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3, 2022

지방 도로라도 괜찮아


 시멘트 바닥을 밟던 발밑이 갑자기 푹신하다. 흙 속으로 빠져드는 편안함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장식하고 버린 트리를 잘라서 산책로에 누군가가 뿌려놨기 때문이다.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때면 집마다 트리를 사들인다. 공들여 꾸민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트리는 멋지게 뽐내며 사랑받다가 연말이 지나면 버려진다. 
길거리에 나뒹굴던 트리가 잘려 발밑에 깔리는 천 덕구리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뭉개져 흙으로 돌아가겠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안 깐 힘을 쓰는 듯 향기를 뿜어낸다. 가엾어 애틋하다. 나무 향에 취하여 깊은 산속을 거닐듯 나는 어린 시절을 더듬었다. 

 대학 1학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단짝 미야와 내가 명동 번화가에 있던 단골 옷 가게 논노와 반도 패션 앞에서 귤을 팔던 장면이 떠올랐다. 미야는 회현동에 살았다. 나는 옆 동네 남산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앞 동네 명동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캐럴 소리에 발맞춰 연인들은 손을 잡고 명동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산타와 루돌프 등으로 장식한 상점 앞에는 손님들로 들끓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집에 들어온 과일 상자에서 슬쩍 빼낸 귤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들고나왔다. 달나라의 옥토끼를 닮은 미야가 귤을 내밀며 또랑또랑한 둥근 눈을 쫑긋거리기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맞은편 자선냄비에도 쉴 새 없이 돈이 들어갔다. 구세군 아저씨도 기운이 솟는지 종을 더욱더 힘차게 흔들었다. 모두가 흥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이용한 것이다. 서너 시간 만에 두 바구니의 귤이 몽땅 팔렸다. 우리는 두툼한 주머니를 두드리며 소공동에 있는 중국집으로 신나게 달려갔다. 
 
“너 짬뽕 먹을래? 짜장면 먹을래?” 
“짬뽕. 추워서 국물 먹고 싶어.” 
“그럼 나는 짜장면.” 
우리는 그냥 서로 물어볼 뿐이지 무조건 한 사람이 짬뽕하면 다른 사람은 짜장면 한다. 반반씩 나누어 배를 채우고 난 후 오비스 캐빈(OB’S Cabin) 맥줏집으로 입가심하러 갔다.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기대감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음걸이는 날아오를 듯 가벼웠다. 

 중학교 때 미야는 5번 나는 6번으로 우리는 늘 키가 작았다. 작은 둘이 붙어 다니며 옥신각신하다가 친해졌다. 대학에 가서는 아예 붙어 다녔다. 내 아버지도 미야의 부모도 장사꾼이다. 우리는 장사꾼 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용돈은 용돈대로 챙기고 숟가락만 들고 다니다 기회가 오면 꺼내 들었다. 

 겨울엔 회현동 미야의 집 뒤뜰에 있는 별채에서 놀았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안채에는 가지 않았다. 미야 부모님은 장사하느라 바빠서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우리는 큰 거울 앞에 서서 머리에 핀을 꽂아 보고 모자를 써보고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서로 쳐다보며 웃곤 했다. 집시 같은 옷을 번갈아 입어보며 뒹굴다가 오후에는 명동으로 출근했다. 일단 짬뽕과 짜장면을 반반씩 나누어 먹고 카페나 술집을 기웃거렸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들러붙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수선화가 나오고 개나리가 피고 목련꽃이 벌어지는 봄이 오면 우리는 이산 저산 찾아 나섰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숟가락 하나씩 꽂고 겁도 없이 산에 올랐다. 
“꼬마야 너희들 어디 가니?” 
으레 젊은 아저씨나 남학생들이 물었다. 그들은 등산복을 입고, 이고 지고 짐이 많지만 우린 용돈과 숟가락만 있으면 만사형통했다. 짐이 없는 우리에게 사람들은 호기심에 ‘너희들 마실 가냐?’고 묻곤 했다. 
“우리도 산에 가요.” 
밀짚모자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놓고 미야가 앳된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미야 옆에 바짝 붙어서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살피느라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는 인상 좋고 착한 사람 뒤를 졸졸 따라갔다. 

