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9, 2024

엄마의 치마 속


“Hi, I remember you.”

“미안.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네가 누군가에게 ‘I am from my mother’s belly.’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꽤 인상적이어서 너를 기억해요.”

“어! 그랬어요. 크루즈에 몇몇 없는 동양인인 나를 기억하나? 했는데.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크루즈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남자와 나눈 대화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들의 첫 질문은 

“Where are you from?”이다. 나는 대답한다. 

“I am from my mother’s belly.”

미국에 오래 살면서 수없이 받아 온 질문이 귀찮기도 하고 그냥 심심풀이 땅콩 까먹는 식으로 대꾸한다. 그러면 웃으면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집요하게 내가 태어난 곳이 더 궁금한지 질문은 이어진다. 

“What is your nationality? Japanese?”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Chinese? Korean?”

“I am from Korea.”

라고 대답했건만 질긴 사람들은 나에게 다시 묻는다.

“North Korea? South Korea?”

나는 대답한다.

“I am from East Korea, hahaha. West Korea.”

외국인 대부분은 북한과 남한은 어디서 들어서 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들에게 나는 웃으며 다시 말한다.

“Actually, I am from Best Korea. Haha ha.”


한국이 드라마와 가수 방탄 덕에 많이 알려졌다. 내가 수없이 내뱉던 ‘Best Korea’가 정말 된 것이다. 나의 두 아이는 

“엄마, 고마워요. 한국인으로, 가장 큰 도시 뉴욕에서 남자로 태어나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며 살게 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줘서.”


큰아이가 오래전, 몽골에 여행 간 적이 있다. 어두운 밤에 별을 보며 들판에서 헤매던 중 멀리 몽골인이 사는 집, 게르를 보고 반가웠다. 

“길을 잃었습니다. 길 좀 가르쳐 줄 수 없을까요?”

“잠깐만 기다려야 해요. 지금 코리안 드라마를 보는 중인데 드라마가 끝나면.”

“나 코리언이에요.” 

“아! 반가워요. 그럼 함께 드라마 보고 끝나면 안내해 줄게요.” 


내가 태어난 한국이 ‘잘 살아보세.’ 외침으로 부강국이 되었다. 게다가 드라마와 가수 방탄 등 많은 활동가의 노력으로 세상 곳곳에 널리 알려졌다. 아이들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난 왠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우주에 홀로 던져진 작은 돌멩이 같은 느낌이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 자리 잡아 보겠다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발버둥 치다 상처받고 피곤해진 작은 짱돌 같은 느낌이랄까?


“정신 차려. 애가 소금에 푹 절인 파김치 같네. 그 못된 성질 다 어디 갔어? 미국 가기 전에는 제 성질대로 안 되면 방바닥을 뒹굴며 난리 치던 애가, 미국 가더니 성질 다 죽고 사람 됐네! 뉴욕 물이 세기는 센가 보다. 미국 가기 잘했지. 공부해서 좋고, 못된 성질 고쳐 좋지, 결혼 비용 안 들었으니, 일석삼조다. 너 한국에서 결혼했으면 돈 엄청나게 깨졌다. 모르긴 해도 유학 비용보다 훨씬 더 들었을걸.” 

오래전, 한국을 방문하니 친정아버지가 기뻐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나의 미국 생활 시작부터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종사촌 언니가 한국 음식이 가득 든 커다란 박스를 뉴욕 가는 나에게 시카고에 사는 시누이에게 전해 달라며 공항에 가져왔다. 

“언니, 시카고가 어디야.”

“뉴욕과 가까운 곳이야. 내 시누이가 가지러 올 거니까 걱정 말고 가져가.” 

JFK공항에 학교에서 마중 나온 말레이시아 여학생이 내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박스에서 한국 음식 냄새가 솔솔 새는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못 하는 영어가 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 등록을 마치고 박스를 가지러 오라고 시카고에 전화했다. 

“시카고에서 뉴욕이 얼마나 뭔 곳인 줄 몰랐어요. 가지러 갈 수 없어요. 우편으로 부치세요.”

