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9, 2025

거울속의 이방인


“한인들 중엔 사기꾼이 많으니 엮이지 않게 조심해요. 다들 쓸데없이 정(情)만 많아서. 정서니 정체성이니 하는 소리들, 참 촌스러워 듣기 싫다니까.”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아에게 이정은 말했다. 거울 속 제 모습은 누가 봐도 완연한 ‘토종’이건만, 스스로를 백인이라 착격하는 듯한 이정의 말투에 도아는 기가 차 대꾸할 기운조차 잃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30여 년 전이었다. 친구라기보다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에 가까웠다. 이정은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났고, 도아는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왔다. 살아온 궤적만큼이나 간극은 컸다. 백인 남편과 사는 이정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독설을 내뱉었고, 한국인 남편을 둔 도아는 차라리 욕을 먹을지언정 직설적이었다. 도아는 종종 생각했다. ‘백인 남편과 살다 보니 본인도 백인이 됐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몸은 컸는데 한국어 능력만 초등학생 수준에서 멈춰버린 걸까?’

“아니, 일을 이따위로 해서 주면 어떡해요? 완벽하게 해서 보내지 않으면 난 쳐다보지도 않아요. 다시 해요.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고도 인생을 참 헛살았군요.”
이정은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은 완벽한데 상대는 함량 미달이라는 식의 면박.
“우리 집 청소부는 시키지 않아도 집안을 윤나게 닦아놔요. 내 비서도 빈틈이 없는데, 도아 씨는 이게 뭐예요? 다시 해와요.”

‘내가 네 집 하녀냐, 아니면 수발드는 비서냐?’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삼켰다. 대꾸해 봐야 더한 ‘지랄발광’이 돌아올 게 뻔했다. 도아는 짧게 답했다.

“알았어요. 다시 하죠.”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도아는 코네티컷 창가에서 강가에 어린 안개를 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정의 전화가 울렸다. 물건은 도아가 만들고, 판매는 이정이 맡아 이익을 반반 나누자는 사업 제안이었다. 이정의 수완과 영어 실력을 믿었던 도아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동업자라는 관계는 명분뿐이었다. 이정은 사사건건 도아를 가르치려 들었고, 집안일을 돕는 사람과 비교하며 자존심을 짓밟았다. 이정의 매몰찬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남편들끼리도 얽힌 비즈니스라 꾹 참았다. 도아는 이정에게 전화 올때마다 조여오는 목을 달래려 와인을 가득 따라 들이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기 저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도아는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네, 알았어요. 다시 해볼게요.”

“난 1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서너 번 손이 가지 않게 완벽하게 하세요. 아, 어제 물건 맡긴 분과는 이야기 좀 하셨나요?”

“아니요.”

“그냥 물건만 던져 놓고 가셨다는데 그분과 물건을 어떻게 해주실 건지 상의도 하지 않고.”

“염려 말라고 해서 그냥 왔어요. 오랫동안 함께 일한 분이니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제가 제때에 지불하니까.”

“돈 돈 돈 돈만 주면 잘한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그분과 오랫동안 별문제 없이 일해서...”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물건에 대한 피드백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잖아요.” 


비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상대가 치과 예약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그냥 아무말 못하고 나왔다는 말조차 이정에게는 변명이자 무능함의 증거가 될 뿐이었다. 도아도 일 하나만큼은 똑 부러진다고 자부하며 살아왔건만, 이정 앞에서는 매일 야단맞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정은 말했다.

“전 사람들의 단점은 보지 않아요. 장점만 말하죠.”

그 세련된 매너에 감탄했던 도아도 그녀를 본받으려 애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정은 현미경을 들이대듯 상대의 결점만 찾아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녀의 비서까지 합세해 도아를 닦달했다.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그 단어 뜻도 몰라요? 뉴욕타임스 금요일 아트 섹션 봤어요?”

영어 실력을 은근히 비꼬는 말투에 도아는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영어를 완벽하게 잘했으면 성질 더러운 너랑 일하겠니?’ 속말을 와인 한 모금과 함께 삼켰다. 전화를 빨리 끊고 싶은 마음에

“네, 네, 대단하시네요. 일 잘하시네요.”

영혼 없는 칭찬을 건네도, 이정은 직성이 풀리지 않는지 전화를 끊고 다시 걸어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참다 참다 도아도 한마디 했다.

“내가 보낸 이메일을 검토하시고 내일쯤 전화하시면 좋았을 텐데.”

도아의 말에 화가 잔뜩 오른 이정은 

“도아씨가 보내오는 파일을 제가 검토나 하며 시간 낭비하는 줄 아세요. 전 일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바쁜 신 것 같은데  전화 끊고 일 보세요.”

