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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7, 2022

꼬마야


1장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이수임(李秀妊), 빼어날 수()에 아이 밸 임()이다. 빼어난 아이를 임신하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여간첩 김수임​​​(金壽任: 1911-1950)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수임의 壽는 목숨 수​​와 임무 임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다 죽는다는 뜻이 아닐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능통한 영어를 구사하며 빼어난 미모의 김수임이 떠올랐다고 했다. 간첩으로 처형당한 김수임의 한자와는 달리 내 이름 한자는 빼어난 아이를 밴다를 택하셨다. 

김수임은 소문난 수재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중 공산주의 이론에 입문한 뒤 독일 베를린 대학에 유학한 엘리트 정치인으로 1955년 처형된 이강국의 연인이었다. 김수임은 미국인 통역을 하며 미군정 시기에 군정청 직원으로 근무했다. 동거인 미군 간부 존 베어드로부터 각종 기밀을 빼내어 이강국남로당에 제공했다가 체포되어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불운의 여자다. 

김수임의 연인 이강국은 나의 친척 할아버지로 워커힐이 끝나는 곳인 경기도 양주 태생이다. 아버지보다 12살 많은 이강국은 나의 친할아버지 이강복 사랑방에 자주 들락거렸다.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수제인 이강국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던 아버지는 이강국을 통해 김수임을 만났다. 아버지는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인텔리인 김수임의 첫인상이 강하게 남아 내 이름을 그녀의 이름과 똑같이 지었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혼례 치르는 날 신랑이 돼지고기를 잘못 먹고 급체해서 돌아가셨다. 재혼하지 않고 평상 과부로 집안을 더 크게 일궈 마을에서 열녀문을 세워줬다. 증조할머니는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신랑이 죽자 나의 할아버지 이강복을 양자로 들였다. 독자인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낳았다. 아버지도 독자였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엄마는 아이를 부지런히 낳았지만 나 위로 큰 언니 한 명만 남겨놓고 작은 언니와 오빠 세 명은 죽었다. 나는 엄마 나이 38살에 연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내가 태어나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며 생기를 얻었다. 갓난 나를 수염 난 뺨에 비비고 천장으로 번쩍 들어 올리고 목말을 태웠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질색하며 울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자지러질 만큼 뚜렷한 통증과 현기증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저녁 식탁에서 반주하면서 아버지의 과거나 집안 내력을 줄줄이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허구한 날 내 손을 잡고 외출했고 남산길도 함께 산책했다. 내가 친구를 만날 때도 쫓아 나와 친구와 내가 아버지 팔에 매달려 걸었다. 아버지 손은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오랜 세월 잡은 아버지의 손을 퉁해서 아버지가 늙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꽉 쥐었던 손이 어느 날부터인가 느슨해졌다. 세월이 더 흐르자 아버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 가슴에 통증이 서서히 밀려왔다. 아버지의 격려와 응원 없는 세상을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방바닥을 몇 번만 굴러도 원하는 것을 얻는 버릇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 사랑에 감격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며 철이 들었다. 사랑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와 같은 수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사랑하는 내 아버지가 지어준 내 이름을 무척 좋아한다. 시민권을 땄을 때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외국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아버지와의 무언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처진 작은 눈에 납작한 뒤통수와 왜소한 몸을 한 내 생김새는 완전 한국 토종 중에서 토종이다. 외국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따금 나를 ‘순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 대답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어도 화날 일이다. 또한 홀로 서고 싶은데 나를 누구 와이프나 누구 엄마로 소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가볍게 부탁한다.
“앞으로는 제 이름으로 소개해 주세요.”
아버지가 지어 준 한국 이름 이수임으로, 누구의 와이프나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이름 이수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2장 나는 어디에서 왔나

나는 엄마 배 안에서 왔다.
어둡지만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두 손발을 모으고 
엄마와 아빠의 속삭임을 들으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다

나는 아버지 품에서 왔다.
까칠한 수염을 가진 커다란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따갑다. 아프다. 쓰라리다.
내 머리가 천정에 닿을 듯 말 듯 번쩍 들어 올려졌다. 
숨이 멈췄다.
아버지 품으로 다시 떨어졌다. 
우는 나를 엄마가 젖을 물렸다. 
뭇국 냄새가 난다. 
엄마가 아빠보다 더 좋다.

