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8, 2020

프랭크의 방탄조끼

                                                                                

비가 온종일 추적추적 내렸다. 브루클린 G 트레인 나소 애비뉴 입구에서 중늙은이가 우산도 쓰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로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를 찾는지 퇴근 시간 지하철 입구 안에서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 사람을 뚫어저라 쳐다봤다. 대머리 미간의 굵은 줄이 더욱더 패였다. 휘둥그레 뜬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작은 입은 화가 닫혀있다.

하이, 프랭크.” 

찰리가 인사했다. 프랭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빗물은 그의 이마를 타고 내려와 돋보기안경을 뿌옇게 만들고 안경알엔 빗방울이 매쳤다. 오래전 큰맘 먹고 입은 듯한 양복은 갈아입지도 세탁도 하지 않았는지 기름때로 번들거렸다. 왁스 칠한 듯한 낡은 재킷 위를 빗물은 감히 스며들지 못하 굴러떨어졌다프랭크는 작은 키에 가는 다리와는 대조적으로 상체는 방탄조끼를 입은  가슴이 부풀어져 있다누가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것을 훔쳐 가기라도 할까  불안한  그의 양팔은 가슴을 안고 있다 번도 벗지 않은 분신인 들러붙어 있는 검은 양복 안에 검은 조끼가 보였다. 조끼 꾀죄죄한 누런 와이셔츠 위에 자주색 바탕에 미색 다이아몬드 문양 넥타이를 그를 보며

"낡긴 해도 갖출 것은 갖췄군!"

 

찰리는 5년전 집을 장만하느라고 사채업자 프랭크에게 돈을 빌려 제 때에 다 갚았다. 요즈음 사정이 좋지 않아 프랭크에게 급전을 해달라고 했다. 


찰리가 프랭크와 만나는 장소는 1906년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구조인 그린포인트 세이빙 뱅크였다. 프랭크는 웅장한 건물 높은 천장 아래에서 가슴을 부풀리며 뱅크 주인이라도 되는  거들먹거렸다. 그는 양복 단추를 조심스럽게 풀고 귀중한 보물이라도 찾는 천천히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도 그의 양복만큼이나 낡았다. 모서리는 둥그러지고 종이 색은 누렇다. 수첩은 고무줄로 가로 세로로 꽁꽁 묶여있다. 조심스럽게 고무줄을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 대고 기록을 찾았다. 기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원상태로 고무줄을 가로세로 여러 감고 안주머니에 넣었다. 넣었나를 확인하느라 가슴을 두서너 두드렸다. 이번엔 조끼 주머니에 있는 수첩을 꺼냈다. 먼저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기록을 찾았는지 이름을 확인하고는 입이 약간 일그러지며 찰리와 눈을 마주쳤다. 그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차단하려고 코에다 손을 대고 기다리던 찰리는 그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지자 손을 떼고 미소로 응답했다.

 

, 5 동안 갚고 끝냈군. 좋아? 얼마가 필요해?” 

한마디에 찰리는 

이젠 됐구나!” 

한숨을 내쉬며 불안하고 복잡했던 마음은 마치 풍선을 타고 날아가듯 홀가분해졌다.

 

찰리는 6년전, 1986 1 어떻게 돈을 벌어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로컬 주간지 Greenpoint Gazette 뒤적였다. 판다고 나온 상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이 여자가 피곤한 앉아있다가 부스스한 얼굴을 쳐들었다

여기 신문에 판다고 나온 있을까요?”

공손히 물었다

함께 수는 없어요. 주소를 테니 한번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다시 와서 이야기하지요.”

라며 명함과 약도를 그려줬다.

 

붉은 벽돌 4 건물이다. 번째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 열렸다. 왼쪽 벽에 브라스 우편함들이 주르르 벽에 붙어있다. 우편함 밑에 쓰인 세입자 이름을 훑어봤다. 라스트 네임이 스키 끝나는 폴리시 이름들이다. 번째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입구 안을 살폈. 천정이 엄청 높다. ‘Not bad.’ 중얼거리며 찰리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했다.

 

부동산 사무실 방향으로 걸었다. ‘말도 .’ 하고는 돌아섰다. ‘아니야 될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를 서너

두드리면 열린다. 그러나 항상 열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두드려는 봐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며 앞에서 왔다 갔다 망설였다

까짓것! 데까지 가보자. 아니면 말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집은 마음에 들어요. 그러나 현재 돈이 없어요. 시간을 주면 마련할 있어요.” 

부동산 중개인은 피곤한 파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찰리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고 한참을 생각했다

좋아요. 집주인은 이미 죽었어요, 상속인들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6명의 상속인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동안 자금을 마련해요. 그리고 모자라는 자금은 우리와 오랫동안 일하는 동네 사채업자가 있으니 소개해 줄게요. 바인딩은 해야 해요.” 

얼마나?” 

“100불만 주면 건물을 홀드할게요.” 

