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달걀을 드시다가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셨어. 구급차에 실려 가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셔.”
지난 7월 독립기념일 연휴였다. 서울에 사는 누나가 한밤중에 전화 걸어 울면서 말했다. 나는 급히 비행기표를 구해 서울에 갔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대학에서 강의하시던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고등학교 선생 하시며 나의 유학 자금을 보내주셨다. 은퇴하신 후 편안한 여생을 보내려던 엄마는 파킨스병을 앓기 시작했다. 일만 하며 나와 누나를 뒷바라지한 엄마의 생사가 오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회사 일로 서울에 서너날 있다가 뉴욕으로 돌아오니 와이프가 집에 없었다. 소피도 없다. 피곤한 몸을 뉘고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새벽 3시였다. 여전히 와이프가 옆에 없다. 불길한 느낌으로 잠이 확 달아났다. 서울 가기 전, 와이프에게 새로운 아이폰을 사줬던 생각이 났다. 그녀의 헌 전화기를 찾아 연결해 와이프의 위치를 알아냈다. 걱정되어 찾아 나섰다. 그런데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들어왔다. 와이프가 새벽 4시에 차 안에서 어떤 남자와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이 새벽에 유부녀 손을 잡고?”
남자를 차 밖으로 끌어내어 따귀를 세대 올려붙였다.
“너, 나 쳤어. 경찰 부를 거야. 네가 나 때린 것 차에 다 녹음되어 있어.”
외간 남이 더 큰소리쳤다.
“그래 경찰 불러 잘됐네. 불러.”
“왜 사람을 치고 난리야. 폭력은 용서할 수 없어.”
와이프가 남자 편을 들며 두둔했다.
우리 부부가 실랑이하는 도중, 남자는 차를 급하게 몰아 사라졌다. 술 취해서 경찰을 불러도 불리할 것을 알고 도망간 것이다.
“누구야? 이 새벽에 차 안에서 당신 손을 잡은 저놈은.”
“오늘 처음 만난 남자야.”
“처음 만난 남자와 이 새벽에 손을 잡고 있어?”
“하도 남자와 말이 잘 통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시어머니는 코마로 병원에 누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걸 보러 내가 잠깐 한국 간 사이 이럴 수 있어?” 소피는 어디에 있어?”
“내가 말했잖아. 나는 개 키우기 싫다고. 당신만 찾는 개를 내가 어쩌겠어. 당신 올 때까지 마크에게 맡겼어.”
결혼 생활 11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이가 없다. 병원에 누워 계신 엄마가 그리도 애타게 원하는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했다. 시험관으로 낳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보험도 좋은 것으로 들고 와이프도 몸을 건강하게 보강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 대신 3개월 된 강아지 소피를 데려와서 자식처럼 키웠다. 와이프는 소피를 귀찮아하며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 갈 때마다 서로의 개를 맡기는 마크 부부와 우리는 보스턴에서 학교 다닐 때 만났다. 내가 뉴욕으로 직장 잡아 떠난 이듬해, 그들도 뉴욕으로 이사 왔다.
다음 날 나는 소피를 찾으러 브루클린에 사는 마크에게 갔다.
“내가 한국 간 사이 소피를 맡아줘서 고마워.”
“미안.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는데 지금 소피가 집에 없어. 어제저녁 산책 후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열린 문으로 뛰쳐나가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소피가 간 곳을 쫓아서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어. 아마 네가 갑자기 없어지고 우리 집에 와 있는 것이 황당했나 봐. 너를 찾아 맨해튼으로 간 것 같아. 워낙에 너만 좋아하잖아. 미안해. 우리 집 아니면 너희 집으로 돌아올 거야. 기다려보자.”
마크 집 근처 공원을 돌며 소피를 불렀지만 없다. 길에서 개와 산책 중인 사람들만 보면 무작정 달려가서 물었지만, 소피를 보면 알려주겠다고 나의 연락처를 물어볼 뿐이다.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주위를 둘러봤다. 왼쪽 저 멀리 한 커플이 서로 겹쳐 앉다시피 껴안고 있다. 앞쪽 벤치에 개와 함께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멀어져 갔다. 울고 싶은 것을 눌러 참다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코마로 와이프는 외간 남자와 다정하게 손잡고 시시덕거리고, 사랑하는 소피는 나를 찾아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갑자기 모든 일이 쓰나미 몰려오듯 왜 이 한여름에 터진 것일까? 우리 엄마가 얼마나 와이프에게 잘했던가. 그런 엄마를 생각한다면 나에게 이럴 수 없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화산이 폭발하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나가. 이혼하자.”