껌을 질겅질겅 
눈감고 단맛을 음미하다 
목 안으로 쏙 빠졌다. 
엄마~ 나 죽어. 껌이 뱃속에
울면서 동네 길을 뛰어내려갔다.
엄마가 도깨비 머리를 하고 커다란 바가지를 쓰고 있다.
놀라서 울음을 뚝 멈췄다. 
의자에 앉힌 나를 미장원 아줌마가 
엄마 닮은 작은 도깨비로 만들었다. 
머리털 타는 냄새, 미장원 냄새에 핑그르르.
세상이 피곤하다.

연두색과 연핑크 체크무늬 짧은 치마 
보드라운 빨간 스웨터를 매일매일 입고 싶다.
엄마는 빨아야 한다고 벗겼다. 
방바닥을 구르며 옷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
엄마는 성질 죽이는 한약을 먹여야 한다며 달래다가 
내가 좋아하는 명동 만미정에 갔다. 
냄비우동을 후루룩. 도넛을 야금야금. 
나를 쳐다보는 엄마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
세상이 행복하다.

아침마다 숨어서 창문 틈으로 내다본다.
검댕을 뒤집어쓴 아이 둘이 서성인다.
다래끼 난 눈을 비비던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엄마가 검은 철밥통에 흰 밥을 넣는다. 
때긴 검은 철밥통과 흰밥이 대조적이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세상이 슬프다.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마당에서
언니와 공기 놀이했다.
엄마~ 빨래를 
엄마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빨래를 쥔 허기져 가냘픈 아이들의 모습이 작아지다 없어졌다.
세상은 이상하다

엄마 몰래 집에서 나와 길 건너
신세계 백화점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또 올라가려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붙잡혔다. 
어린 남산골 샌님은 홍당무가 되었다. 
아빠가 연락처가 새긴 목걸이를 내 목에 걸었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3장 꼬마야

중학교 1학년 등교길, 만원 버스에 매달린 나를 등 떠밀어 버스 안으로 구겨 넣으려던 아버지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본인도 버스에 함께 올라탔다. 아버지는 나를 버스에 밀어 넣고 남산에 산책하러 가려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교무실로 가자. 앞장서. 음악 선생을 만나야겠다.”
“왜? 우리 담임은 물리 선생인데.”
“아이디어가 갑자기 생각났어.”
나는 교무실로 들어가 음악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운동복을 입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나보고 교실로 가라고 눈짓했다.
일 년 후, 음악 선생은 나에게 레슨을 해 달라고 부탁한 아버지를 학교로 오시라고 했다.
“제가 일 년 동안 지도했지만, 따님이 전혀 음악에 소질이 없습니다. 다른 재능을 찾아보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아버지는 음악 선생 옆에 앉은 미술 선생님에게 미술 지도를 부탁했다. 미술 선생님은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대학 갈 때까지 하루에 한 장씩 그렸다. 석고데생 한 장을 끝내야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미술대회는 부지런히 나갔다.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가는 하늘 밑, 푸른 에덴동산에서 그림이나 그리며 시간을 보내기엔 이브인 나에게는 고행이었다. 그림 그리는 척하며 곁눈질로 아담인 남학생들을 관찰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경복궁에서 실시하는 미술대회에 참가했다. 아이들은 모두 향원정을 그리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는 저쪽으로 가서, 저기 있는 화장실의 음습한 분위기를 살려봐라.”