 산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보다 10살 이상 차이 나는 아저씨 4명이 다가왔다. 
“꼬마야 너희 몇 학년이냐?"
고등학생 취급하며 물어보는 한 아저씨에게 미야가 애교 섞인 짜증 난 소리로 
“우리 대학생이에요.” 
“거짓말하면 안 된다. 어느 대학인데?” 
우리는 속옷에 달린 각자 다른 대학 뺏지를 살짝 보여줬다. 
“아쭈! 정말 대학생이네.” 
아저씨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짓으로 서로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번갈아 가며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함께 걷던 아저씨들이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다는 듯 걸음을 멈췄다. 우리도 멈추려다가 서로 쿡쿡 찌르며 그냥 계속 가는 척했다. 
“너희들 배고프지 않니? 밥해 줄게. 먹고 가라.” 

 아저씨들이 버너 위에 냄비를 얹고 물을 끓였다. 우리 둘은 숟가락을 꺼내 들고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펄펄 끓는 작은 냄비 속에 한 아저씨가 작은 냄비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지 않은 많은 양의 시금치를 쑤셔 넣었다. 그 많던 시금치는 숨이 죽자 작은 냄비 안에 전부 들어갔다. 우리 둘은 깜짝 놀라 요술 구경을 보는 듯 탄성을 질렀다. 
“너희들 숟갈이나 들고 다니며 노느라고 밥할 줄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밥을 해본 적도 없지만, 밥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저씨들은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 소리처럼 들리듯이 기타도 잘 쳤다. 게다가 무지 웃겼다. 

아저씨 넷과 우리 둘은 그 산행 이후에도 자주 만났다. 미야가 그중 키 크고 잘생긴 배우 강동원을 닮긴 했는데 강동원보다는 눈이 조금 작은 김 씨 아저씨를 좋아했다. 그중 키 작고 얼굴이 늘 술 취한 듯 빨간 방 씨 아저씨는 실실 웃으면서 나보고 사귀자고 했다. 방 씨?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성이다. 어디서더라? 
“엄마 방 씨 남자가 나보고 사귀자는데.” 
“안 돼~ 너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니. ‘천방지축마골피’ 성을 가진 남자와는 안된다고.” 
“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성 같더라.” 
박 씨와 조 씨 아저씨들의 애인들과도 만나서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박 씨 아저씨 결혼식에도 참석하느라 미야와 나는 눈 코틀새 없이 바빴다. 결국 결혼 적령기였던 아저씨들과 열아홉이었던 우리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끝났다. 미야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저씨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비록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우리지만 사귀고 싶은 대상은 지적이고 감성적인 남자였다. 귀티 나고 토키처럼 올망졸망한 미야는 껴안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남자들의 끊임없는 시선을 받았다. 게다가 까칠한 성격 또한 그들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미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기가 치솟아 따라다니는 남자가 많았다. 나는 항상 미야에게 밀려 대부분 들러리 역할을 하다가 끝났다. 그래도 인기 있는 미야와 함께 다니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겨 밀려도 상관하지 않고 간접적인 사랑을 즐겼던 듯하다. 

 미야가 주선한 미팅에서였다. 한 테이블에 여학생 다섯 명이 나란히 앉았다. 맞은편엔 남학생 다섯이 줄지어 앉았다. 미팅을 주선한 미야와 남자 쪽 대표가 종이쪽지에 숫자를 적어서 나누어 줬다. 내가 쪽지를 펴서 숫자를 보고 남자를 확인하려는 순간 미야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자기 쪽지와 내 쪽지를 잽싸게 바꿔 챘다.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장소를 옮기려고 짝지어 흩어져 나가는 틈 사이로 내 파트너가 될 뻔한 남자를 눈여겨봤다. 와! 한눈에 내가 염원했던 로맨틱한 너드 타입이다. 

