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와 지경이 맨해튼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쇼핑몰에서 만났다. 쇼핑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 와인도 한 잔씩 하자.”
지경이 말했다.
“대낮부터 술? 까짓것 좋아. 한잔하지. 밥 먹고 집에 갈 일만 남았는데.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콧노래 부르며 걷는 것도 좋지.”
신희가 흔쾌히 동의했다.
지경이 아이 머리통만 한 와인잔 밑에 깔린 검붉은 와인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한 모금 들이켠 후 말했다.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야. 한사람하고만 평생 산다는 것이.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신희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 말이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지겨워. 지루해 죽겠다고. 동굴에 갇힌 느낌이야.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결혼 전에는 왜 못 깨달았을까? 이렇게 지루한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말걸.”
지경이 턱을 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얼마 전, 남편에게 나와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아? 물었더니 지루하지 않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지겨워 숨이 턱 막히더라고. 그 느낌 알아?”
신희가 칼칼한 목에 검붉은 와인을 들이붓고
“알고 말고 나도 마찬가지야. 꼭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변화가 필요해. 며칠 전, 큰맘 먹고 남편에게 ‘나와 헤어지면 나보다 더 젊은 여자와 살 수 있어 좋을 텐데?’ 말하니까. 그냥 귀찮다네. 서류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새 여자를 어떻게 믿고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냐며 그나마 모은 재산 사기당할 것이 걱정되어서 싫데. 그깟 돈이 뭐라고 한번 사는 인생 새로운 삶과 바꿀 수 없다는 건지? 다들 결혼하면 그냥 그렇게 사는 가라네. 10년 후에나 다시 생각해 보자며 침실로 가 버리더라.”
지경이 반색하며
“그러니까 내 말이 법으로 10년마다 결혼 갱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회를 줘야 한다니까. 안 그래? 그러면 불륜이네 마네, 내연녀냐 상간녀냐고 따지고 싸울 필요 없이 헤어진 남편과도 친구 관계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 것 아니야. 법이 문제야. 법이 사람을 꼼짝달싹 못 하게 프레임 안에 가둬 놓는다니까. 아! 일본엔 졸혼이 있다는데. 굳이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을 참견하지 않고 재산도 나누지 않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지? 그래서 내가 서류 문제가 골 아프면 이혼하지 말고 졸혼하면 어떠냐니까 그것도 싫다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래.”
신희가 깊은 생각에 잠시 빠진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생각났다는 듯
“저 먼 나라 니카라과던가? 거기에 사는 여자들은 지나가던 나그네가 쉬었다 가고 싶어 하면 함께 산데. 남자가 떠나면 미련 없이 보내주고 또 지나가는 다른 나그네와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데. 혼자 사는 여자가 농사지을 남자가 필요하기도 하고. 나그네도 가던 길 쉬었다 갈 수도 있고.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줄줄이 태어나 밭농사 도와줄 수 있게 성장하고. 일석삼조가 아니라 일석칠조 잖아? 굳이 아이들 손타게 키울 필요도 없데. 아이 때부터 스스로가 기어나가 먹을 거 챙겨 먹는다니. 스스로 자라나는 거지. 사람뿐만이 아니라 짐승들도 아침에 나가 돌아다니며 주워 먹다가 귀소본능으로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잔데. 개, 소, 돼지, 닭, 온갖 동물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않고 잘 지낸대. 짐승도 사람들도 네 것이니 내 것이니 싸우지 않고. 서로에게 스트레스받을 일 없어서 아마 행복지수가 높을 거야. 지경아, 어째 네 얼굴이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 표정이다. 우리가 결혼 서약할 때, 흰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약속으로 남의 이목과 편견이 두려워 동굴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빨리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프레임 밖 세상엔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야. 내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이야기를 니카라과에 사는 사람에게 직접 들었거든.”
지경이 니카라과 아낙네와 나그네를 상상하는지 한동안 꿈속에서 헤매는 자세로 있다가.