이젤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수채화로 화장실을 그리고 있었다.  
“꼬마가 분위기 나게 잘도 그리네.”
등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뒤돌아봤다. 남학생의 장난기 섞인 반항적이면서도 슬픈 눈과 마주쳤다. 제임스 딘을 닮았다. 그도 이젤과 화구박스를 들고 있었다.
새침떼고 그림에 집중하려는데 아담이 가지 않고 계속 내 손놀림을 쳐다보고 있다. 손이 떨려서 더는 그릴 수가 없었다. 붓을 놓았다.
“미안. 안 볼게. 그려라.”
아담이 멀리 가지 않기를 바라며 대충 그려서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없다. 아쉽다. 미술 도구를 챙겨서 경복궁 정문에 도달했을 때. 
“꼬마야, 다 그렸어. 집에 가니?”
“왜 자꾸 꼬마 꼬마 하는 거예요. 나 꼬마 아니에요.”
“네가 하도 귀여워서 그래. 그런데 왜 다른 아이들은 경회루와 향원정을 그리는데 너는 구석에서 냄새나는 화장실을 그렸니?" 
“선생님이 저보고는 화장실을 그리랬어요.”

나는 몸을 홱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아담이 뒤쫓아 오는 것 같았다. 아니 뒤쫓아 와주기를 바랐다. 종로 2가에서 이태원 가는 23번 버스를 탔다.
뒷자리에 앉았다. 아담도 탔다. 내가 앉은 자리 앞으로 걸어와 섰다.
“너 어디 사니? 나와 방향이 같은 것 같은데. 너 중학생이지.
“아니에요. 고등학생이에요.” 
빨리 대답하고 그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봤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버지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른 얌전한 내 거동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너 또 까불다가 선생님에게 야단맞았구나?”
아담이 나타나는 날은 아버지가 좀 알아서 마중 나오지 말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아버지가 내미는 손을 마지못해 잡았다. 집 문안에 들어서서 문틈으로 내다보니 아담이 우리 집 앞에 잠깐 서 있다가 돌아섰다.

아담은 이따금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 
“꼬마야, 어디 가니?’ ‘꼬마야, 어디 갔다 오니?” 
하며 나를 놀라게 했다. 함께 그림 그리러 비원에 가자고도 했다. 아버지가 주위에서 맴도는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나에게 스케이트를 신기고 담요 위에서 걷는 연습을 시킨 후, 스케이트장에 데리고 다녔다. 스케이트를 잘 타게 될 즈음엔 친구들과 스케이트장에 갔다. 하루는 검은 바지 위에 검정과 빨간 굵은 체크무늬 모직 코트를 입고 스케이트를 쌩쌩 타고 있었다. 
“꼬마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깜짝이야. 아담이다. 놀라서 빙판에 넘어졌다. 그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며 주근깨 가득한 홍조 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너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다.”
얼굴이 더욱 빨개진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뭔가를 말해 분위기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가는 곳마다 알고 홍길동처럼 나타나는 거예요?“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 비밀이야.”
어느 날 교복을 벗은 아담을  봤다. 대학생이 됐나 보다. 청바지에 브라운색 가죽 재킷을 입고 머리를 길렀다. 멋지다. 나 같은 꼬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멋쟁이 대학생 여자 친구가 많을 것 같은 히피다. 
‘나도 대학에 꼭 들어가서 히피가 되어 그가 데이트 신청하면 못이기는 척 응해야지.’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다.

대학 입학식 전날, 나팔 청바지 위에 베이지색 짧은 코트를 걸쳤다. 높은 구두를 신고 거울을 봤다. 아버지가 걸어보라고 했다. 구두가 높아 무릎을 펴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담요 위에서 허리와 무릎을 펴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걷는 연습을 해 봐. 높은 구두를 신으면 키가 더 작아 보인다고 낮은 굽으로 사라니까 고집을 부리더니.” 

입학식 날 불편한 걸음걸이로 학교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꼬마야, 너 오늘 입학식에 가지? 축하한다. 키가 좀 컸네. 멋진데.”
“깜짝이야. 홍길동이야 뭐야 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사람을 놀라게 해요. 오늘 내 입학식이라는 것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내 말 잘 들으면 말해줄게.”