 미야는 나에게서 뺏은 너드 남을 만난 이후 예전의 미야가 아니었다. 자주 만날 수도 없었지만 만나도 그녀의 오감은 온통 너드에게 빼앗긴 듯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야와 붙어 다니며 신나던 시절과는 다른 크리스마스가 오고 또 지나갔다. 데이트하느라 바쁜 미야의 머릿속에는 우리들의 옛 기억은 아예 없다는 듯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너드에 대한 나의 흠모를 미야가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 지금까지 확인해 본봐는 없다. 미팅 이후 의기소침해진 나와 미야는 가까이도 멀리도 할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다른 친구 영애가 나에게 남자를 소개해 준다고 종로 4가에 있는 엘파소 다방으로 나오라고 했다. 때 수건으로 세게 밀어 벌게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며 화장을 했다가 지우고 했다가를 반복했다. 이 옷 저 옷을 죄다 꺼내 입어보다가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이고머니나! 옷더미에 쌓인 방을 뒤로하고 가장 높은 구두를 찾아 신었다. 
“어디 가니? 이 추위에 짧은 치마 입고. 너 작은 키에 그렇게 높은 구두 신으면 더 작아 보여. 대머리들이 벗겨진 머리 가리려고 몇 가락 남은 옆 머리카락을 끌어다 반대편에 붙이는데. 나 봐라. 나는 뒤로 확 넘기지 않았니. 가린다고 가려지냐. 바람 한번 불면 끝장인데. 대머리면 어떻고 키 작으면 어때.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야지. 
“아버지는 대머리 가릴 옆 머리카락도 없으면서.” 
“너 늦게 다니지 말고 용돈 받고 싶으면 9시 전에는 들어와라.” 

 다방에 들어섰다. 손을 번쩍 드는 영애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확~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면서도 놀 줄도 알 것 같은 세련된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무게 잡고 앉아 있었다. 무표정으로 내뱉는 나지막하면서도 선명한 매력적인 목소리,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한다고 영애가 귀띔했다.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의 시선을 피하며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만 마시고 헤어졌다. 끝난 인연이라며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신이 나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좋아해도 나를 별로로 생각하는 남자에게 나 또한 미련 없다. 우리의 만남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다가 끊겼다. 

 어느 화창한 초봄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연초록색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치고 봄바람에 이끌려 나갔다. 그러나 두어 번 만나다 다시 끊겼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어느 날 미야가 사귀는 너드가 군대에 갔다며 미야에게 연락이 왔다. 미야의 애끓는 사랑 타령을 듣다가 흥분한 나는 미야를 꼬드겨 진해 가는 기차에 올랐다. 진해 해군기지에 장교로 가 있는 너드 남을 찾아 나선 것이다. 각진 하얀 얼굴에 걸쳐진 검은 뿔테안경 안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무심히 쳐다보던 너드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의 눈과 마주칠 것이 두려워 진해 가는 것이 망설였지만, 미야의 가슴앓이를 풀어주려고 무작정 기차에 탔다. 

 군인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우물쭈물 서로 등을 떠밀며 해군사관학교 정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너드는 유니폼 안에서도 반짝였다. 글쎄, 영화 버닝과 미나리에서 역을 맡은 스티브 연이 안경 낀 모습이랄까? 너드와 마주친 나는 벌게진 얼굴로 당황해서 시선을 어디에다 둘 줄 몰라 버벅댔다. 내 시선은 어두운 밤하늘, 전등처럼 빛나던 벚나무 아래 머리를 맞대고 사랑을 나누던 남녀에게로 옮겨졌다. 정신을 차려 둘러보니 미야가 곁에 없었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벚나무 아래 한 덩어리가 되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며 설레든 어처구니없든 내 모습이 선명하다. 

 제대한 너드를 만나느라 바쁜 줄 알았던 미야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나 중매로 만난 남자와 데이트한다. 아버지가 결혼하래. 남자가 실력도 있고 유능하데. 그런데 내 타입이 아니야.” 
“말도 안 돼. 너드는 어떡하고?” 
“나만큼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나 봐. 결혼하기에는 이르다며 공부를 더 하겠다고 뉴욕으로 유학 간 데.” 
“어머머 그랬구나! 너도 함께 가겠다고 하지. 그랬니.” 
“그와 결혼해서 함께 간다면 모를까. 공부하고 담을 쌓고 놀기만 한 내가 유학을 간다고? 공부도 하기 싫지만, 그도 나의 맹한 점이 싫어졌나 봐. 매달려 봤지만, 소용없었어.” 
"힘내라.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들 많잖아. 너드가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정작 결혼하면 비위 맞추며 살기 고달프지 않을까? 나도 너 바쁜 사이에 영애가 소개해 준 남자 만났다. 그런데 들쑥날쑥 연락하는 것이 나를 좋아하지 않나 봐.” 

항상 즐겁기만 했던 우리들의 해맑은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축 처져 찌그러진 모습으로 차를 홀짝거리며 각자 생각에 빠져있다가 습관적으로 중국집으로 향했다. 
“난 짜장면. 넌 짬뽕 먹어. 그리고 군만두에 배갈도 시키자. 기분도 꿀꿀한데.” 
“좋지.” 

