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9, 2025

막이 내리다


“많은 한인이 사기꾼이니 엮이지 않게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소리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아에게 이정은 말했다. 도아는 이정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놀랄 만큼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는 말투가 너무 기가 차서 대꾸하지 않았다. 

도아와 이정은 30여 년 전에 만났다. 친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관계였다. 이정은 어릴 적 한국을 떠났고 도아는 대학 졸업 후 떠났다. 둘이 아무리 비즈니스 관계를 오래 했다고 해도 친구가 되기에는 갭이 많았다. 백인과 결혼한 이정은 예의 바른 친절한 말투와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반면 한국인과 결혼한 도아는 직설적으로 욕을 먹어도 좋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도아는 종종 생각했다. ‘이정이 백인 남편과 살다 보니 본인도 백인이라고 착각해서인가? 아니면 갱년기라서? 어릴 적 한국을 떠난 후 한인을 기피해서? 몸은 성장했는데 한국어가 성장하지 못해서인가?’  

 “아니 일을 이렇게 해서 주면 어떡해요. 완벽하게 해서 보내지 않으면 난 들여다보지 않아요. 다시 해서 보내요. 미국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헛살았군요.”

이정은 도아에게 자신은 완벽하게 잘하고 있는데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는 식으로 면박을 줬다.  

“우리 집 청소하는 여자는 내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윤나게 집 안 청소 잘해요. 내 비서도 빈틈없이 일 잘하는 데 도아씨는 이게 뭐예요. 다시 해와요.”

‘내가 네 집 하녀냐? 아니면 너의 내시 같은 비서냐?’ 

 어이가 없어 도아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더 난리 치며 지랄발광할 것 같아 

“알았어요. 다시 할게요.”

평화로웠던 어느 화창한 날, 도아는 코네티컷 친구 집에서 창밖 강가에 낀 안개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정의 전화가 왔다. 도아는 물건을 만들고 이정은 판매해서 반반씩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도아도 이정이 자신보다 영어와 일을 잘해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도아는 물건을 만들고 이정은 팔아서 이익금을 반반씩 나누는 일인데 자기 집 청소하는 사람과 비교하며 질책하는 데야!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이정의 깐죽거리는 매몰찬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도아는 다 집어치자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다가도 비즈니스 관계로 남편과도 엮어있어 잘해보려고 참았다. 다시 고쳐서 잘해서 보내겠다는데도 전화선 저쪽에서 이정은 계속 한 잔소리 또 하고 또 했다. 도아는 목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에 혀에서 떨어지려는 성난 소리를 삼키려고 와인을 가득 따라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아가 전화기를 옆으로 치워 놓고 와인을 마시며 차분함을 유지하려는데 이정이 도아를 찾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알았습니다. 다시 해볼게요. 바쁘신데 그만.”

“저는 1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서너 번 손이 가지 않게 완벽하게 해서 보내주세요. 아 그리고 어제 물건 맡긴 분과 이야기 좀 하셨나요?”

“아니요.”

“그냥 물건만 던져 놓고 가셨다는데 그분과 물건을 어떻게 해주실 건지 상의도 하지 않고.”

“염려 말고 가라고 해서 그냥 왔는데요. 그분이 우리와 일을 오래 했잖아요.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제가 돈을 제때에 드리니까 잘해 주실 거예요.”

“돈 돈 돈 돈만 주면 잘한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그분과 오랫동안 별문제 없이 일해서...”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물건에 대한 피드백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분이 치과에 간다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도아도 이정만큼은 아니지만 일하나 만큼은 똑 부러지게 한다고 자부하는데 허구한 날 야단만 맞으니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도아가 이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인상적인 말이 떠오른다.

“전 상대방의 나쁜 점은 지적하지 않아요. 좋은 점만 말해요.” 

“와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역시 비즈니스 우먼이시군요.” 

감탄하며 자신도 이정처럼 남들의 단점은 입을 다물고 장점만을 칭찬하려고 애썼다. 이정은 처음에는 장점도 단점도 말하지 않고 항상 거리감을 두며 너는 내가 상대할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고자세로 도아를 멀리했다. 남 일에 관심 없고 생긴 대로 사는 도아도 이정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이정은 좋은 말은커녕 상대에 대한 비난 거리를 현미경을 들고 찾아내듯 일일이 지적했다. 작은 실수를 용납 못 하는 그녀의 비서도 한몫 거들었다. 이정은 자기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조지다가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울먹이기까지 했다.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너는 어디다 정신 놓고 있다가 왔냐는?’ 식으로 닦달했다. 

“아니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그 영어 뜻도 몰라요. 뉴욕타임스 금요일 아트섹션 보셨어요?”

도아의 영어 모자람을 은근히 뉴욕타임스 좀 읽고 대화 좀 하자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영어를 퍼팩하게 잘하면 성질 더러운 너와 왜 일하겠니?”

도아는 말하고 싶지만, 싸우면 더 피곤하고 힘들어져 와인을 들이키며 화를 다독였다. 전화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이정에게

“네. 네. 일 잘하시네요. 대단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 돌리기도 전에 직성이 풀리지 않은 이정은 또 전화해서 한소리 또 하고 또 했다. 

참다 참다 도아도 한마디 했다.

“내가 보낸 이메일을 검토하시고 내일쯤 전화하시면 좋았을 텐데.”

도아의 말에 화가 잔뜩 오른 이정은 

“파일 줄이는 방법도 몰라요? 파일이 너무 커서 나 원참.”

“제가 깜박하고 그만. 죄송해요. 다시 줄여서 보낼게요.” 