아담도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그리고 또 같은 버스로 갈아탔다. '같은 학교에 다니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는 나를 따라 입학식 하는 강당 안으로 들어와 뒷줄에 앉았다. 나는 뒷덜미가 따가워 안절부절못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강당을 나왔다. 아담이 다가왔다.
“꼬마야, 너 항상 아버지와 손잡고 다니더라. 나는 네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다렸어. 이제 대학생이니까 다방에 가도 되지?”
“이 대학에 다니세요.”
“아니. 그냥 너를 따라왔어. 어떤 녀석들이 네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나 보려고.”

대학 입학 후 아버지는 나를 버스정류장에서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알고 홍길동처럼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그가 안내하는 다방으로 따라갔다. 아담은 폼 잡으며 나에게 보라는 듯 히피 디제이와 인사를 나누고 몇몇 친구들을 소개했다. 죄다 히피룩이다. 나에게 쪽지를 주며 듣고 싶은 노래를 적으라고 했다. 나는 윤형주의 ‘비와 나’라는 노래를 적었다. 또 다른 외국곡도 신청하라고 했다. 나는 외국 노래는 잘 모른다고 했다. 
“내가 신청하는 노래 들어볼래, 너도 좋아할 거야.”
그도 신청 곡을 적었다.

‘내가 집과 가족을 떠났을 때
난 그저 아이에 불과했지.
낯선 사람들 틈에서
적막한 기차역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몸을 웅크리고.’

이것은 1969년 히트송 사이먼 앤드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권투선수(The Boxer)’ 가사다. 노래를 듣자마자 나는 노래에 빠졌고 아담에게 빠졌다. 빠른 리듬 속에서 폭죽 터지듯 나오는 뭔가 모를 슬픔, 깊은 수면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리듬이 무작정 좋았다. 친구들과 다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종이에 ‘The Boxer’라고 적어 신청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으로 테이블을 살살 두드리며 ‘라일라 라이, 라이 라라라’.

아담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입주 가정교사를 통해서였다. 가정교사와 그의 친구들이 어울려 노는 사이란다. 그녀는 아담에게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멀리서만 보겠다는 언약을 받고 나의 일정을 말해줬다고 했다. 

가정교사는 경기여고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를 다니는 시대를 초월한 엽기적인 여자였다. 한여름 그녀는 붉게 염색한 볶은 머리를 가슴골이 깊이 보이는 티셔스와 핫팬츠의 잘록한 허리선까지 늘어뜨리고 바삐 돌아다녔다. 그녀가 지나가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휘둥그레지고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곤 했다. 겨울에는 코트만 걸친 알몸으로 밤늦도록 돌아다니다 새벽에 들어왔다. 

“추운데 왜 코트 속에 옷을 입지 않고 다녀요?”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소재를 찾으러 다니는 거야. 소설가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해. 경험이 재산이지. 너는 몰라도 돼. 네 아버지에게 절대 말하지 마. 내가 책임지고 너를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면 될 것 아니야. 너는 입 다물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았지.”

지나간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가정교사와 외출했을 때 아담과 서너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둘은 아는 척하려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보고 볼 일이 있으니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담이 내 주위에서 맴돌며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말에 감동했다. 나를 좋아하는 증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더는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고 대학 생활을 즐기라고 용돈도 많이 줬다. 그런데 나의 아담은 늘 바빴다. 나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만나도 저녁 먹기 전에 헤어졌다. 그에게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내가 꼬마라서 부담스러운가? 아니면 멋진 걸프랜드가 있는데 그냥 나를 놀리는 건가? 

어떻게 하면 멋을 내 성숙한 여자처럼 보일 수 있을까? 잡지를 뒤적거리며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시간은 흘러 대학 1학년을 마무리하고 겨울 방학을 맞았다. 아담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꼬마야, 너희 집 앞인데 잠깐 나올래.”