“이혼하자면 못할 줄 알고 나도 지겨워. 그래 좋아. 하자.”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여독과 소피가 나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서 집 나가라고 소리 질렀어. 와이프가 외간 남자와 새벽 4시에 차 안에서 손잡고 있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남편이 어디 있어. 다 잊어. 내가 잘못했어.”
“나 독립하고 싶어. 한 달동안 나가 살면서 우리 관계를 정리해 볼게.”
서너 번 더 사과했지만, 와이프는 집을 나갔다. 브루클린에 방을 얻었는지 은행 계좌에서 7,700불을 뺐다. 크레딧카드를 물 쓰듯 했다. 아내는 결혼 11년 동안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한 적도 없다. 나에게 의존해서 살았다. 와이프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여러 번 전화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 더는 코마 상태인 엄마를 둘 수 없으니,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연락이 왔다. 소피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를 찾아오다가 동물 보호소에 감금된 건 아닌가? 걱정하며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의 상태는 지난번에 다녀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더 좋아진 것도 없고 몸이 많이 마르셨다.
“엄마 유언대로 산소호흡기를 떼고 편히 가실 수 있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
지인들은 말했다. 기도가 막혀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 엄마의 갈비뼈 6개가 골절했다. 깨어나신다고 해도 예전으로는 돌아가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보내드릴 수는 없다. 누나와 나는 좀 더 엄마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럴 때 와이프가 아이라도 낳아 엄마에게 보여주면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수시로 눈물이 흘렀다.
서울에 가서도 와이프의 헌 전화기로 위치 추적을 계속했다. 아내는 내연남과 내 돈을 물 쓰듯 쓰며 살림을 차렸다. 크레딧 카드로 속옷을 사고 향수를 사고 채식주의 아내가 갈비구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내가 공동으로 이름 올려준 크레딧 카드를 마구 긁었다. 멕시코와 보스턴으로도 여행도 갔다. 빨리 뉴욕에 돌아가서 은행 계좌와 크레딧카드를 닫아야 한다. 소피도 찾아야 한다. 서울에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며 괴로워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아 몸무게가 10파운드나 빠졌다.
요양 병원을 찾아 엄마를 모셨다. 아내와 내연남의 부정행위가 너무 뻔뻔하고 억울해서 소송하기로 마음먹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더는 조인 어카운트에서 돈을 빼지 못하게 계좌와 크레딧 카드를 닫았다. 내연남과 와이프의 행적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는 내 신세가 비참했다. 상간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려면 자료수집을 해서 변호사에게 줘야 하므로 그들의 행적을 일일이 계속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커다란 증거로는 아내가 찻 지피트(chat GPT)에 내연남과의 궁합을 물어본 것이었다.
“천생연분으로 일생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인연이다. 지금은 주위 사람들 이목이 있으니 올 말까지는 얌전하게 행동해야 한다. 올해 말 남편과 이혼하고 내년 말경에는 내연남과 결혼할 수 있다. 아들도 낳는다.”
찻 지피티는 물어보는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듯 와이프가 듣기 좋은 소리만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와이프가 집 나간 지 한 달이 되었다. 만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려고 연락했다. 은행 계좌와 크레딧 카드를 닫은 것을 알고 돈이 아쉬웠는지 아내가 전화받았다.
“왜 그동안 여러 번 연락했는데 전화받지 않았어? 이제 한 달도 됐고 충분히 생각했을 텐데. 어떻게 할 거야?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 남자와는 만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밤잠도 설쳤어.”
내연남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으면서 거짓말했다. 내가 전화기로 추적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멕시코로 여행 갔던데 누구와 갔어?”
“혼자 갔지. 누구랑 가. 내가 예전부터 멕시코 가고 싶어 했잖아.”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혼자서 어떻게 간 거야.