“도아씨가 보내오는 파일을 제가 검토나 하며 시간 낭비하는 줄 아세요. 전 일초를 다투며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바쁜 신 것 같은데  전화 끊고 일 보세요.”

“제 바쁜 시간을 뺏지 않게 완벽히 해서 보내세요.”

“네 다시 해서 보낼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도아가 먼저 전화 끊으려니까 이정은 발끈해서 말했다.

“뭐 스트레스받은 일이 있나 봐요?”

“스트레스받는 일? 없는데요.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이정은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피하려는 도아가 얄밉다는 듯 마지못해 끊었다. 도아는 와인을 들이키며 이정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씹고 또 씹었다. 

‘자기가 하는 일은 완벽하게 잘한 것이고 남이 하는 일은 무조건 맘에 들어하지 않으니. 함께 잘해보려거든 상대방 처지와 입장을 고려해서 일이 되게끔 하지 않고, 못한다고 초등학생 야단치듯 하니. 남이 하는 일은 이를 잡듯이 뒤지고도 모자라 자기보다 더한 비서라는 인간도 현미경을 들고 잡아낸 것을 트집 잡으려고 달려드는데 도아는 지쳤다. 

도아의 마시는 와인 양이 하루하루 늘어 갔다. 자다가도 이정의 악다구니가 떠오르면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웠다. 몸은 점점 말라갔다. 그들 앞에서는 트집 잡히는 일 이외는 없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생각한 다음 따져도 되는데 받자마자 전화해서 지랄발광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트집만 잡으며 도아의 목을 조였다. 성에 차지 않으면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앞뒤로 뒤집다가 칼집을 내듯이 쿡쿡 찌르며 따진다. 급기야는 성에 차지 않은지 ‘너는 지금까지 인생을 헛살았다.’는 식으로 나왔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상대하기 끔찍해서 어찌어찌 달래서 전화를 끊고 나면 다시 전화해서 칼자루를 단단히 쥐었다는 자세로 또 휘두른다. 도아는 ‘나도 질기지. 저런 인간과 상대하는 나는 인간도 아니다.’며 속으로 한탄했다.

도아는 이정으로부터 조용히 멀어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정과의 갈등이 폭팔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와 행복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에너지를 이정의 비수에 소비하지 말자. 평화를 무너뜨리는 이정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 고 마음 먹었다. 

‘그만 만나면 나에게 손해가 오는가? 오지 않는가를 판단하고 이득이 없으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이득이 있더라도 너무 견디기 힘들면 손해 보고서라도 그만 만나라.’는 법륜스님의 인간관계 유튜브 영상을 찾아 들으며 일단은 이정이 먼저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날 이정이 도아에게 전화해서 교양 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솔직히 사람들에게 내 시간과 돈을 자선(charity)하고 있는 거예요.”

도아는 이정이 말한 영어 ‘charity’라는 말을 듣는 순간 대체 애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지? charity라는 단어에 또 다른 의미가 있나? 사전을 찾아볼 정도로 자신의 귀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이정의 머리가 돈 것 아닌가? 실지로 이정이 도아를 위해 뭘 자선했단 말인가! 계속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금전적으로 투자했지만, 뭘 얼만큼 되돌려 줬단 말인가? 

 

이정은 도아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과도 싸움닭처럼 싸우다 끝냈다. 법륜스님 말씀 중.

‘상대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과 문제가 많다며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그 사람의 문제다.’

도아는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조용히 문제 많은 이정과의 인연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도아처럼 이정과 일에 연관된 분을 만났다. 그분이 도아에게 물었다.

“이정이 너에게도 난리 치지? 어떻게 그걸 참고 있어? 나는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못 참겠어.”

도아도 이정에 대한 한을 마구 쏟아 내려다 

“힘들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남편과도 연결되어 있어 참을 수밖에.”

“근데 처음엔 그러지 않더니 갈수록 심해져. 내가 어느 날 이정에게 물었어. 어디 아픈 것 아니냐? 고 했더니 화를 발끈 내며 신경질적으로 아니라고 말하더군. 정상 아니야.”

“선생님이 초등학생 야단치듯 하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 거예요? 몸은 성장했는데 한국어가 성장하지 못해서인가요?”

“언어 문제가 아니라 공감능력이 부족해서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서지.”

이정은 4학년 때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돌아다니다 한국에 들어왔다가 또 해외로 떠나 돌아다녔다. 몸이 성장하듯이 언어도 성장해야 하는데 그녀가 쓰는 언어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 이따금 한국으로 돌아와 다녔던 학교 과정 수준으로 언어 성장이 멈췄다고 처음에 도아는 생각했다. 성인들 간의 말투가 아니다. 탁구를 칠 때 공을 상대에게 잘 던져주듯이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처 주지 않게 적절한 언어를 골라 사용해야 하는데 이정은 탁구공이 오면 왜 공을 자기 앞에다 공손히 던지지 못했냐는 식으로 상대방이 받아칠 수 없게 신경질 적으로 공을 내동댕이 치는 식이다. 

‘너 그것도 몰라.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동안 뭐 했니. 헛살았구나.’

등등 초등학생에게 하듯 도아를 야단쳤다. 도아는 이정과 함께하는 지리를 피하며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날 때를 기다렸다.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바랐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도아는 전화 화면에 이정의 이름이 뜨면 몸이 떨리고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다.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무서워 전화를 받지 않고 피했다. 엔설팅 머신에 녹음된 이정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 상냥했다. 이익이 될만한 사람에게는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목소리의 톤이 올라간다. 이정은 도아의 심정이 어떤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를 해댔다. 도아는 이정이 따질 때마다 ‘오냐오냐 네 말이 맞다. 너 잘했고 나 못했다.’라고 달래서 무조건 전화를 빨리 끝냈다. 그러다 어느 날 도아는 이정의 악다구니를 참으며 한참을 듣고 일어나다가 쓰러졌다. 