나는 갑자기 만나자는 말에 당황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다. 

“내 친구 집이 조 아래야. 부모가 해외여행 중이라서 몇 날 며칠 모여 놀고 있어. 함께 갈래?”

아담은 살며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전기에 감염된 듯 몸을 떨며 움츠렸다. 그는 보통날과는 달리 상기된 표정이다. 사과 냄새 같은 술 냄새가 났다. 친구 집이라는 곳이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안전 구역이다. 따라갔다. 

골목을 따라 조금 내려가자 내가 이따금 지나다니는 집 문 앞에 아담이 멈췄다. 무거운 대문을 열고 들어가 정원을 가로질러 실내에 들어갔다.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운 넓은 거실에 예닐곱 명의 남녀가 흩어져 늘어져 있다. 모두가 취한듯했다. 마른 풀 타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이 크게 울렸다. 접해보지 못한 분위기다. 나는 머뭇거리며 문 가까운 의자 끝에 살짝 궁둥이를 걸쳤다. 편안히 앉으라며 집주인이 술잔을 나에게 주며 술을 따랐다. 나는 받아 마셨다. 워낙에 아버지와 반주를 많이 했기에 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담배를 권했다. 나는 아담을 쳐다봤다. 그가 피라고 했다.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하라는 대로 했다. 히피가 되려면 따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갈수록 분위기가 영 미심쩍다. 여자들과 이야기 좀 하려고 살피는데 한 여자가 남자와 부둥켜안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한 구석에서는 종이에 담배를 말아서 돌리며 피고 있었다. 나처럼 작은 여자가 갑자기 소리 질렀다.  
“물이야. 물이 나를 덮치려고 해. 불났어. 내 옷에 불이 붙었어. 나 좀 살려줘. 제발.”
옆 남자가 여자를 껴안고 비볐다. 그 가까이에 있는 남자는 몸이 굳은듯 움직임이 없다. 그 옆 또 다른 남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계속 웃었다. 
“하하하 하하 하하하 하하”

나의 맥박은 빨라지고 피부는 수축되었다. 몸이 쪼그라들며 미이라처럼 굳어졌다. 누워있던 시체가 관뚜껑을 열고  벌떡 나오듯  일어섰다. 아담이 내 손을 잡아끌어 앉혔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보듬으며 껴안았다. “모두가 미친 사람들 같았다. 집주인은 내 행동에 관심 없다는 듯 가느다란 담배를 한 모금 빤 후에 아담에게 줬다. 그가 한 모금 들이킨 후에 나에게 권했다.

“꼬마야, 별것 아니야. 피워 봐. 편안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을 할 수 있어.” 
나는 엄마와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문쪽을 보았다.

또 다른 여자가 한 남자에게 기대어 왼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집주인이 아담에게 귓속말했다. 아담이 수긍하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보통 일이 아닌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싹했다. 나는 내가 빨리 도망칠 수 있는 문을 확인하며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아담이 내 손목을 잡고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자 집주인이 또 아담에게 속삭였다. 아담이 여전히 망설이듯 머뭇거리며 내 표정을 살폈다. 
“야, 분위기 깨지마.”
갑자기 집주인이 으르렁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내 팔을 잡아서 일으켰다. 그리고 실내 안쪽으로 끌었다. 나는 뿌리쳤다. 아담이 일어나서 집주인을 말렸다. 아니 말리는 척했다. 말리는 강도가 약한 것이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 뜻에 내가 응해주기를 바라는 제스처였다. 순간,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고 확신했다. 

문 쪽으로 냅다 뛰었다. 문고리를 돌리려는데 집주인이 쫓아와 나를 밀치고 문을 잠갔다. 
“문 열어줘요. 집에 갈래요.”
아담이 집주인을 달래듯 뭔가 속삭였다. 순간, ‘다 계획적이고. 다 같은 한패다.’라는 또 다른 확신이 나를 더욱 울며 소리 지르게 했다. 집주인은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파로 걸어갔다. 아담이 문을 열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에게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눈짓했다. 나는 신발을 손에 쥐고 정원을 가로질러 문 쪽으로 냅다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육중한 대문을 밀치듯 열고 뛰쳐나왔다. 우리 집 앞에 다다라 멈췄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땡 갓이다. 