 미야는 사랑하던 너드 남이 뉴욕으로 유학 떠나자 한동안 방황했다. 그리고 새로운 멋쟁이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중매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세련된 친구들이 한 명씩 결혼하자 미야도 결혼으로 안정되고 싶어했다. 

 낙엽을 마구 떨구던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들쑥날쑥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해 준 영애 말로는 교회에서 만난 늘씬 날씬한 여자와 사귀다 깨졌다나.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내 연애 철학이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역시 그는 나를 두어 번 만나다가 또 사라졌고 나 또한 그런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길든 듯 열 올리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에 습관처럼 귀 기울이다가 정말 울리는 요란한 벨 소리에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미야의 더욱더 처진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단골 중국집에서 만났다. 
“나 결혼 깨졌어. 우리 아버지가 중매쟁이가 미심쩍어서 그 남자의 뒷조사를 해봤는데 그가 알았는지 기분 나쁘다고 나와 결혼하지 못하겠데. 잘 됐지 뭐. 하지만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내가 결혼한다고 이미 알렸거든. 체면이 구겨진다며 난처해하셔. 마침 나를 좋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가 대타로 결혼해 주겠다고 나섰어. 그런데 이 대타가 허우대는 멀쩡한데. 둔해 보이는 것이 영 지적인 분위기가 없어. 이 결혼할까 말까 고민이야.” 
“야, 죽 들이켜. 고민 있을 때는 술이 최고야. 술이 들어가면 마음이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간 듯 훤하고 시원해져. 머리 회전도 잘 되고.” 
한 잔 쭉 들이켜니 정말로 묘안이 떠올랐다. 
“네가 사랑하는 너드와 결혼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1차선이 아니면 2차선으로, 그 길로도 아니라면 3차선으로 가면 되잖아. 대타가 굳이 싫지 않다면 간단하게 청첩장만 다시 찍으면 되지 않을까? 네 아버지 체면도 살려주고. 누가 아냐 아버지가 아파트 얹어서 결혼시킬 줄.” 
미야는 대타와 결혼했다. 미야가 결혼하는 날, 나는 새로 장만한 연회색 단아한 원피스를 입고 예식장에 갔다. 새로 사귄 화려한 연예인 같은 처자들에게 둘러싸인 미야를 떨어져 훔쳐보는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용히 식장을 나와 충무로 거리를 마냥 걸었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혼하자는 남자도 없고 취직도 해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장사꾼인 아버지가 장사라도 도우라고 강요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장사해서 번 돈을 이리 메꾸고 저리 메꾸며 부동산을 사들이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절대 장사꾼만은 사양하고 싶다. 몸은 무척이나 한가했지만, 마음은 두서없이 혼란스러웠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미야와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 물 흐르듯 흘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선생이 되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너는 항상 뭔가를 하려고 하면 운이 따르더라. 서울로 발령받는 시험이 어렵다고 모두가 경기도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너는 서울 순위 고사를 보는 거야.” 
아버지 말은 적중했다.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운 좋게 합격해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발령 났다. 

 선생 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이었다. 들쑥날쑥에게 연락이 왔다. 예전과는 달리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뭔가 수상하면서도 다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마시려던 찻잔은 시간이 멈춘 듯 한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오글거림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갑자기 맑아졌다. 담담하게 잔을 조용히 탁 내려놨다. 눈을 마주 쳐다보기가 싫었다. ‘글쎄 우리가 결혼할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냐고요?’ 라고 뱉으려는 혀를 꽉 깨물고 쿨하게 대답했다. 
“생각해 보겠어요.” 
들쑥날쑥에게 왜 그동안 왔다리 갔다리 했냐고 물어볼 만큼 그는 나에게 틈을 준 적이 없었다. 나 또한 물어볼 만큼의 관계 진전이 없었기에 묻지 않았다. 그냥 그가 만나자고 하면 선뜻 만나주는 한입 베어먹고 버려도 그만인 앙꼬 빠진 말랑말랑한 찐빵 정도로 그는 나를 생각했던 것일까? 교회에서 어느 처자에게 차이고 나에게 또 접선? 