“구글맵으로 찾아다녔지.”
“구글맵을 사용했다고? 멕시코에서 로밍도 하지 않았던데.”
찔리는지 못 알아들은 척 아무 말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2주만 더 시간 줘.”
”안돼. 이혼하자. 이혼 서류 준비해서 가져와.”
이혼 서류에 사인받기 위해 만났다.
“내가 한국 간 사이 집에 들락거리며 물건을 많이도 가져갔던데. 집 열쇠 내놔.
“가지고 오지 않았어. 다음 주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해. 나 바빠서 가야 해.”
아내가 나와 헤어지자마자 지하철역에서 내연남이 픽업해 가는 것을 그녀의 예전 핸드폰으로 위치 추적했다. 계속 거짓말하는 이런 여자와 내가 10년 이상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2주 후, 만나기로 한 전 날, 아내에게 전화했다.
“내일 영사관에 가서 이혼 서류를 제출할 거니까 준비해서 가지고 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내연남과 행복하게 살기 바라. 집 열쇠도 가져오고.”
“당분간 열쇠를 더 가지고 있으면 안 돼? 내 겨울옷이 아직도 그곳에 있잖아.“
“난 빨리 끝내고 싶어.”
돈이 떨어져 불안해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오히려 내연남에게 붙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한테 다시 들러붙기 전에 빨리 이혼해야 한다. 홧김에 내가 집 나가라고 한 것을 핑계로 그 남자와 살림 차리고 두 가정을 파탄 내다니. 딸까지 있는 내연남의 와이프가 딸을 데리고 여름 방학에 서울 친정에 가 있는데 돌아오면 얼마나 상심할까?
영주권자인 우리 부부는 이혼하러 영사관에 갔다. 서류를 작성했다. 와이프가 사인할 곳을 다 사인했는데 재산분할에는 하지 않는다.
”왜 하지 않는데? 내가 10년 동안 부어준 Roth IRA 받고 이혼하기로 했잖아?”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돈을 더 뜯어내려고 머리를 굴리는 것 같다. 영사관에서는 미리 약속하지 않았다고 이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는 골치 아파질 텐데 걱정이다.
소피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마크에게 전화 걸었지만, 그곳에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소피와 매일 간 산책길에서 빙빙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새벽의 태풍 경보 때문인지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반소매 차림의 팔이 차가웠다. 추위에 떨고 있을 소피가 걱정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는 소피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아직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걸까? 나를 찾아오다가 차에 치어 죽은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물 학대범에게 붙잡힌 것은 아닐까? 걱정이 멈추지 않았지만, 이혼과 내연남 소송 서류 준비로 소피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내 허락 없이 다시는 내 아파트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와이프의 약속을 받았지만, 혹시나 해서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나 몰래 여행 가방을 들고 아파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 내 옷과 내가 수집한 물건들을 담고 있다.
“네 남편 눈에 띄지 않는 물건만 담아.”
내연남과 전화 통화하면서 커다란 가방에 내 물건을 부지런히 담았다. 나보다 키 작은 내연남에게 내 옷이 맞을 리 없는데. 왜 담고 있는지 의아했다.
이혼 하러 가기 전날 일찍 아내에게 연락했다.
“어제 내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가 가져간 물건 도로 다 가져다 놔. 만약 가져오지 않으면 변호사를 통해 소송할 테니까.”
소송한다니까 어제 가져간 물건을 도로 다 가져왔다. 그리고 재산 분할 난에도 사인했다. 영사관에 갔지만 어떤 오차로 나흘 후에 다시 오란다. 또 이혼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 이제 지하철 타고 맨해튼 나갈 돈도 없어. 내연남 성격도 좋지 않고 폭력성이 있어.”
슬픈 얼굴로 말하는 와이프를 쳐다보니 불쌍한 마음이 일어났다.
“네 와이프가 잘못했다고 빌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받아주면 너와는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절대 네 와이프를 용서 못 해. 학벌, 집안도 다 속였잖아. 이건 처음부터 사기 결혼이었어. 시어머니가 코마 상태인데 바람까지 피워.”