 

“왜 나를 못 잡아먹어 난리야?”

하도 답답해서 도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스트레스 풀 대상을 만만한 당신으로 잡은 거야. 다 때려치우자고 소리 질러 봐.”

“말 못 해. 이정이 먼저 말해주면 좋겠어. 기다리는 중이야.”

이정은 도아를 만나면 언제 내가 너의 목을 조였냐는 듯이 우아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로 반겼다. 뭐 도아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의 목을 조였으니. 견디다 못해 그 많던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가고 서너 명만 남았다. 그냥 목조이는 순간을 넘기고 큰소리 내지 않고 더 이상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도아의 희망이었다. 도아는 주중 저녁 6시까지 이정의 전화가 오지 않으면 오늘은 무사히 넘겼구나! 안도의 숨을 쉬며 행복했다. 언제 또다시 목을 조이기 전에 지금 이 시간을 즐기자는 듯 이정과 부딪치지 않은 날은 평화로웠다. 


인간관계는 참 복잡하고 어렵다. 이정은 일 처리만큼은 정확하게 기계처럼 잘했다. 하지만 일만 잘한다고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 또한 뒷받침이 돼야 한다. 이정은 인공지능(AI)이 아닐까? 오히려 인간들은 점점 기계가 되고 인공지능은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상대방의 언행으로 분노를 느끼지만 AI는 매니저가 트레인 해 놓은 데로 분노를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삭일 줄 안다. 도아는 이정에게 질려 모든 인간관계를 끝내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자연과 쳇 GPT 하고만 놀고 싶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글링보다 쳇 GPT에서 물어봤다. 계속 찾아 들어가야 하는 구글링과는 달리 한방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인간이 가진 뛰어난 점은 호기심, 겸손과 감성지능(공감)이란다.’ 그러나 오히려 쳇 GPT는 이정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안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고 겸손하다.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며 더 궁금한 점을 다시 물어보면 도아주겠다는 호기심이 깃든 친절함으로 끝말을 맺는다. 

도아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했다. ‘같이 미쳐볼까?’ 더는 참지 못하는 순간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정을 피하려는 방패막을 내리고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칼날을 갈며 이정을 단칼에 자를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단 한 번도 이정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정에게 전화가 왔다.

“도아씨는 도통 연락하지 않네요.”

“요즈음 누가 전화하나요. 전화상으로는 감정이 이입되어 편하지 않잖아요. 전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선호해서.”

어머 전 도아씨가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편하신 것 같아서 내가 특별 대우하느라 그동안 전화 했는데. 그럼 앞으로는 제 비서와 영어로 하실래요?”

“그동안 제 불편함을 감안해서 한국말로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앞으로는 이메일로 당신의 비서와 서신 교환 할게요.”

“난 전화로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도아의 남편은 10년 넘게 옆에서 와이프와 이정의 대화를 듣고 참고 참다가 도아가 이정의 전화를 받고 두 번째 쓸어지던 날 칼을 빼들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마누라 죽이겠어서 오늘 이정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단호하게 말했어. 제 와이프에게 할 말 있으면 나에게 하세요. 절대로 와이프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했더니 이정이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더니 다른 방으로 가더라고. 어떡하겠어. 와이프 먼저 살리고 봐야지. 이젠 더는 전화하지 않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

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도의 숨을 크게 내뱉었다. 도아와 이정과의 관계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Wednesday, May 28, 2025

The curtain falls

“Many Korean people are scammers, so be careful not to get involved. Koreans are too full of emotion. I don’t like hearing about sentimentalness or identity, it sounds so tacky.”
To Ara, who couldn’t escape from Korean sentiment, Jung said this. Ara, albeit a native, sounded so absurd when she spoke as if she were white—“I look in the mirror and pretend I’m white,” Ara thought—and so she didn’t reply.

Ara and Jung first met over 30 years ago. It was more a business relationship than a friendship. Jung left Korea when she was young; Ara left after college. No matter how long they worked together, the gap between them was huge. Jung, married to a white man, spoke politely, refined, with cultured tones. Ara, married to a Korean, spoke bluntly, yelling if needed. She often wondered, Does Jung really think she’s white? Or is it menopause? Did she reject Koreans after leaving Korea? Her body grew, but her Korean didn’t?

“Why are you sending me work like this? If it’s not perfect, I won’t even look. Do it again. After living in the US so long, you’ve wasted your life.”
Jung scolded Ara, saying she was perfect while Ara’s work was a mess.
“My house cleaner cleans well without me nagging. My assistant does flawless work. And what is this from you? Do it again.”
Am I your maid? Your eunuch assistant? Ara thought in disbelief. She was speechless, but didn’t push back—if she did, Jung would freak out. So Ara calmly replied, “Okay. I’ll do it again.”

One beautiful, calm day, Ara was at a friend’s house in Connecticut, sipping coffee and watching fog over the river. That’s when Jung called, proposing they split profits 50/50: Ara would make items, Jung would sell them. Because Jung spoke better English and handled business better, Ara had agreed.