 미야의 신혼집에 갔다. 넓은 거실에 기다란 초록색 융단 소파가 눈에 띄었다. 반기듯 끌어당기는 소파에 몸을 던져 누웠다. 소파를 살살 쓰다듬으며 
“색깔도 곱네. 이거 수입품이지. 결혼하니까 좋냐? 
“그렇지 뭐. 그냥 그래.” 
“나도 그 들쑥날쑥이가 결혼하자고 하더라.” 
“너 양주 마실레?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하자.” 
“얼음 많이 넣지 말고 줘. 밍밍한 것 싫어. 네 남편이 우리 술 많이 마시는 것 알아?” 
“응 함께 자주 마셔. 내가 뭘 하던 잔소리하지 않아. 신경 쓰지 말고 예전에 하던 대로 해.” 

 동료 미술 선생과 미술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창문 틈으로 웬 아이가 봤는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이 ‘담배, 담배 지나간다.’고 속삭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직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 선생질 때려치우고 싶었다. 갑자기 결혼하자는 왔다리 갔다리에게도 정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맘이 맞는 미야는 가족 행사로 바빴다. 딸을 낳고 키우느라 나와 짬뽕도 짜장면도 먹지 못했다. 나는 서울 하늘 아래 뚝 떨어져 혼자된 소외감으로 헛헛했다. 미야와 지내던 시간을 껌 씹듯 질겅질겅 씹다가 뱉다가 씹고를 반복하듯 되새겼다. 서울을 떠나 어디론가 튀어 달아나고 싶었다. 공부하면 나도 유학 갈 수 있을까? 
“아버지 나 파리로 유학 갈래요.”
"파리, 왜 하필이면 태양이 지는 나라 프랑스냐. 가려면 뜨는 나라 미국으로 가야지.” 
“그럼 서울에서 가까운 LA에 있는 미술 대학으로 갈까요?” 
“이왕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술의 도시 뉴욕으로 가야지. 공부 따라가기 힘들거든 맨해튼 한복판에 나가 몇 달만 서 있다가 와도 앞으로 네 인생에 도움이 된다. 결혼하면 뭘 하냐. 무자식이 상팔자다. 높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훨훨 자유롭게 날아봐라.” 

 누가 알아. 맨해튼 한복판에 서 있다가 미야의 너드를 만날 수 있을지? 외국으로 향하는 굳게 닫힌 출구를 통과하기 위해서 유학 시험에 또 매달렸다. 뉴욕에 있는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다. 

 나의 모르쇠가 발동한 이상 나는 왔다리갔다리를 더는 만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몇 번인가를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내 남자 동생과 술을 마시며 넋두리를 그럴싸하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나는 들쑥날쑥이가 더는 닿을 수 없는 뉴욕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울먹이는 미야의 공허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너 나랑 놀기만 했는데 언제 공부해서 선생 되고 유학 가게 된 거야?” 
나는 준비도 없이 별안간 미야를 잃고 공허한 시간 속에서 헤맸던 단련된 평정심으로 담담히 대답하려고 헛기침을 하며 폼을 잡았다. 하지만 갑자기 코 등이 찡해진 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너와 짜장면 짬뽕 먹지 못했잖아. 남아도는 시간에 공부 좀 했어. 너 때문에 서울을 떠나게 됐나 봐.”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장소는 소공동에서 강남의 중국집으로 옮겨졌지만 미야와 나는 짜장면과 짬뽕을 반반 나눠 먹으며 옛 시절이 그립다며 넋두리를 한다. 시집 식구들 흉보며 열 올리는 미야는 여전히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며 오물오물 당근을 씹듯 시집 식구를 씹는 모습이 귀엽다. 내가 낄낄거리며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까칠어진 미야는 짜증 난다는 듯이 
“너도 네 시어머니 흉 좀 봐라. 나만 바보 만들지 말고. 시 짜들은 다 이상하지 않니?” 
“나는 친정도 시집도 뚝 떨어져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 남편이 돈 못 버는 화가라서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돈 내놔야 해서 연락도 하지들 않아.” 

 나와 미야는 지적이고 감성적인 남자와는 거리가 먼 결혼을 했다. 나는 1차선도 2차선도 3차선도 포기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서 지방 도로를 기웃거리며 영주권 해줄 만한 남자에게 접근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적십자 구조라도 받는 듯 그냥 남자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미야는 남편이 신문조차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만을 토했다. 그냥 남자이기만 한 내 남편은 뉴욕 타임스는 5분 읽은 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서울에서 발간되는 조중동 신문을 읽지 않으며 몸살이 나는 사람이다. 게다가 감성적이거나 로맨틱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나마 미야 남편은 키 크고 잘생기기나 하지 내 남편은 영 아니다. 다행히 대머리는 아니다. 

