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사과를 가져다줘요. 제발.” 
독방에 갇혀 치료받는 알코올 중독자가 면회 오는 친지에게 항상 사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술을 끊고 건강하게 살려고 결심했나 보다 했더니 웬걸! 독방에서 사과주를 담더라는 일화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슬프다고 기쁘다고, 기분이 좋다고 나쁘다고, 피곤하다고,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마신다. 마셔야 할 이유를 찾느라 머리를 굴리다가 급기야는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리면 선이 자연스럽게 일필휘지로 나온다고, 머리가 굳어서 글이 안 나온다고 마시지를 않나 종일 마셔도 끝이 없을 이유를 주르르 생각하며 자신을 변명한다. 그러다가 변명거리가 없으면 
‘한잔인데 뭐. 딱 한 잔만.’ 

 소셜 워커들이 스미스 부인의 아파트를 여러 차례 들락거리며 이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온다던 그녀는 오지 않고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주인 없는 아파트 문이 열리고 가구들이 건물 밖으로 실려 나갔다. 예상치 못한 고급 가구들이다. 훗날 나이 더 들고 돈이 모이면 돌아와 편안히 여생을 보내려고 남의 가정부로 일하며 틈틈이 하나둘 사들인 듯했다. 가구들은 건물 앞에 쌓이고 쌓여 사람들이 차 다니는 길로 돌아가야 할 정도로 많았다. 살지도 않았던 그녀의 아파트에 그 많은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파트가 무너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녀는 hoarders였다. 매달 1일이면 집세를 낸 후 전등불도 들어 오지 않는 그 아파트에 앉아 미래에 그 고급 가구 속에서 사는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했던 것일까? 

 그녀는 가고 가구들만이 덩그러니 남아 새 주인을 기다렸다. 죽음이 하루하루 그녀를 추적하며 가까이 다가오는데 그녀는 영원히 살 것처럼 소유에 집착했다. 그녀가 오랜 세월 애지중지 소유하며 맡아 관리한 물건들은 새 주인의 손길에 길들어져 가겠지. 

 거동이 불편해 창문을 통해 스미스 부인의 가구들을 내려다보던 마리아는 나에게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스미스 부인과는 달리 마리아의 아파트는 횅하니 비어있다. 그녀의 빈 공간에 들어서면 100년이 넘은 재봉틀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창밖의 엠파이어 빌딩이 나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올라오느라고 벅찼던 숨을 고르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가슴에 걸린 초인종처럼 생긴 목걸이를 만지며 마리아의 걱정스러운 슬픈 눈동자는 스미스 부인에게 무슨 일이 났는지를 말하라는 듯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초인종처럼 생긴 것이 마리아의 가슴에서 빛났다. 그녀는 그것을 구호의 신인 양 애지중지 광나게 닦아 훈장처럼 목에 걸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면 버튼이 자동으로 눌려져 누군가에게 연락되어 나를 구하러 오는 알람 장치와도 같은 것이야. 혹시라도 알람이 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쇠고리 체인을 자르고 들어와 병원으로 데려가 줘.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 재봉틀을 가져. 아 그리고 저기 벽에 걸린 거울도 가져요” 

 마리아가 쓰러지던 날, 그녀가 굳게 믿었던 초인종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다음 날에야 문의 체인을 따고 들어가 쓰러져 있는 그녀를 보고 놀라 구급차를 불렀다. 마리아는 뒤로 넘어졌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침은 그녀의 키 길이 보다 더 길게 흘러 섬 듯한 흔적을 남겼다. 초인종 목걸이는 그녀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여전히 가늘게 숨 쉬는 그녀의 가슴에서 자랑스럽게 뽐내며 빛나고 있었다. 

 아이린의 아들이 죽고 스미스 부인이 그리고 마리아도 저세상으로 갔다. 번뇌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다 허무하게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던가? 

 와인잔에 가득 담긴 붉은 색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허구한 날 마시나? 내가 일찍 죽고 내 남편 새 장가가면 엉뚱한 여자만 영광 볼 텐데. 억울하다. 오랜 세월 병석에 계시다 일찍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억울했는데. 고생하며 아끼고 쓰지 않고 모은 재산 쉽게 써 대는 며느리와 아버지의 걸프랜드만 횡재했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쓰리다. 
“다 그들의 타고난 복이다.” 
아버지는 얄밉게 얼버무리기나 하고. 

 죽은 마누라만 생각하며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의 조화니 어쩌겠는가. 억울함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다. 누구를 탓하랴. 삶을 잘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지. 엄마처럼 일찍 가지 않으려면 술을 정말 끊어야 한다. 따라놓은 와인을 마실까 말까 망설이다 컵 받침으로 와인잔을 덮어놓고 일어섰다. 

 마약 재활 치료를 하러 병원에 입원했을 것으로 생각한 제임스가 화창한 봄날 동네에 나타났다. 나를 못 본 척바삐 지나갔다. 그의 모습에서는 전혀 예전의 제임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흙빛으로 상처 자국이 군데군데 있고 코는 삐뚤어진 듯하고 앞니는 서너 개가 빠져있었다. 마약을 하러 가는지 다리에 모터가 달린 양 부지런히 북쪽 강가에 있는 빈 창고 건물로 향했다. 나는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해서 확인하려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후, 그는 멀리서 축 늘어져 걸어오다가 서서 한동안 조는 듯 서 있다가 오고를 반복했다. 그의 모습은 여느 홈리스와 다를 바 없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은 미소를 띠고 조는 표정이다. 축 처진 다리를 질질 끌며 어디론가 목적 없이 발을 옮기던 제임스의 처참한 뒷모습이 그와의 마지막이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제임스의 걸프랜드는 마약 과다로 죽었단다. 종종 창문 밖을 내다보며 그와 비슷한 남자가 지나가면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닐까? 희망을 품고 유심히 살피지만, 제임스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스미스 부인과 마리아가 죽고 제임스가 사라지는 동안 아이린과는 서너 번을 더 만났다. 
“우리 동네에 아틀란틱 시티로 가는 무료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있어요. 바닷가를 거닐다 식사한 후 갬불도 할 겸 바람 쐬러 갈래요?” 
상처 입은 그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100불만 들고 그녀와 함께 아틀란틱 시티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난 후 Slot machine(슬롯머신) 으로 가지고 온 돈을 몽땅 잃었다. 