차도 없고, 우체국도 모를뿐더러 어떻게 붙일 줄도 모르는 나에게 ‘왜 가져 왔느냐?’며 귀찮다는 듯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었다.


미국에 유학 간다니까 교수님이 미국에 사는 지인의 전화번호를 줬다. 몇 개월을 번호가 적힌 종이를 꺼내 보기만 하고 망설이다 용기 내 조심스럽게 전화했다.  

“저 서울에서 온 이수임인데요.” 

“난 한국 사람 안 만납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단칼에 잘라 밀어냈다. 쇠몽둥이로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듯 몸이 굳어져 한동안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붙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연히 한국 아줌마를 만났다. 매우 반가웠다. 

“나는 서울에서 방금 온 약아 빠진 서울 아가씨는 무서워서 상대 안 해요.” 

깊은 늪으로 빠져들며 허우적거렸다.


외로움에 절은 내가 한국 남자와 차 마실 일이 생길 줄이야! 잘 보이려고 작은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그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이러고 노닥거릴 시간에 돈을 벌면 벌써 꽤 벌었겠네, 미국에서는 시간이 돈이지요.” 

절벽 아래로 등 떠밀려 떨어지는 느낌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미국에 와서 받는 설움에 지쳐 서울에 갈 때마다 친정아버지는

‘너 왜 이렇게 사람이 쪼잔해졌니?’

어려운 결혼과 이민 생활이 나를 쪼잔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힘들 때마다 친정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쉬다가 용돈 두둑이 받아오는 재미로 툭하면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몇 불에 벌벌 떠는데 그들은 펑펑 써대니, 대조적인 삶이 서러워 더는 갈 곳이 아니라며 발길이 뜸해졌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친정은 새로운 식구인 올케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주인 행세를 하며 엄마가 알뜰히 모아놓은 재산을 축내며 나를 반갑지 않은 나그네로 취급했다. 친정은 더는 끼어들 수 없는 타인들의 무대로 바뀌며 씁쓸한 기억으로 멀어졌다. 


오랜 이민 생활, 수없이 절벽으로 떨어졌다가는 기어 올라오고, 친정과도 멀어지며 서서히 파김치가 되어갔다. 드디어는 건포도처럼 말라 굳어지고 쪼그라들다가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그 돌멩이가 닳고 닳아 먼지가 되었다. 나는 이따금 먼지로 누군가의 발밑에 깔려 설 수 없는 느낌이다. 답답하다. ‘내가 왜 이곳에 웅크리고 있는 걸까?’ 자신에게 반문한다.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배나 더 긴데도 미국에 살면 살수록 끝 간 데 없이 넓은 미국이란 나라를 통 모르겠다. 부모 돌아가시고 난 후 한국은 설움의 땅으로 내가 알던 곳이 더는 아니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가는 곳이라던데? 엄마 품 안이 나의 집이다. 


어린 시절 항상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엄마는 나를 시골집에 보내곤 했다. 곧 뒤따라오겠다는 약속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내려서는 십 리 길을 꼬부랑거리고 가면 시골집이 보였다. 걸어가는 강가 벼랑은 끝없이 깊고 강물은 나를 삼킬 듯 출렁였다.


고모는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번쩍 안아 냇가로 데려가 냇물을 끼얹어 주며 목욕 시켜줬다. 대청마루에 앉아 밥을 물에 말아 오이지에 고추나물 그리고 조개젓으로 밥을 먹으면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엄마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서울서 온 나를 반기는 친구들과 뛰어놀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산등성이 무덤가에 서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틈에 혹시나 엄마가 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엄마는 없다. 꿈에서 본 엄마는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 나를 찾아올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가겠다고 며칠을 울곤 했다. 나를 찾아오다가 엄마가 강가 벼랑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상상이 더욱 울게 한듯하다. 며칠을 울고 나면 엄마 곁에 갈 수 있었다. 엄마의 치마폭에 들어가  좋아서 흘리는 눈물을 엄마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치마로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곁에 있는 나는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어 온종일 울지 않고 뛰어놀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엄마는 없다. 나도 모르는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이제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의 엄마가 살아왔듯이 그녀를 닮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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