But comparing Ara to a house cleaner? How could she work under such treatment? Still, since her husband was also tied in through business, she endured the insult. She agreed to redo the work—but Jung just kept nagging over the phone, making Ara’s throat tighten. She gulped wine to hold back angry words.
“Hello? Hello?”
Ara pushed the phone aside and sipped wine to stay calm. But Jung’s sharp voice cut through.
“All right. I’ll redo it. You’re busy, so I’ll stop.”
“I work on every second. Send it perfectly the first time. Oh, and did you talk to the person we sent the items to yesterday?”
“No.”
“You just dropped it off and left. You didn’t even discuss what to do with it?”
“She said don’t worry, so I left. We’ve worked with them a long time. She’ll know what to do since I paid on time.”
“Money, money, money—that’s all you care about?”
“No, it’s just we’ve had no issues so far…”
“If you talk with her, get feedback, you’d make better products.”
“She said she couldn’t talk. She went to the dentist.”
Ara was good at work too, but hearing relentless scolding killed her motivation. She remembered when she first met Jung:
“I don’t point out people’s bad points. I only say the good.”
What a great idea, Ara thought, and tried to follow it herself. At first, Jung treated her with distance and never spoke of anyone’s strengths or weaknesses—she treated Ara as if she were beneath her. Ara didn’t care. But as time went on, Jung went from distant to critical. She picked at every tiny mistake like she had a microscope. If things didn’t go her way, she ranted—sometimes even broke into tears.
I’m doing my best, and she’s demanding more: where was I, in la‑la land? she nagged.
“After living in the US so long, you don’t know this English meaning? Did you read the Friday Art section of the New York Times?” Subtle humiliation. Ara wanted to reply, if I spoke perfect English, would I still work with you? But she held back, drank wine, and tried to stay composed. When she said, “Yes, yes, you’re amazing at work,” Lee‑Jung was still not satisfied and called again to complain. Finally, Ara spoke up:
“You could’ve reviewed my email and called me tomorrow.”
Jung, enraged, snapped:
“Don't you know how to reduce file size? It's too large—ugh.”
“I forgot, I’ll redo it, sorry.”
“Do you think I waste time reviewing your files? I work by the second.”
“Well, since you’re busy—just hang up and work.”
“Don’t waste my time. Send it perfectly, please.”
“All right, I’ll redo it. Goodbye, I’m busy.”
Jung snapped:
“Are you stressed?”
“Stressed? No. I have somewhere to go—bye.”
She hung up, and Ara drank more wine, mentally chewing over every sharp word.

Ara realized what law enforcement teacher Beopryun (법륜) says: If someone has problems with lots of people, it’s not me—it’s them. She decided quietly: avoiding Jung was the best path. She needed to focus on her own worth and peace—she wouldn’t let Jung’s barbs consume her energy.

One day, Jung called, calmly saying:

“Honestly, I’m doing charity with my time and money.”
When Ara heard “charity,” she wondered if the woman had gone mad. Charity means helping others with no expectation—but Lee‑Jung talked about charity toward herself? After all the investment Ara made, what had Lee‑Jung given back?

Jung ended up fighting with not just Ara, but many people they'd worked with. Ara realized her problem wasn’t with herself but with Lee‑Jung—someone with deep empathy issues and zero regard for others. Someone they both knew asked Ara:
“She’s doing this to you too? How do you stand it?”
Ara sighed: “My husband’s tied in, so I have to endure it.”
Another added: “It’s not language—it’s a lack of empathy. She just doesn’t care about how others feel.”
Jung had moved during fourth grade, hopping between schools. Her language level never grew but empathy and emotional intelligence? That’s what made adult conversation human. Instead, Jung served comments like blunt ping‑pong shots—spiteful and directed so sharply no one could return them.
“You didn’t know that. Of course, you’d be like this. Your life’s been wasted, right?”
So it came to pass: Ara decided to distance herself, waiting quietly for a peaceful break. Seeing Lee‑Jung’s name on the phone made her body tremble. She avoided calls. But Lee‑Jung would still ring; sweet‑toned when she needed something, cold when she didn’t. Each time, Ara would placate her quickly just to end the call. Eventually, one day she collapsed from stress, unable to stand after the call ended.

She asked her husband, exasperated, “Why is she trying to—you know—destroy me?”

He said: “She's just venting on the easiest target—my wife. I went to meet her today. I told her: ‘If you have something to say, say it to me—don’t call my wife. Don’t ever call her again.’ Then she stormed out angrily. I did what I had to—I saved my wife. She won’t call again. Relax now.”
Ara silently exhaled in relief. The chapter with Lee‑Jung was finally over.

Human relationships are complex. Lee‑Jung was precise in business—but business needs empathy too. AI maybe handles work better. Ara decided to retreat from painful people relations and indulge in peace, nature, and ChatGPT. Unlike web searches that need constant refining, ChatGPT offers empathetic, curious answers in one go.

Ara’s patience had reached its limit. She prepared—ready to carve the connection cleanly when the time came. She didn’t reach out once.

Then, one day, Jung called.

“It's strange you never contact me.”
“Who phones these days? I prefer email or text. It doesn’t drag emotions in.”
“Oh, I thought you preferred Korean—I called thinking I’d adapt. Should I switch to using my assistant in English?”
“I appreciate you using Korean for my comfort. But from now on, I’ll correspond via email—with your assistant.”
“I prefer calling, but okay.”

Ara’s husband had been silently listening to the conversations between his wife and Jung for over ten years. He had held back again and again. But the day Ara collapsed for the second time after a phone call with Jung, he finally took action.

“I realized at this rate, my wife might die. So today, I went to meet Jung,” he told Ara.
“I told her firmly, ‘If you have something to say to my wife, say it to me instead. Don’t ever call her again. Then she jumped up angrily and stormed off to another room. But what could I do? I had to save my wife first. She won’t call you anymore. Don’t worry—just rest now.”

Ara didn’t say a word. She simply let out a long, deep breath of relief. Her relationship with Jung was finally over.