“그럼, 그곳에서는 질투도 집착도 남녀 간의 싸움도 없이 그냥 물 흘러가듯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자연인으로 살 수 있겠다?”
신희가 뭘 좀 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물론 질병과 싸워야 하는 환경에서 살겠지만, 이곳에서처럼 질투와 시기하고, 비교하고, 집착하고 증오하며 살지는 않겠지. 한 남자가 떠나면 다른 남자가 언젠가 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우리처럼 한 남자와 주야장천 살아야 현모양처 자처하며 조신한 여자 대접받는 사회보다는 니카라과 여자가 훨씬 앞서가는 삶을 사는 거 아니야? 굳이 주위 사람에게 조신한 여자로 대접받으며 살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LA에 사는 친구에게 했더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다.’며 정신 차리라더라.”
와인잔을 거의 비운 지경이 생각났다는 듯 흥분한 목소리로
“현실적으로 니카라과인지에 가서 살 수는 없고 이곳에서도 노력하면 그렇게 살 수 있어. 얼마 전, 매슬로의 욕구단계설 (Maslow's hierarchy of needs)이란 유튜브 강의를 들었어. 강사가 한 이야기인데 피라미드처럼 올라가는 매슬로의 5단계(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소속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는데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 예로 학교 선생이었던 한 여자를 들더라. 그 선생은 50세에 퇴직하고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던 남편에게 이혼 조건으로 퇴직금의 반을 줬다네. 그리고 작은 백팩 하나 메고 한국을 떠났데. 동남아시아에서 떠돌며 배가 고프면 알바하면서 자유인으로 산데. 게다가 자유인, 인도 애인도 있다네. 가끔 둘이 우연히 만나면 하룻밤 함께 지내고 헤어지고 지금까지 떠돌아다닌대. 강사 말이 이런 여자야말로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한 사람이라는 거야. 과연 그럴까?
신희가 수긍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컬컬한 목소리로
“물론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환경이 뒷받침하긴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포기할 것 포기하고 동남아시아를 떠도는 여자처럼 배낭 하나 메고 떠나면 자아실현의 욕구를 실현할뿐더러 자유인으로 살 수도 있기는 하지.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니?. 대부분 여자가 그 여자처럼 용기가 없으니까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소속 욕구에 머물러 그냥 지지고 볶으며 사는 거지. 게을러서이기도 하고(안전 욕구) 남의 이목(소속욕구)이 두렵기도 하고. 용기가 없어서 매슬로의 욕구단계설 중 하위 단계에 머물러 한 번뿐인 인생 마음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살다 죽는 거지.
신희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지경이가
“법도 법이지만 사회 구성원도 문제야. 일단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 문제이기도 하고, 왜 사람들은 그리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즐기는지. 그 시간에 제 일이나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이야 이혼하든 재혼하든 불륜 행위를 하든 뭔 상관이래. 생긴 대로 살고 싶다는데. 남의 일에 참견하고 불라불라 떠드는 사람치고 제 인생 제대로 사는 인간 못 봤어. 잘못된 결혼제도만을 탓할 게 아니라 본인이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면 사는 거지 뭐. 그냥 자유롭게 살게 놔두면 자유를 즐길 사람은 즐기고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혼자 있다가 독거노인으로 죽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신희가 마지막 남은 붉은 와인을 입에 털어 넣고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애 저녁 지을 시간이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자. 이 인간 더러운 성질 내기 전에. 한국 남자들은 왜 배만 고프면 짜증 내는지? 야만인도 요즘처럼 먹을 게 지천인 세상에서 안 그런다는데.”
신희가 화들짝 놀라며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저녁밥 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우리 H-마트에 들려 밑반찬이나 사 가자.”
지경이와 신희는 32가 K-타운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각자 남편이 좋아하는 찬거리를 사서 누군가 말한 결혼 25년을 넘기면 성공한 삶이라는 결혼 울타리 안의 동굴을 향해 터벅터벅 김빠진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