 제대로 데이트도 못 하고 세월만 보낸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한 낭만적인 둘쑥날쑥이가 궁금했다. 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구글링했다. ‘오마이 갓’ 유명 목사가 되어 큰 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이 떴다. 잘생긴 모습은 세월에 묻혔다. 벗겨진 대머리를 가리려고 뒤에 남은 머리카락을 앞으로 빗어 내리고 몸은 말랑말랑 호빵처럼 부풀었다. 그러고 보니 목사 사모 감을 찾느라 나에게 왔다리 갔다리하다가 내가 그나마 안정된 직업인 선생이 되자 접선했었나? 

 “여보, 나를 한때 말랑말랑하게 보던 그 들숙날쑥이가 목사가 됐더라고. 그 인간과 결혼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차라리 화가 마누라가 낫지. 목사 사모는 절대 아니야. 전혀 나에게는 해당 사항 무야. 종교의 노예로 살 뻔했잖아. 하나님이 나를 보우하사. 땡 갓.” 
“내가 몇 번이나 말해. 우리 결혼 전에 엄마가 사주를 봤다고. 사주쟁이 30년 만에 이렇게 좋은 사주는 처음이라고 기함을 했다는 것 기억나?” 
기억나지 않는다. 사주를 믿지 않는 나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말랬다고 남편은 나누어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각자 먹고 싶은 것 시켜서 먹자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하나 더 시키든지. 내 것은 넘보지 마.” 
내가 짬뽕을 먹을 때 남편의 간짜장 가락은 서너 번의 젓가락질로 사라진다. 내가 짜장면을 먹을 때 남편은 해물 짬뽕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신문을 읽는다. 나는 남편 앞에 놓인 빈 짬뽕 그릇을 아쉬운 듯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며 미야와 함께 했던 옛 시절로 들어간다. 
“왜 그래. 또 멍해서. 정신 차려. 머리가 도는 이석증이 또 온 거야. 빨리 집에 가자. 뭐 좀 하려고 하면 머리가 도니. 나 원 참!” 

 가려운 등에 손이 닿지 않아 긁지 못하고 끙끙대며 누군가가 긁어주기를 바라듯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 나누어 먹고 싶은 내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는 인간과 내가 기함할 사주라고? 아~, 짜장 면발과 짬뽕 국물이 뭐라고 포기할 때도 지났지! 다 잊고 지방도로도 벗어나 산책길을 타박타박 걸어서라도 move on 하자. 

 잘린 크리스마스트리 향을 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동안 밴치에 앉아 옛 추억에 젖어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서울 남산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동양 여자가 앞에서 걸어간다. 마스크와 장갑, 모자로 중무장했다. 나이 든 한국 여자 특유의 휘적휘적 팔자걸음으로 걷다가 길가에 핀 개나리꽃을 들여다본다. 
‘언니가 왜 저기에?’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에 여자는 얼른 피하듯 발걸음을 재촉해 멀리 가 버렸다. 맙소사! 한국을 떠난 지 40여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서울의 한 풍경 속에 있는 듯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갑자기 고국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잔잔한 슬픔에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졌다. 그동안 바이러스 핑계로 사람들 접촉도 없이 외딴섬에 갇힌 듯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헛것이 보였나 보다. 

 개나리꽃이 나올까? 말까? 망설이듯 고개를 내밀고 추위에 떨고 있다. 매서운 바람에 질린 듯 괜히 일찍 나왔나? 아차 싶은 모습이다. 개나리꽃에 달려드는 바람막이를 하며 수줍은 듯 억지로 웃는 듯한 노랑 꽃잎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등줄기에 찬 기운이 느껴진다. 종아리가 추운 것은 참을 수 있지만, 팔뚝이 으스스 떨리면 감기 오기 십상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더 껴입고 나을까? 망설이며 집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냅다 뛰기 시작했다. 허드슨강이 보인다. 뛰기를 멈췄다. 대서양 조수에 따라 하루에 4번씩 해수가 바뀌는 강물이다.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를 무심히 응시했다. 물줄기 따라 콜롬비아 대학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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