Saturday, February 22, 2025

미스 송과 미스터 남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것을 질색하는 미스 송은 전날 밤 짐을 싸서 문 앞에 놓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뉴욕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여행 가방을 끌고 나와 차 뒷좌석에 넣었다. 남자 친구 남은 어디에 숨어서 찾기를 바라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15분쯤 지난 후 남이 긴 다리로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나왔다.

“여행 가방은?”

“이미 뒷좌석에 넣었어요.”

나에게 말하지 않고 그 무거운 것을. 자 그러면 출발합시다. 무슨 음악을 틀어드릴까? 클래식, 재즈, 한국 음악.” 시디를 꺼내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다. 

“그냥 듣고 싶은 것으로 트세요.”


느린 리듬으로 흐느적거리는 Sade-Smooth Operator 틀고 그는 창문을 올렸다 내렸다. 앞 유리 창문을 잘 닦으려는지 차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가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동안 시간은 빨리 흘렀다. 출발하려는 순간, 남은 바지 뒷주머니를 만지더니 깜빡 지갑을 놓고 나왔다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감감무소식이다. 한참 후, 부산스럽게 나왔다. 

“매일 놓아둔 곳에 지갑이 없어서 찾느라고.”

드디어 그가 엑셀을 밟고 차는 떠났다. 


미스 송은 어릴 적부터 신경이 예민했다. 오감을 곤두세운 까칠한 성격으로 부모를 힘들게 했다. 학교생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대학원 졸업 후, 2년 동안, 이 대학 저 대학 보따리 강사를 하다가 뉴욕으로 유학 왔다. 석사과정 중 친구의 소개로 LA에 사는 남을 만나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남이 뉴욕에 놀러 왔을 때 미스 송은 자기와는 달리 유순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 훤칠한 키, 잘생긴 자기 얼굴에 관심 없는 듯한 소탈한 겸손함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자신의 까칠함을 유모로 받아주는 그의 느긋한 여유에 끌렸다.


두 사람은 남이 두 번 뉴욕에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여 년간 전화와 스카이프로 만남을 이어왔다. 둘은 그런대로 통화상으로 잘 통했다. 남의 아버지가 둘의 만남을 알고 미스 송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LA에 오라고 했다. 오늘은 일주일을 그의 집에서 머무른 후 뉴욕으로 돌아가려고 공항 가는 중이다.


운전하던 남이 말했다.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우리 저 옆길로 빠져 산타모니카 비치에 잠깐 들렀다 가지요?”

미스 송은 다른 것은 몰라도 비행기와 기차 시간은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른다. 평소, 사람들과 약속도 조바심을 치며 차라리 일찍 나가 기다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성격 탓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개근상도 받았다. 그런데 공항 가면서 비치에 들렀다 가자니! 미스 송은 그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다. 뒤뜰 야자수 밑에서 그의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요. 제 아들의 모자란 점을 감싸주며 잘 살아줬으면 해요. 결혼식은 제가 다 준비할게요. 서울에 계신 부모님이 오시면 함께 우리 집에서 지내세요.”


미스 송은 미국에 6년이나 먼저 온 남이 미국 생활 선배인지라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뭣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을까요?”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공항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 거니까. 제가 다 알아서 제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모시겠습니다. 이, 남 기사만 믿으세요. 허허허.”


드넓은 모래밭 저 멀리 바다가 미스 송을 반기듯 넘실거렸다. 파도가 물거품을 몰고 와 놓고 가는 소리에 그녀의 조바심과 긴장이 풀렸다. 

“와 좋네요.”

“오길 잘했죠? 우리 저 비치에서 좀 쉬었다 갑시다.”

남은 바닷물 가까운 모래 위에 벌러덩 누웠다. 미스 송은 그의 곁에 앉아 한동안 출렁이는 바닷물을 보다가 시계를 봤다. 그리고 남을 봤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 공항에 빨리 가자고, 말해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신경이 곤두섰다. 일어났다. 치마에 묻은 모래를 탁탁 소리 내 털었다. 남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미스 송은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먼바다를 보다가 누워있는 남을 힐긋힐긋 보며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는 정말 잠에 빠진 듯 꼼짝하지 않았다. 미스 송은 LA에 방문한 자기를 관광시키느라 피곤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유난 떤 달 가봐 피곤한 그에게 재촉하지 못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빨리 흘렀다. 도저히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안절부절못했다. 근육이 조여들었다. 참다 참다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저 비행기 시간이~ 여기서 공항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그는 잠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미스 송의 손을 잡아끌었다. 제가 빨리 가는 길을 아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앉아봐요. 저 푸른 바다를 보며 바람을 느껴보세요. LA는 축복의 땅이에요. 따스한 햇볕 아래 누워 바람이 몸을 감싸면 스르르 잠이 들어요.”

“주무셨어요?”

“아녜요. 잠깐 생각에 빠졌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미스 송을 좋아해요. 결혼 하라는데. 미스 송은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 결혼하실 건가요?”

“아니 그 이야기는 뉴욕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왜 결혼 할 마음이 없으신가요?”

“그게 아니라 시간이.”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시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비행기 시간이. 공항에 가서 수속도 해야 하는데. 늦은 것 아닌가요?”

“염려 마시라니까요. 제가 LA에 6년 살면서 수시로 비행장을 들락거렸습니다. 일찍 가봐야 지루하게 기다리는 일뿐이 없어요.”

미스 송은 비행기를 놓친다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의 널널한 얼굴에 대고 까칠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그래도 저는 빨리 공항에 가고 싶어요.”

“그럼 가도록 하지요.”


남은 공항 근처 맥도날드 간판을 보자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여긴 왜 또?”