누나의 말이 떠올랐지만, 잘못했다고 빌면 받아줄 것 같은 연민의 정으로 울컥했다. 와이프는 돈 없다는 소리만 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드디어 영사관에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내연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증거물을 준비해야 한다. 내 생일날 함께 저녁 식사 하자고 와이프가 전화했다. 와이프는 내연남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나를 꼼짝 못 하게 컨트럴 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계속 문 두드리고 난리 치며 폭력도 행사해. 그러고는 잘못했다고 빌기를 반복해. 그를 떠나고 싶어. 직장 알아보려고 여러 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오라는 곳이 하나도 없어. 나 다시 자기에게 돌아가면 안 될까?”
본인의 부정행위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겠다니! 너무 뻔뻔하다. 그런데도 11년간 함께 산 정이 밀려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느라 바뻐서 찾아 나서지 못한 소피를 찾으려고 NYC Animal Care Centers (ACC) 웹사이트에 신고했다. 일정 기간 보호소에서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한다던데. 소피는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오다가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빨리 이혼 하고 사랑하는 소피 하고만 살고 싶다. 서울을 두 번 오가고 와이프 위치 추적과 이혼하느라 바빠서 적극적으로 소피를 찾아 나서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더욱 더 가슴 아팠다. 아직 살아는 있는 것일까? 소피와 자주 갔던 공원에 수시로 갔다. 소피와 자주 앉던 벤치에 앉아 제발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살기를 바라며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내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흘렀다.
와이프와 내연남이 만나기는 5월 10일 처음 만났다. 7월 12일 처음 잠자리를 했는지 10월 19일 일요일이 100일째라며 내연남이 와이프를 위해 깜짝 파티해 준다고 난리 떠는 것을 추적했다. 이혼 서류를 내민 이후 나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할 때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와이프는 절대로 내연남을 만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혹시 와이프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우리 부부가 일 년에 한 번 엄마를 보러 가기 위해 작년에 산 그녀의 비행기표를 켄슬하지 않고 있었다. 함께 한국에 가서 부모님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면 다시 받아줄 마음도 없지 않아 있어서였다. 한데 계속 내연남을 만나면서 만나지 않는다고 속이고 결국엔 내가 돌아오라고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내연남에게로 돌아섰나 보다.
“네 남편이 뭐 물어보면 무조건 나를 안 만난다고 해. 그냥 물어보는 거야. 무조건 부인해. 자기가 어떻게 우리가 뭘 하는지 알 수 있다고.”
“그렇지 않아. 혹시 당신 와이프와 내통하며 우리 이야기를 엿듣는 것 아니야? 어떻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지?”
“아무래도 전화기 회사를 바꿔야 할 것 같아.”
내연남은 아내의 전화 회사를 바꾸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10월 21일을 끝으로 더는 추적할 수 없게 됐다. 나도 와이프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접고 와이프의 한국행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그동안 아내에게 들었던 내연남이 자기 부인을 대하는 말과 태도가 떠올랐다.
“나이도 나보다 많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혼하기 싫었지만, 임신해서 할 수 없이 했어. 헤어지고 너와 살고 싶어.”
내연남은 나쁜 남자의 본성을 다 갖춘 남자다. 왜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빠지는지 알 수 없다. 한국 가기 전, 내연남의 부인에게 연락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먼저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 통화했다.
“남편이 자기가 염원했던 여자를 만났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아요.”
라고 내연남의 부인이 나에게 말하며 간청했다.
“두 분이 이혼하지 말고, 그냥 예전처럼 살아주면 안 될까요? 제가 어린 딸이 있어서 이혼하기가 쉽지 않네요.”
“몇 번을 다시 받아줄지 생각해 봤지만, 계속하는 와이프의 거짓으로 이젠 안 될 것 같아요.”
더는 희망이 없다고 내가 대답하자
“혹시 그들이 사는 곳 주소라도 주실 수 있나요?”
잘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알려줬다.
“이혼 소송하실 때 필요하시면 제가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 드릴게요.”
“지금 서울에서 선임한 변호사님을 저에게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변호사님에게 물어볼게요.”
내연남 부인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듣노라니 마음이 쓰라렸다. 딸 가진 이 여자가 나보다 더 힘들겠다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여전히 소피 소식은 듣지 못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또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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