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30, 2023

놀마의 주황색 백팩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은 잊어버리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민주는 이 인용문을 입증하려는 듯 정희를 떠올리곤 한다. 요즈음도 정희는 그 무거운 주황색 백팩을 메고 다닐까? 정희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희미하지만, 그녀의 등에 얹혀 그녀를 짓눌렀던 주황색 백팩의 암울한 덩어리는 개 양귀비 핏빛으로 뇌리에 문득문득 떠오르며 민주를 따라다닌다. 

민주는 누군가가 다가와 손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터널 끝의 희미한 빛을 향해 어두움에서 헤매는 노처녀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옷 가게를 전전하며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버티며 예비 선거와 총선거 당일 직원으로 한 해에 두 번 여러 해 동안 일했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이지만, 적지 않은 급료를 받을 수 있는 두 날 만큼은 빼먹지 않고 일했다. 


오래전 11월 초, 화요일 총선거 날이었다. 퀸스 초대 교회 근처 어느 고등학교 투표소로 기억한다. 민주는 그날 그곳에서 선거 당일 직원으로 나온 정희를 만났다. 둘의 나이가 비슷해서였는지 선거 오전 중 이미 통성명을 트고 친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러 나갔다. 바윗돌 같은 주황색 가방이 정희의 몸을 누르고 뒤로 밑으로 당기며 그녀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정희는 무너지지 않을 자세로 어깨를 구부리고 백팩을 끌어당기며 보폭을 넓게 내디뎠다. 민주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뭔가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근처 중국집에 들어갔다. 정희는 가방이 자기의 분신인 양 옆의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새벽부터 찬 공기를 씐 둘은 몸을 녹이려는 듯 웨이트리스가 다가오자 동시에 짬뽕을 외쳤다. 민주는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정희는 며칠을 굶은 듯 국물 한방을 남기지 않고 베큠처럼 흡입하듯 단숨에 먹어 치웠다. 정희의 시선이 민주의 남겨진 붉은 짬뽕에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꽂혀 있었다. 민주는 정희의 식욕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다. 먹기 전에 덜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정희는 잘 먹지 못하는 민주가 안타까운 것인지 남겨진 짬뽕이 아까운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민주를 쳐다봤다. 


짬뽕을 순식간에 해치운 정희의 손이 가방끈을 꽉 잡고 있었다. 민주는 궁금해서 묻지 않을수록 없었다.

“왜 그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녀요?”

“이 가방 안에는 나의 중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

“중요한 물건이라면 더욱더 집에 둬야지.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무겁지 않아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데 내 물건을 뒤지고 손대는 것 같아요. 무겁지만 가지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 

민주는 ‘주황색 백팩이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며 육신을 변형시킬 텐데.’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황색 백팩을 당연히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로 굳어진 정희의 비쩍 마른 몸과 어두운 표정은 그녀를 만난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는 백팩의 무게에 짓눌린 정희의 모습이 안쓰러운 반면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겨울이 끝나가는 화창한 어느 봄날, 민주는 정희의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한편으론 ‘여전히 주황색 백팩을 또 매고 나올까?’ 궁금했다. NYU 캠퍼스 워싱턴 스퀘어에서 만났다. 민주는 봄볕에 달구어진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멀리서 주황색이 세월의 때가 묻어 갈색이 된 백팩을 메고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정희를 금방 알아봤다. 정희는 가방이 편하도록 벤치에 기대놓고 자신은 의자 끝에 히프를 얹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쑥스러운 표정으로 민주를 쳐다봤다. 둘은 별 변화가 없는 그렇고 그런 희망 없는 지난 삶을 주고받았다. 정희는 민주와 친해지고 싶은지 이야기에 열중했다. 반면에 민주는 계속 정희의 백팩에 눈을 주고 있었다.

“백팩이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민주가 용기 내어 정희에게 물었다. 

“남편과 이혼한 서류를 가방에 넣었더니. 무게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별반 없는데.”

“결혼했었어요? 나는 싱글인 줄 알았는데.”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그냥 결혼했었어요. 이혼을 해주지 않아 미루다가 드디어 얼마 전에 서류 정리가 끝났어요. 내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파란만장해요.”