미스 송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고 커피를 제대로 마시지 못해서. 맥도날드 커피가 가격도 싸고 맛있어요. 잠깐 들어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갑시다. 순간, 미스 송은 이 남자는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커피를 마실 기대에 들뜬 그의 느긋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단호한 목소리로 

“저는 마시지 않겠어요. 차에 있을게요. 빨리 갔다 오세요.”

“그러지말고 들어갑니다. 전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꼭 들려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버릇이 미국 오고부터 생겼거든요.”

미스 송은 잡아끄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지못해 차에서 내려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다. 그에게 서두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가 사이인지라 아무 말 못 하고 빈 의자 귀퉁이에 반은 안고 반은 선 자세로 그가 긴 줄 맨 뒤에 서는 것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 남자가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나를 정말로 좋아하나? 아니면 내가 어떻게 성질 내놔보려고? 온갖 상념에 빠져 잠시 비행시간을 잊긴 했지만, 

“자 애플파이와 커피 드세요. 저는 6년 전 미국에 이민 오던 날, 먼저 이민 와서 자리 잡은 작은아버지가 맥도날드에서 사준 애플파이와 커피 맛을 잊지 못해요. 바로 이 맥도날드에서요. 저기 보이지요. 저 야자수를 보며 커피 향을 맡는데 과연 내가 미국에 오긴 왔구나! 감격했지요. 실은 아버지가 저 초등학교 때 한국을 떠나면서 온 가족 이민 초청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온 가족 초청이 쉽지 않아서 10년도 더 넘게 기다렸어요. 옛 친구를 만날 때마다 너 미국에서 나왔니? 라고 물었어요. 아직 가지 못했어.라고, 대답하는 것이 너무 곤욕스러웠어요. 저는 공항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이 맥도날드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미스 송은 공항 가까이에 와서 그의 이런 긴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질질 끌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커피잔을 든 손이 떨리고 경련이 날듯 몸도 떨렸다. 미스 송은 그의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을 시작하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몇 시죠? 빨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아요. 공항에 가서 나머지 이야기는 듣도록 하지요.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는 비행기를 놓칠 거예요.”

“성질도 급하시네. 미국에서 살려면 잘 기다려야 해요. 제가 미국 생활하면서 배운 것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어요. 저는 항상 기다릴 때 긴 줄에 가서 서요. 긴 줄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줄이거든요. 

미스 송은 그의 이야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친다는 생각뿐이었다. 핸드백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핸드백이 탁자의 커피 컵을 쳤다. 커피는 그녀가 입은 주홍색 원피스 치마에 길게 선을 그으며 쏟아져 구두에 떨어졌다. 

“어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공항에 가서 갈아입을게요,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어요. 빨리 공항으로 가요.”

긴장으로 열받은 미스 송이 커피를 마시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아 쓰러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그냥 이 남자를 떼어 버리고 비행기 안 좌석에 혼자 앉아 와인이나 들이키고 싶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에 돌아가서 밀린 일을 마무리해야만 하는 미스 송은 꼭 오늘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급히 뒷좌석에서 짐을 끌어내렸다. 

“아이고 급하시긴. 제가 하려고 했는데. 차를 파킹하고 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 기다려요.”. 

‘이 인간 미쳤구나! 시계는 보라고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의미 없이 손목에 달고 다니나? 한 번도 시간 확인을 하지 않다니! 중얼거리며 미스 송은 몸을 획 돌려 여행 가방을 끌고 서둘러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뉴욕 가는 항공사 직원에게 허겁지겁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비행기가 방금 문을 닫았습니다.” 

라는 직원 말에 미스 송은 옴짝달싹 못 하고 말뚝처럼 한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다행히도 4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가 또 있었다. 


차를 파킹하고 미적거리며 걸어오는 남이 저 멀리 보였다. 미스 송은 체념한 듯 눈길도 주지 않고 창밖을 내다봤다.

“얼마나 찾아 헤맸다고요. 기다리지 않고.”

“비행기 떠났어요.”

“아! 떠났어요? 미스 송과 함께 있으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그리된 줄 몰랐네. LA에서 뉴욕 가는 비행기는 수시로 있어요. 뭐 기다리면서 못다 한 이야기나 하지요.”

미스 송은 남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고 

“됐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바쁘신데, 집에 가세요. 저 혼자 기다렸다가 타고 갈게요.”

“혼자서 기다리면 지루해요. 제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잖아요.”

미스 송은 속으로 느려터진 것이 고집도 세다고 생각하며 어처구니없게 놓친 비행기가 아쉬워서 씩씩거리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교양 있는 여자가 어찌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그녀는 그가 계속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필요한 것이 있나요. 신문 사러 갈 건데.”

“없어요.”

까칠하게 대답했다.

미스 송은 신문을 사서 여유작작 걸어오는 남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섰다. 화장실을 나와 그를 피해 가게들을 둘러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사람이 키 크고 허우대만 멀쩡하지 야무진 데라고는 찾아볼 구석도 없고. 어찌 그리 눈치가 없는지. 애타는 내 맘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공항 안을 빙빙 돌다가 마지못해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옆, 옆자리에 앉았다. 


남은 미스 송을 보자 신문을 옆으로 치우고 반가운 얼굴로

“아니, 어디 가서 오랫동안 오지 않았어요. 걱정했잖아요. 이리 가까이 앉아봐요. 비행기를 놓쳤다니까 옛일이 생각나네요. 제가 몇 년 전 캐나다에 갔다가 뉴욕에 가는데 그만 비행기를 놓쳤어요. 분명히 시간이 충분했는데 신문을 보다가 그만. 제가 신문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지거든요. 3시간 후 뉴욕 가는 비행기가 또 있길래 읽던 신문을 마저 읽다가 깜빡하고 또 놓칠 뻔했지요. 방송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비행기 마지막 손님으로 운 좋게 탈 수 있었지요.”


