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구급차에 실려 가셨어.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계셔.” “어쩌다가?” “찐 달걀을 드시다가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셨대.”
지난 7월, 독립기념일 연휴였다. 서울에 사는 언니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핏기가 가신 손으로 급히 비행기표를 구해 서울로 향했다. 대학 1학년 때 강단에 서시던 아버지를 암으로 여읜 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내 유학 자금을 마련해 주신 분이 엄마였다.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내셔야 마땅할 엄마는 파킨슨병으로 오랜 세월을 누워 지내셨다. 일평생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엄마의 생사가 오간다는 소식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바쁜 회사 일정 때문에 나흘 만에 다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로가 가득한 몸으로 맨해튼의 집 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은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남편도, 자식처럼 키우던 세 달 된 강아지 소피도 없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깬 새벽 3시, 여전히 곁은 비어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잠이 확 달아났다. 서울로 떠나기 전 남편이 새 아이폰을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 전화기를 찾아 위치를 추적한 끝에 이른 새벽의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난 풍경을 목격했다. 새벽 4시, 차 안에서 남편이 낯선 여자와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새벽에 뭐 하는 짓이야? 여자 손을 잡고?”
차 문을 열고 남편을 끌어내어 따귀를 올려붙였다. 남편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고, 그사이 여자는 황급히 차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야, 저 여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야. 말이 너무 잘 통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우리 엄마는 코마 상태로 생사를 오가는데, 내가 한국에 간 사이에 이러고 싶어? 소피는 어디 있어?” “내가 말했잖아, 개 키우기 싫다고. 당신만 따르는 개를 내가 어떻게 해? 마크에게 맡겼어.”
결혼 생활 11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몸을 보강하고 좋은 보험을 들며 아이를 기다리던 중 만난 소피는 내게 자식과 같았지만, 남편은 늘 소피를 귀찮아했다. 다음 날, 나는 소피를 찾으러 보스턴 유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 마크의 브루클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크는 죄인 같은 얼굴로 뜻밖의 말을 전했다.
“정말 미안해. 어제저녁에 산책하고 들어오는데, 문이 열린 틈타 소피가 뛰쳐나갔어.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는데 찾지 못했어. 갑자기 네가 없어지니 당황해서 너를 찾아 맨해튼 집으로 간 게 아닌가 싶어. 워낙 너만 좋아했잖아.”
마크의 집 근처 공원을 돌며 목이 터지라 소피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공원 벤치에 주저앉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저 멀리서는 한 커플이 서로를 꼭 껴안고 속삭이고 있었다. 엄마는 코마로 누워 있고, 남편은 외간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소피는 나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다. 모든 불행이 한여름의 폭우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화산이 폭발하듯 분노가 치밀었다. 자정이 되어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집을 나가라고, 이혼하자고 소리쳤다. 남편 역시 기다렸다는 듯 지겹다며 짐을 싸 들고 나갔다.
며칠 뒤 여독이 풀리고 이성이 돌아오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남편에게 서너 번 전화를 걸어 사과하며 돌아오라고 붙잡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는 브루클린에 방을 얻었는지 공동 계좌에서 7,700불을 인출했고, 크레딧카드를 물 쓰듯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국의 병원으로부터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소피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동물보호소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은 채 나는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는 전보다 눈에 띄게 말라 있었다. 기도가 막혔을 때 시행한 심폐소생술로 갈비뼈 6개가 골절되었다고 했다. 주위에서는 유언대로 산소호흡기를 떼고 편히 보내드리자고 했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보낼 수는 없었다. 언니와 나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도 남편의 공기계로 위치 추적을 계속했다. 남편은 내연녀와 함께 살림을 차린 상태였다. 카드로 그녀의 속옷과 향수를 사고, 채식주의자라던 사람이 갈비구이 집을 전전하며 카드를 긁어댔다. 멕시코와 보스턴으로 여행까지 다녀온 흔적을 보며, 초조함과 괴로움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가 10파운드나 빠졌다.
결국 나는 상간녀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이혼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AI에게 두 사람의 궁합을 물어본 기가 막힌 내용을 발견했다.
'천생연분으로 일생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인연이다. 올해 말 와이프와 이혼하고 내년 말에는 결혼할 수 있으며, 아들도 낳는다. 다만 지금은 이목이 있으니 조신하게 행동하라.'
남편은 그 황당한 답변을 운명처럼 믿고 있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 한 달째 되던 날, 삼자대면이라도 할 생각으로 연락을 취하자 의외로 선선히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며 밤잠을 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남편에게 멕시코 여행을 추궁하자 혼자 다녀왔다는 뻔뻔한 변명이 돌아왔다. 더는 일말의 가치도 없었다. 이혼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못을 박았다.
이혼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 만난 날, 남편은 내가 한국에 간 사이 아파트에서 내 옷과 수집품들을 몰래 챙겨간 상태였다. 혹시 몰라 집안에 설치해 둔 카메라에는 *"당신 와이프 눈에 띄지 않는 물건만 담아요"*라며 내연녀와 다정하게 통화하는 남편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나보다 키가 작은 내연녀에게 내 옷이 맞을 리 만무한데, 내 흔적을 지우려 안달이 난 그들의 모습에 10년 넘는 세월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소송하겠다고 압박한 후에야 남편은 훔쳐 간 물건들을 돌려놓고 재산분할 난에 사인을 했다.
그러나 뉴욕 영사관에서의 이혼 절차는 행정적인 착오와 예약 문제로 계속해서 미뤄졌다. 지지부진한 절차 속에서 나는 여전히 소피를 찾아 헤맸다. 태풍 경보가 내린 새벽, 반소매 차림으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소피와 걷던 산책길을 빙빙 돌았다. 나를 찾다가 사고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좋은 주인을 만나 어디선가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력한 슬픔 속에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며 끝없이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뒤늦게 내연녀의 씀씀이가 헤프고 성격이 까칠하다며, 후회하는 얼굴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내 생일날 저녁을 먹자고 청해 나를 컨트롤하려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학벌과 집안을 속인 사기 결혼이었으니 절대 용서하지 말라던 언니의 말이 가슴에 박혔지만, 11년의 정이라는 것이 무서워 순간 연민이 일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부모님께 사죄한다면 다시 받아줄 생각으로, 작년에 예매해 둔 한국행 비행기표를 취소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만남을 이어오며 100일 파티를 열고 있었고, 내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통신사를 바꿔 위치 추적을 차단해 버렸다. 10월 21일, 마침내 그들의 행적 추적이 끊겼을 때, 나는 비로소 미련을 접고 남편의 한국행 티켓을 취소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내연녀의 남편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 통화를 했다. 어린 딸을 위해 이혼만은 막고 싶다며 울먹이던 내연녀 남편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들이 사는 주소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씁쓸한 연대감 속에서 주소를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마음이 아려왔다.
여전히 소피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NYC 동물 보호소 웹사이트에 신고를 해두고, 소피와 자주 앉던 공원 벤치에 앉아 기적을 바랄 뿐이다. 남편과의 지루한 싸움을 매듭짓고, 이제는 오직 사랑하는 소피하고만 평온하게 살고 싶다. 미련의 끈을 완전히 잘라낸 채, 나는 세 번째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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