 아이린은 죽은 아들을 잊고자 여행도 하고 요리학원에도 다녔지만 마을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갬불이 그나마 아들의 죽음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함께 아틀란틱 시티에 가자고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전화했다. 
“아이린 우리 애들이 지금 한창 대학 준비를 하는데 내가 집을 자주 비우면 안 되는 것 알지요. 이해해 줘요.“ 
그녀는 아이들 교육이라면 양보한다는 듯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 잘 살겠다고 괴로워 방황하는 그녀 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와인 한잔을 원샷으로 죽 들이켰다. 아이린이 아들의 죽음을 잊기 위해 도박을 하듯 나는 그녀의 상처를 위로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술을 마시고 애매모호함으로 나를 위로해야만 했다. 
“마누라 이러다 알코올 중독되겠어!” 
“중독 아니라니까!” 
“한 달만 끊어보자.” 
“삶의 낙이 저녁에 와인 한잔 마시는 건데 그것도 마시지 말고 무슨 낙으로 살라고~ 알았어요. 그만 마실게요.” 

 오랜 세월 하던 짓을 멈추니 돌던 톱니바퀴가 멈춘 듯 조용하고 막막하다. 저녁에 사람들이 드라마 연속극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가듯 저녁상에 술 한잔의 기다림이 있었다. 술 없는 허전함을 어찌 다 표현하리오! 

 우리 아이들이 대학 간 후, 나는 아이린에게 전화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 아니에요. 동네에서 통 볼 수 없으니. 우리 만나요.” 
“라스베이거스에서 무료 비행기표와 호텔 숙식을 보내와서 갬블 토너먼트에 자주 가느라 바빠요.” 
돈을 많이 따는지 밝은 목소리다.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걸어가는 아이린을 봤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녀는 다리가 불편한지 지팡이까지 짚고 있었다. 도박으로 재산을 날린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복덕방에 매물로 나온 그녀의 건물 사진을 봤다. 혹시나 도박하다 집이 넘어간 게 아닐까?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쳐다보는 내 눈에서 불꽃이 튀긴다. 
“감자처럼 생긴 남편과 오이지 닮은 나에게서 어쩌다가 저런 알찬 밤톨과 도토리가 나올 수 있을까?” 
기분이 좋아진 나는 큰 녀석 쳐다보고 한잔, 작은 녀석 쳐다보고 또 한잔 부지런히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엄마 천천히 마셔요.” 
작은 녀석이 한마디 한다. 큰 녀석이 
“엄마, 그만 마셔요.” 
술병을 테이블 밑으로 감추며 두 녀석이 슬픈 눈으로 나를 걱정스럽게 빤히 쳐다본다. 
“미안해. 이젠 마시지 않을게.” 
술을 마시지 않고 있자니 말이 없어지며 뭔가 허전하다. 졸음이 온다. 
“엄마 잠깐 누웠다 나올게.” 
침대에 누워 천정을 멍하니 쳐다본다. 위층에서 제임스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제임스처럼 되지 않으려면 술을 끊어야 하는데… 

 두 아들의 슬픈 눈이 떠올라 저녁 5시 이후에만 마시려고 시계를 보고 또 본다. 그러다가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닐까? 의심이 들면 잠시 술을 끊는다. 2주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역시 나는 중독자는 아니군.’ 하며 또다시 오후 5시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밥하기 싫어 부엌으로 가기 싫던 발길이 와인을 마시려고 부지런을 떤다. 일일 노동자가 고된 노동을 술로 달래며 일하듯 와인을 마시고 저녁상을 준비하면 집안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원기소요 시금치여서 뽀빠이처럼 기운이 솟는데 마시지 말라니! 

 아이린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집을 팔고 동네를 떠난 것이 아닐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갬블로 재산을 다 날려 오도 갈데없는 엄마를 딸이 자기 집에 데려다 같이 살고 있다. 집에 있어야 할 엄마는 자주 사라졌다. 딸이 엄마를 찾아 헤메다 보면 엄마는 아틀란틱 시티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는 도박에 빠진 엄마 때문에 슬퍼하는 딸의 사연의 기사를 어디에선가 읽었다. 왜 나는 아이린이 생각날 때마다 아틀란틱 시티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잡지에 실린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날씨도 쌀쌀한데 오늘 저녁엔 오징어볶음에 와인 한잔 어때요?”  
나는 상냥한 목소리로 남편을 꼬드긴다. 
“좋지!” 
남편은 신이 나서 채소와 오징어를 웍에 들들 볶으며 되지도 않는 중국말로 
“니하오마~. 쎄시.” 
를 외친다. 뭘 그리할 얘기가 많은지?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다. 술기운에 수도 없이 한 얘기를 처음 듣는 양 신이 나서 잔을 주거니 받거니 밥상에서 일어날 기미가 없다. 
“부부 사이가 좋아 보여요?” 
사람들이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시인하곤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좋은 부부 사이라는 것이 술기운이었다. 

 마약, 술, 도박, 물건 저장강박증 (hoarders) 은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게 한다. 망가져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한다. 술은 그냥 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나도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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