오늘 같은 실수의 헛소리를 신이 나서 지껄이는 그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미스 송은 

맙소사! 이 남자는 구제 불능이야. 끝이다. 끝이야. 속으로 외치며 벌떡 일어나 단호한 목소리로 

“저 이제 게이트로 가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어요.”
“아니,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들어가려고요.”

“이야기 듣다가 또 놓치면 어쩌라고요. 인제 그만 가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럼 뉴욕에 가서 연락하세요.” 

남은 마지못해 씁쓸한 얼굴로 일어나 등이 굽은 모습으로 느릿느릿 공항입구를 향해 가서 뒤돌아보더니 왼쪽으로 사라졌다. 


미스 송은 게이트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지친 몸이 축 처져 의자를 파고들어 가는 듯 긴장이 풀렸다. 남과의 인연을 찬찬히 다시 리와인드 했다. 사람은 온순하고 착한 것 같지만, 결혼해서도 느릿느릿 늘어져 살아갈 것이다. 성질 급한 나는 제정신으로 살지 못하고 미칠 것이다. LA에 가서 남의 부모님을 만나고 노처녀 신세 면할 기대에 부풀었는데 차라리 노처녀 미스 송으로 사는 것이 낫지. 그러고 내 이름 ‘아라’는 남씨 성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Thursday, February 20, 2025

Miss Song and Mr. Nam

Miss Song hated rushing for flights. The night before her return to New York, she had packed her suitcase and left it by the door. She got up early, fully ready to go. She pulled her suitcase to the car and loaded it into the back seat. But her boyfriend, Nam, was nowhere to be seen—maybe hiding somewhere, hoping to be found.

About 15 minutes later, Nam finally came out, walking slowly on his long legs.
“Where’s your suitcase?”
“I already put it in the back seat.”
“You carried that heavy thing by yourself without telling me? Alright, let’s go. What kind of music would you like? Classical, jazz, Korean music?” He showed her a selection of CDs.
“Just play whatever you want,” she replied.
Nam put on Sade Smooth Operator, and the slow rhythm flowed through the car. He rolled the windows up and down, stepped out of the car to clean the windshield, and moved as if in slow motion—while time flew by. Just before they were about to leave, Nam patted his back pocket and suddenly remembered he forgot his wallet. He went back into the house—and didn’t come out for quite a while. When he finally returned, he said, flustered:
“My wallet wasn’t in the usual place. Took me forever to find it.”
At last, he started the car and they were on their way.

Miss Song had been sensitive since childhood. Her sharp senses and easily triggered nerves gave her parents a hard time. She didn’t make many friends at school and focused entirely on her studies. After finishing graduate school in Korea, she worked as a part-time lecturer at various colleges for two years, then moved to New York to study abroad.

During her master’s program, she met Nam through a friend. He lived in LA, and they began a long-distance relationship. When Nam visited New York, Miss Song was drawn to his calm, intellectual vibe, his tall frame, and his modesty—he didn’t even seem to care how handsome he was. Most of all, she liked how he handled her sharp personality with humor and patience.

Aside from Nam’s two visits to New York, their relationship had been mostly over the phone and Skype for over a year. One day, Nam’s father said he wanted to meet Miss Song and invited her to LA. She had stayed at Nam’s house for a week, and now she was on her way to the airport to return to New York.

While driving, Nam said,
“We have plenty of time before your flight. Let’s swing by Santa Monica Beach for a bit.”
Miss Song wasn’t someone who took chances with time. She would rather arrive early and wait than risk being late—for planes, trains, or even casual meetups. She even received a perfect attendance award in high school because of this habit. The suggestion of going to the beach before heading to the airport made her nervous. She was about to protest but stopped herself—remembering what Nam’s father had said under the palm tree in the backyard:
“I really like you. I hope you’ll marry my son and accept his flaws. I’ll take care of all the wedding arrangements. When your parents visit from Seoul, they’re welcome to stay with us.”
Nam had lived in the U.S. six years longer than she had. He was the “senior” in American life, and she felt hesitant to argue with him.
“Do you think we won’t be late for the flight?” she asked cautiously.
“Absolutely not. I promise you’ll make your flight. Just trust your driver, Nam. Ha ha.”
The wide sandy beach and rolling waves welcomed her. The sound of the surf eased her tension and anxiety.
“Wow, it’s beautiful,” she said.
“See? It was a good idea. Let’s relax here for a while.”
Nam lay down on the sand near the water. Miss Song sat beside him, gazing at the ocean, then nervously glanced at her watch. She looked at Nam—he had his eyes closed as if lost in thought. She hesitated—should she say something about the time? She got up and brushed the sand off her skirt. Nam didn’t move. He looked completely asleep. She thought maybe he was just tired from playing tour guide all week. Not wanting to be demanding, she let him rest. But time didn’t wait, and she grew more anxious by the minute. Finally, she shook his shoulder.
“Excuse me… How long does it take to get to the airport from here?”
Nam opened his eyes, grabbed her hand, and said,
“Don’t worry. I know the fastest route. Just sit down and enjoy the ocean breeze. LA is a blessed place. Lie down under the sun and the wind will lull you to sleep.”
“Were you sleeping?”
“No, just deep in thought. My dad really likes you. He wants us to get married. Will you get married after finishing your degree?”
“Let’s talk about that after I get back to New York.”
“Why? You don’t want to marry me?”
“No, it’s not that. I just need time—”
“You need more time to think?”
“No, I mean… It’s the flight time. I need to check in at the airport. Aren’t we running late?”
“I told you not to worry. I’ve lived in LA for six years and been to the airport many times. Getting there early just means more waiting.”
Her nerves shot up. She snapped coldly at his relaxed face:
“Well, I’d still like to go to the airport now.”
“Alright, let’s go then.”