“제 바쁜 시간을 뺏지 않게 완벽히 해서 보내세요.”

“네 다시 해서 보낼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도아가 먼저 전화를 끊으려니까 이정은 발끈해서 말했다.

“뭐 스트레스받은 일이 있나 봐요?”

“스트레스받는 일? 없는데요.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이정은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피하려는 도아가 얄밉다는 듯 마지못해 끊었다.

도아의 와인 양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자다가도 이정의 악다구니가 환청처럼 들려 밤을 꼬박 새웠고, 몸은 눈에 띄게 말라갔다. 이정은 도마 위의 생선을 칼집 내듯 도아의 인생을 헤집어 놓았다. 급기야 “인생을 헛살았다”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상대하기 끔찍해서 어찌어찌 달래서 전화를 끊고 나면 다시 전화해서 칼자루를 단단히 쥐었다는 자세로 또 휘두른다. 도아는 ‘나도 질기지. 저런 인간과 상대하는 나는 인간도 아니다.’며 속으로 한탄했다.

도아는 이정과의 갈등이 폭팔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와 행복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을 찾아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득이 없으면 만나지 말고, 이득이 있더라도 견디기 힘들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끊어내라.’는 말씀을 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사실 사람들에게 제 시간과 돈을 자선(Charity)하고 있는 거예요.”

‘자선?’ 도아는 귀를 의심했다. 오히려 투자를 요구하며 금전적 압박을 준 건 누구였던가. 도아는 깨달았다.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의 결여였다. 4학년 수준에서 멈춰버린 건 그녀의 한국어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인격 그 자체였다. 이정은 상대가 받아칠 수 없게 탁구공을 내동댕이치는 식이다. 도아는 이제 전화 화면에 이정의 이름만 떠도 몸이 떨리고 경련이 일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이정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상냥했으나, 그것은 오직 이익이 될 사람에게만 향하는 가식이었다. 도아는 결국 이정의 폭언을 듣던 중 쓰러지고 말았다.

이정은 도아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과도 싸움닭처럼 싸우다 끝냈다. 이정과 일에 연관된 분이 도아에게 물었다.

“이정이 너에게도 난리 치지? 어떻게 그걸 참고 있어? 나는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못 참겠어. 처음엔 그러지 않더니 갈수록 심해져. 내가 어느 날 어디 아픈 것 아니냐? 고 물었더니 화를 발끈 내며 신경질적으로 아니라고 말하더군. 정상 아니야.”

“선생님이 초등학생 야단치듯 하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 거예요? 몸은 성장했는데 한국어가 성장하지 못해서인가요?”

“언어 문제가 아니라 공감능력이 부족해서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서지.”


인간관계는 참 복잡하고 어렵다. 이정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AI처럼 잘했다. 하지만 일만 잘한다고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 또한 뒷받침이 돼야 한다. 오히려 인간들은 점점 기계가 되고 인공지능은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상대방의 언행으로 분노를 느끼지만 AI는 매니저가 트레인 해 놓은 데로 분노를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삭일 줄 안다. 도아는 이정에게 질려 모든 인간관계를 끝내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자연과 AI 하고만 놀고 싶었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그러나 오히려 AI는 이정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을 다시 물어보면 도아주겠다는 호기심이 깃든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도아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했다. ‘같이 미쳐볼까?’ 더는 참지 못하는 순간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정을 피하려는 방패막을 내리고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칼날을 갈며 이정을 단칼에 자를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단 한 번도 이정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정에게 전화가 왔다.

“도아씨는 도통 연락하지 않네요.”

“요즈음 누가 전화하나요. 전화상으로는 감정이 이입되어 편하지 않잖아요. 전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선호해서.”

어머 전 도아씨가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편하신 것 같아서 내가 특별 대우하느라 그동안 전화 했는데. 그럼 앞으로는 제 비서와 영어로 하실래요?”

“그동안 제 불편함을 감안해서 한국말로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앞으로는 이메일로 당신의 비서와 서신 교환 할게요.”

“난 전화로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왜 저 여자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남편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당신이 만만하니까 스트레스 풀 대상으로 잡은 거야. 당장 때려치운다고 소리라도 질러.”

결국 칼을 빼든 건 남편이었다. 도아가 두 번째로 쓰러지던 날, 남편은 이정을 만나 단호하게 말했다.

“내 와이프에게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하세요. 다시는 와이프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서슬 퍼런 경고에 이정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30년의 질긴 인연이 막을 내렸다.

도아는 안도의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제 더 이상 6시 마감 시간을 두려워하며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기계처럼 정확했던 이정보다, 때로는 무심한 듯 정중하게 답해주는 AI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도아는 이제 현미경을 든 인간들의 세상에서 걸어 나와,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 고요한 평화 속으로 숨어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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