다정한 엄마와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손을 끌고 와서 저놈들을 그냥 가만히 두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처신해야 하는 성인이 됐다고. 성인이 된다는 것은 힘들게 뛰어야 하는 것과 비례하는가? 남자들과 데이트하려면 태권도를 배우고 낮은 신발을 신어야겠다고. 머리가 복잡했다. 혼란에 빠졌다. 그해 겨울은 무척이나 길었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아담에게 영원한 꼬마로 남기로 했다.”

Thursday, September 24, 2020

주홍 늪

“이 기차 로마 터미널 가는 거 맞아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막 떠나려는 기차의 마지막 칸을 잡아타며 남편에게 물었다.

“엄마~” 갑자기 근처 좌석에서 작은아들이 벌떡 일어나며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먼 타국의 기차 안에서 몇 달 만에 아이를 마주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한 학기 동안 피렌체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연휴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나흘 뒤 베니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아들을 난데없는 곳에서 맞닥뜨리니,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엄마, 나 지갑 잃어버렸어요.” “어쩌다가?” “소매치기당했어요.” “저런, 우리 호텔로 같이 가서 점심 먹고 유로로 바꿔 줄게.” 활짝 웃는 내 얼굴이 무색하게 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피렌체로 갈래요.” 아이의 확고한 말투와 표정 앞에 두말하지 못하고, 손에 달러를 쥐여준 채 그렇게 헤어졌다.

며칠 후 베니스에서 아이를 다시 만났다.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헤매야 했던 로마 여행과 달리, 아이가 안내하는 대로 따르는 길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아이는 어떤 돌발 상황도 부딪침 없이 순조롭게 받아들이며 길을 이끌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엄마, 별것 아닌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아요!”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아이는 무척 쿨해 보였다. 집에서 보던 아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엄마, 내가 필요하면 이메일 해요. 차오(Ciao).” 베니스 여행을 마치고 피렌체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더니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갑자기 낯선 창고에 홀로 갇힌 듯 가슴이 답답해지고 다리에 힘이 툭 빠졌다.
 
창밖으로는 사그라지는 황혼에 감싸인 주홍색 지붕들이 바다의 물결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그 지붕들 아래로 삶의 비애 같은 것들이 속삭이듯 다가왔다. 그 서글픈 빛깔 속에서, 유년의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생생한 주홍빛이 떠올랐다. 노란 장판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려고 팔딱거리던 금붕어들. 어린 나이였음에도 산다는 건 어항을 잃고 물도 없이 헐떡이는 금붕어 같은 절박함이라 느꼈던 걸까.

중학교 3학년, 사월로 기억된다. 내게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언니가 있다. 그날은 대학을 갓 졸업한 언니의 결혼식 날이었다. 식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두 이모가 집 문을 부술 듯이 헐레벌떡 들이닥치며 소리쳤다. “언니, 언니!” 늘 아파 누워 지내던 엄마는 겨우 몸을 일으켜 단장하고 맏딸 결혼식에 다녀온 참이었다. 피곤해 누워 있는 엄마를 이모들이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언니 일어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엄마를 부축하고 나를 앞세우며 어디론가 가자고 법석을 떨었다. 나는 극성스러운 이모들의 소동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숨을 죽였다. “이제부터는 네가 맏딸이니까 앞장서야 해. 따라나서!”

집 앞에 대기시켜 놓은 택시에 등 떠밀려 탔다. 엄마의 건강을 반씩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듯, 두 이모는 건강하고 성질이 불 같았다.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아픈 언니의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극성을 부리는 게 그녀들의 낙이었다. 오늘따라 이모들은 대물 낚시라도 성공한 듯 잔뜩 흥분해 있었고, 나는 일상을 벗어난 기이한 공기 속에서 밀려드는 불안감에 떨었다.