민주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듣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지난 삶의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서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척했다. 말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정희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는 전라도 산골의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어요, 아래로 다섯 명의 동생이 밥 달라고 아우성들이었지요. 중학교를 중퇴하고 집안일을 거들다 내 입 하나라도 줄이려고 공장 다니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 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친구 따라 평택 미군기지로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미군을 만나 결혼하고 조지아로 왔어요. 미국 하면 화려하고 좋은 줄만 알았지 그렇게 깡시골에서 많은 식구와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줄은 몰랐어요. 시집 식구들이 득시글 모여 으르렁거리며 사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내 팔자려니 생각하고 부지런히 살려고 했는데 그만. 남편은 술만 마시면 화냥년이라며 저를 때렸어요. 보시다시피 제 얼굴이 조금 반반하지 않나요?”


민주가 이야기를 듣고 정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드문드문 있긴 하지만 시골 처자치고는 흰 피부, 짙은 쌍꺼풀의 큰 눈, 적당히 솟아오른 코, 뚜렷한 인중아래 입술은 얇아서 말할 때 떨리는 듯했다. 꾸미지 않고 질끈 뒤로 묶은 머리털은 거칠었다. 짊어진 가방에서 시선만 떼고 자세히 관찰했다며 예쁜 얼굴임을 금방 알아봤을 것이다. 몸매 또한 옷만 제대로 걸치고 주황색 백팩 없이 똑바로 섰더라면 팔다리가 길고 균형 잡힌 체형이다. 조상 대에서 외국인과 섞인 혈통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중학교 중퇴라는 학벌치고는 앞뒤가 들어맞게 말했다. 허스키 목소리는 쾌활하게 톤을 높였다가 금방 축 처지는 공허한 낮은 목소리로 일관성 없이 수시로 변했다. 그녀의 기분 또한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말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는가 하면 불안한 자세로 몸을 웅크린다든지 뭔가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민주와 눈이 마주치면  씁쓸한 미소를 짓고 깜빡했다는 얼빠진 표정으로 허리를 펴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마 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한번 열린 정희의 입은 한을 풀듯 이어졌다.


“깡촌에 모두가 얼굴이 검은데 딱 한 사람 나와 얼굴색이 같은 한국인이 20분 정도 걸어가면 동네 번화가에서 태권도장 하는 작은 남자가 있었어요. 키는 작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였죠. 두들겨 맞고 외로울 때마다 그 태권도장 창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그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기웃거리는 게 그나마 낙이었어요. 그 남자와 한국말 한마디만이라도 섞고 싶다는 희망으로 서성이다가 석양으로 붉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쉬운 듯 자리를 떴어요. 터벅터벅 옥수수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러고는 매 맞는 생활을 반복했지요. 그 남자도 멍든 얼굴로 그리움을 향한 외로운 몸짓으로 방황하는 나를 눈여겨봤나 봐요. 어느 날 그 남자와 남편 말대로 화냥년이 되었지요. 더 그곳에서 버티다가는 죽겠구나 싶어 뉴욕으로 도망 왔어요. 계절도 분간 못 하고 하필이면 겨울에 도망칠 생각을 했는지. 뉴욕에 도착하니 온천지가 하얗게 눈에 덮여 있는 거예요. ‘저 수많은 빌딩 속에 내 한 몸 누일 곳이 없다.’는 서러움이 복받쳐 많이 울었어요. 


우리 처음 만난 퀸스 잭슨하잇 그 동네, 자매가 사는 아파트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었어요. 내가 뉴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였겠어요. 술집에서 일했어요. 술대접받는 남자들이 죄다 폭군으로 보였지만, 저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어요. 남자들의 손을 보면 남편에게 두들겨 맞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쳐지고 저 손으로 맞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접근하는 남자들이 무서웠어요. 저는 세상 여자는 다 행복하고 나만 불행한 줄 알았어요. 룸메이트를 전전하며 다른 여자들의 삶도 그다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며 위안을 받았지요.


쌀쌀한 초겨울 밤, 일하고 집에 와서 물에 밥을 말아 단무지를 열심히 씹고 있었어요.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자매 중 동생이

“씹는 소리가 왜 이리 요란해요? 조용히 좀 먹을 수 없어요? 남자 친구가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는 데는 너무 민망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기가 막혀서.”

소리 빽 지르고는 문을 꽝 닫는 거예요. 나야말로 너무 놀라 황당했어요. 먹던 밥을 쓰레기통에 조용히 버리고 방에 들어와 숨죽이고 있었지요. 인기척 소리에 문틈으로 내다보니 덩치가 큰 남자가 아파트 문을 나서더군요. 결국 남자 부인이 찾아와 툭하면 나를 구박하던 그녀의 머리끄덩이가 잡히고 울고불고 난리가 몇 날 며칠 이어지다 막을 내렸지요.