찰리는 노름판에서 잃은 치고 100불을 주고 영수증을 받아들고 나왔다. 고된 삶을 질질 끌며 방황하던 찰리의 발걸음은 바인딩 갑자기 모터가 달린 바빠졌다.

 

그로부터 일 , 1987 1 17, 섞인 눈이 추적추적 내렸다. 찰리는 질척거리는 길을 시간에 맞추려고 천천히 걸었다. 변호사 사무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며 옷매무새를 만지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부동산 브로커와 얽히고설킨 셀러, 타이틀 컴퍼니, 변호사가 모였다. 프랭크는 셀러에게 체크를 줘야 즈음 점잖게 나타났다. 프랭크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홈레스에게서 나는 냄새가 바람과 함께 쓸려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는 점점 역해졌다. 변호사 사무실 사람들은 많은 사채업자와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다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창문이라도 열었으면 하고 고개를 돌렸다. 프런트데스크에 앉은 젊은 여자가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윙크했다.

 

당시 크레딧 없이 상업용 건물 은행 모개지를 얻으려면 13.5% 정도였다. 프랭크는 10% 받았다. 오히려 은행이자보다 좋았다

한번 돈을 빌려 갚으면 언제든지 집을 담보로 꿔 줘요." 

옆에 있던 부동산 브로커가 거들었다.

 

프랭크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극장에서 받는 일을 하며 모았다. 그리고 사채놀이를 시작했다. 적은 돈이 이자로 새끼를 큰돈으로 불어나고 건물을 모아 부를 일구었다. 돈맛은 돈을 불렀고 낡은 검은 양복 가슴은 방탄조끼를 입은 점점 부풀어졌다.

 

부의 축적이 그의 기쁨이자 살아가는 희망이었다. 톱니바퀴가 쉬지 않고 반복해 듯이 사채놀이는 그의 관성이 되어버렸다. 그의 오감은 오로지 뜨면 들어올 돈과 빌려줘야 돈놀이에만 솔깃했다. 그의 눈빛은 돌고 도는 세상에 있는 멍했다.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를 찾았고 그는 이자와 원금을 제때 갚을 사람들을 물색하는 사고와 행동에만 몰두했다. 프랭크 하면 , 이자 그리고 사채업자라는 이외는 그에 대한 다른 이미지는 찰리에게는 백지와 같다. 그나마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그를 보고 알았다. 그는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빚쟁이를 잡으려고 초췌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리며 그린포인트 사거리에서 방황했다.

 

그도 처음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부를 축적했으리라. 그리고 결혼하려고도 했단다. 그러나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잃을 것이 두려웠다. 결혼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안도하는 표정으로 

여자는 돈을 삼키는 기계야.” 

재산관리 잘하라는 슬쩍 찰리에게 내뱉곤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도 일가친척도 물론 없다. 쓰는 재미는 모르고 모으는 재미가 습관이 되어 사랑도 외로움도 슬픔도 없이 영원히 것처럼 멈추지 않는 모으는 기계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찰리가 빌린 돈을 갚는 체크를 보내도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6개월 그의 변호사로부터 프랭크 에스테이트라고 체크에 써서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가까이도 하지 않던 필라델피아에 사는 친척 여동생에게 상속됐단다. 만드는 톱니바퀴가 갑자기 멈추자 졸지에 친척 여동생은 상당한 재산을 껴안게 되었다. 버는 따로 계시고 쓰는 따로 있다더니!

 

모처럼 그는 양복을 입고 관에 누웠을 거다. 프랭크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수첩들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어찌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방탄조끼를 입지 않고 납작한 가슴으로 하늘나라로 있을까? 찰리는 프랭크가 너무 억울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바르도에서 자기에게 빌린 돈을 갚고 있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을 없었다.

 

찰리는 그린포인트 애브뉴 사거리에서 낡은 검은 정장을 입은 프랭크와 비슷한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장면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변호사에게 속아 프랭크 에스테이트로 보내고 있는 체크가 정말로 프랭크에게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닐까? 걱정하며 그의 죽음을 눈으로 확신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깜짝깜짝 놀래기를 년의 세월이 흐른 Satisfaction of Mortgage 손에 쥐고서야 그의 죽음을 인정했다.

 

찰리는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곤한다.

핼로, 프랭크치솟는 집세를 내지 못해 맨해튼을 떠나 윌리엄스버그 다리를 건너  많고 많은 장소 중에 브루클린 그린포인트를 선택한 무일푼인 내가 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빚쟁이를 찾는 너를 보고 미친놈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복판에 있어? 꼴에 낡은 정장 양복 식이나 빼입고라며 스쳐 지나쳤을텐. 나는 살려고 문을 두드렸고 너 프랭크는 나에게 문을 열어줬다. 프랭크 네가 그린포인트에 살지 않았다면,  모아 사채업을 하지 않았다면,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며 주지 않았다면, 나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방황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너 갔지만, 너와의 만남이 나 삶을 뿌리 내리게 해줬프랭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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