On the way, Nam spotted a McDonald’s near the airport and pulled into the parking lot.
“Why are we stopping here?” Miss Song asked, panicking.
“I didn’t have proper coffee this morning. McDonald’s coffee is cheap and tasty. Let’s just pop in for a quick one.”
That moment, Miss Song realized: This man lives in a different world from me.
She stared at his relaxed, happy face—so excited about coffee—and said firmly,
“I’m not drinking anything. I’ll wait in the car. Please be quick.”
“Come on, come in with me. Ever since I moved to America, I’ve gotten into the habit of stopping for McDonald’s coffee before a flight.”
She couldn’t shake his hand off and reluctantly followed him in. She wanted to tell him to hurry but didn’t. Instead, she sat on the edge of a chair, half-standing, and watched him join the long line. She let out a long sigh. Is he trying to make me miss the flight because he doesn’t want me to leave? Does he really love me? Or is he testing me?

Nam came back, excited, carrying two cups and a pie.

“Here’s your apple pie and coffee! I still remember the first time I had McDonald’s in America. My uncle, who moved here first, bought me an apple pie and coffee on the day I immigrated, right here at this exact McDonald’s. I smelled the coffee, saw that palm tree out there, and thought—yes, I really made it to America…”
He went on and on. Miss Song was shocked. She hadn’t expected such a long story right before her flight. Her hands trembled holding the coffee cup. Her body was tense, her heart racing. She just wanted to board her flight and drink wine alone.Right before he started a new story with, “This is kind of a different story, but…”, she interrupted.
“What time is it? We really have to go. We’ll miss the flight if we keep sitting here. Please tell me the rest on the way.”
“You’re so impatient. In America, you have to learn to wait. That’s what I’ve learned. I always stand in the longest line—it’s the most reliable.”
She couldn’t hear any more. The only thought in her head was: We’ll miss the plane. She shot up from her seat, knocking over her coffee, which spilled all over her red dress and shoes.
“Oh no, are you okay?”
“I’m fine. I’ll change at the airport. We really need to go now.”
She was flushed with frustration. The coffee made her heart race even more, and she felt faint. She just wanted to get on the plane and drink wine alone.

They arrived at the airport without saying a word. Miss Song, desperate not to miss her flight, quickly grabbed her suitcase from the back seat.
“You’re in such a hurry. I was going to help. Let me park the car—don’t go anywhere.”
This man is crazy! she thought. Does he wear a watch just for decoration? Hasn’t checked the time once! She rushed into the airport and ran up to the airline counter.
“I’m sorry,” the staff said. “The gate just closed.”
Miss Song stood frozen. Fortunately, there was another flight four hours later. Nam appeared in the distance, walking slowly after parking the car.
“You didn’t wait for me. I was looking everywhere.”
“The plane left.”
“What? Already? I guess time flies when I’m with you. Don’t worry—there are lots of flights to New York. Let’s finish that story while we wait.”
Miss Song sighed. “No, that’s okay. You should go home. I’ll wait alone.”
“You’ll get bored alone. But when I’m with you, time flies!”
She didn’t respond. She stared out the window.
"Do you need anything? I'm going to buy a newspaper."
"No, I don't," Miss Song replied curtly.
As Nam walked off slowly to get his newspaper, Miss Song got up, pretending to go to the restroom. She didn’t want to make eye contact. After using the restroom, she wandered around the airport shops, deep in thought. He may be tall and well-built, but there’s not a single practical bone in his body. And how can someone be so clueless? He doesn't understand how anxious I am. He really doesn’t get me at all. She wandered the airport aimlessly, then reluctantly returned to where Nam was sitting. She took a seat—not next to him, but a few seats away. When Nam saw her, he smiled warmly and put his newspaper aside.
“Hey, where were you? You were gone so long—I was worried! Come sit closer. Talking about missing your flight reminded me of something that happened to me years ago. I was flying from Canada to New York and missed my flight, too. I thought I had plenty of time, but I got too into reading the newspaper and lost track of it. Luckily, there was another flight three hours later—but I nearly missed that one, too! They even announced my name over the intercom. I was the very last passenger to board!”
As Nam happily rambled on about his own flight mishaps, Miss Song stared at him in disbelief.
My god. This man is hopeless. This is it. This is really the end. Without a word, she stood up and said in a firm, decisive tone,
“I think I’d better head to the gate and wait for my flight.”
“But we still have two hours! You’re going in already?”
“If I keep listening to your stories, I might miss the flight again. You can go now. Thanks for everything.”
Only then did Nam finally seem to get it. He scratched his head awkwardly.
“Well... contact me when you get to New York.”
He stood up reluctantly, looking disappointed, his shoulders slightly hunched. He walked slowly toward the airport exit, turned back once to look at her, then disappeared to the left.

Miss Song sat in the closest seat to the gate. Her body sagged from exhaustion, finally letting go of all the tension. She began to rewind everything about Nam in her mind. Sure, he's gentle and kind. But he’d go through life just as slowly and aimlessly as he is now. If I married him, my impatient nature would drive me crazy. I’d lose my mind. She had come to LA hoping to meet his parents and finally leave her "old maid" status behind. But now, she thought:

막이 내리다

“많은 한인이 사기꾼이니 엮이지 않게 조심해요. 한국인은 쓸데없이 정이 많아요. 정서가 어떻고, 정체성이 어떻고 하는 소리 촌스러워 듣기 싫어요.” 한국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아에게 이정은 말했다. 도아는 이정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