자매 중 언니와 함께 7 트레인을 타고 술집으로 출근하는 어느 화창한 저녁이었어요, 그 언니는 식당에서 서버로 밤일했어요. 초저녁, 달리는 트레인 안에서 붉게 물드는 하늘을 쳐다보던 언니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어요. 

“괜찮아요?” 

내가 물었을 때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으며

“딸아이가 보고 싶어. 아이도 이렇게 해지는 저녁엔 나를 찾을까?” 

“언니 딸 있어요?” 

“웨이트리스를 하며 남편 박사 학위 뒷바라지를 했어. 학위를 받은 남편은 함께 공부하던 여자와 눈이 맞아 이혼을 요구했지. 그리고 딸을 데려갔어. 내 몸에서 냄새나지?”

“무슨 냄새요?”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하니까 몸에 냄새가 배서 아무리 목욕해도 빠지지 않아. 남편이 음식 냄새 나는 내가 싫대.”

눈물이 와락 쏟아져 둘은 손잡고 울었어요. 그 언니는 동생과 다르게 나에게 잘해줬는데.


돈이 조금 모이자, 근처에 아파트를 얻었어요.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파트타임으로 랭귀지스쿨을 다녔어요. 말은 그럭저럭했지만, 읽고 쓸 줄은 잘 못해요. 룸메이트에게 방을 내주고 나는 거실에서 지내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어요. 나만 불행 한 팔자라며 한탄했는데 들어오는 룸메이트마다 어찌나 사연이 많던지. 룸메이트와 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그들도 어려운 삶을 사는구나 공감하며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것을 터득했지요.


남편과 싸우고 집 나온, 틀어 올린 숱 많은 머리 아래에 뽀얀 얼굴을 우아하게 치켜들고 거울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던 룸메이트가 있었어요.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자기 얼굴에 자기가 반한 표정으로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 있었어요. 내 얼굴에 은하수 길처럼 쫙 깔린 기미의 크기가 줄어들었나 확인하고 싶어 그녀가 거울 앞을 뜨기를 기다리곤 했었지요. 인물이 반반해서인지 저녁마다 왼 남자가 찾아왔어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데려갔던가? 그녀의 내연남이 데리고 갔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녀가 떠나고 야채 가게에서 일하는 룸메이트가 들어왔어요. 일 끝나고 집에 올 때마다 상추를 잔뜩 가져왔어요. 상추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발라 우적우적 소리 나게 씹곤 했지요. 상추 씹는 소리에 부엌을 들여다보면 

“언니, 나는 세상에서 상추가 제일 맛있어요.” 

하며 미안한 듯 웃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소리 내서 먹어도 괜찮아.” 

상추 씹는 소리가 그녀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호소하듯 어찌나 슬프게 들리던지. 내 백팩에는 나의 이런저런 기억들도 들어있어요. 그래서 무겁지 않아요. 습관이 되어 별 불편함도 없어요. 이 백팩을 잊어버리면 제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끌고 다니는 거예요.”


정희가 시민권을 받기 전, 민주에게 미국 이름 짓는 것을 도와달라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노아 어때?” 

정희의 말에 민주는 

“노아의 방주가 생각나네. 글쎄 종교적 색채가 있어서 좀. 혹시 교회 다녀?”

“아니. 그럼, 놀마는 어때?”

“노아보다는 놀마가 괜찮은 것 같은데. 놀마(Norma) 뜻은 찾아봤어?”

“확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영어로 ​​standard, pattern, rule이라는데. 나 과거는 다 잊고 미국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어.”

민주는 정희의 정상적이라 말을 듣는 순간 주황색 백팩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주황색 백팩은 편한 자세로 침대 곁에 누워있었다. 


정희가 놀마로 이름을 바꾸고 시민권 받은 날 민주에게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축하주를 마시자며 놀러 오라고 했다. 민주가 찾아간 곳은 차이나타운 근처 술집이었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주춤했다. 창문을 통해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에서 놀마가 짧은 검은 치마와 가슴이 거의 드러나는 검은 레이스 배꼽티를 입고 바삐 움직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놀마의 검은 실루엣과 함께 주황색 백팩이 오버랩되어 아른거렸다. 놀마의 등에 업혀 바래고 피곤해진 무기물인 주황색 백팩이 생명체를 띄며 이제는 그만 등에서 내려서 쉬고 싶다고 진지하고 묵직한 표정으로 민주에게 하소연하는 듯했다. 쿵 하고 머리를 치고 뭔가가 빠져나가는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민주도 주황색 백팩처럼 놀마로부터 도망쳐 멀리 가고 싶었다. 문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술집을 뒤로한 채 그림자처럼 골목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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