이모들이 도착한 아파트 단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짙은 회색빛 건물 외벽을 올려다보는데, 거대한 괴물과 맞닥뜨린 듯 섬뜩한 예감이 스쳤다. 첫 동 1층 오른쪽 집 앞, 이모들이 벨을 누르라며 내 등을 쿡쿡 떠밀었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버텼다. “어서 앞장서지 않고 뭐 해? 찾을 때까지 집집마다 벨을 눌러!” 이모들이 번갈아 내 등을 철썩 내려치며 재촉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 어디론가 숨고만 싶어 두리번거렸다. “너는 이제부터 맏딸이라는 걸 명심해. 아픈 엄마를 지켜야지.” 발을 질질 끌며 멈춰 설 때마다 이모들은 나를 끌고 밀며 다음 초인종 앞으로 밀어 넣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섯 번째 집의 벨을 눌렀을 때 마르고 순하게 생긴 여자가 문을 빼꼼히 열었다. “너 누구니?” 아무 말도 못 하고 거실 안을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빼는 순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아버지였다. 나를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 낯선 집에서 들려오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어버렸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나를 밀쳐내고, 성질 급한 두 이모가 여자를 매섭게 째려보며 문을 확 열어젖혔다.

거실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자꾸만 뒤로 물러섰고, 엄마는 아버지를 본 순간 모든 걸 체념한 듯 곁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획 하니 집을 나가버렸다. 허둥지둥 문밖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저 빤히 바라봐야 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나의 단조롭고 평온했던 어린 시절은 그날로 영영 끝이 났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여자가 이모들에게 대들었다. “제삼자들이 무슨 짓이에요?” “제삼자? 이 년이 입이 뚫렸다고 어디서 제삼자 타령이야! 너 오늘 혼 좀 나볼래?” 작은이모가 발돋움하며 여자의 머리채를 낚아챘고, 큰이모는 아귀처럼 달려들어 매질을 시작했다. 세 여자가 엉겨 붙어 거실과 문간을 뒹굴며 이리 쿵 저리 쿵 부딪쳤다. 가구들이 나동그라지고, 소란을 들은 이웃들이 문가로 기웃거렸다. 나는 들어가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문기둥 안쪽에 몸을 웅크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난장판이 된 거실 구석, 커다란 직사각형 어항 위에 눈에 익은 그림 하나가 보였다. 얼마 전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나의 수채화였다. 금빛 액자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얌전히 걸려 있었다. 경회루도 향원정도 아닌, 경복궁 구석진 곳의 쓸쓸한 주홍색 목조 건물을 그린 그림. 아버지가 액자에 넣어주겠다며 가져갔던 그림이 왜 이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걸까. 바늘에 찔린 듯 가슴이 콕콕 쑤셔왔다.

혹시나 엄마가 볼까 봐 아무 일도 없는 척 시선을 그림 밑 어항으로 돌렸다. 금붕어들이 주홍빛 날개를 바삐 짓쳐대고 있었다. 작은 지느러미를 다급하게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꼬리가 휘청이며 어항 안은 현란한 주홍빛으로 요동쳤다. 사태를 감지한 듯 툭 튀어나온 검은 눈알을 굴리며, 붕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입만 뻐끔거렸다. “어, 어…… 이모, 뒤에 어항이!”

버티는 여자의 힘에 밀린 큰이모가 어항 쪽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무너졌다. 순간, 콰장창 소리와 함께 어항이 바닥으로 박살 나며 주저앉았다. 물과 함께 쏟아져 나온 금붕어들이 깨진 유리 조각과 가구 틈바구니, 세 여자의 발밑에서 살겠다고 온 힘을 다해 펄떡였다.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빈 그릇에 물을 담아왔다. 엉겨 붙은 여자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몸부림치는 금붕어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주워 담았다. 엄마도 기운 없는 손을 들어 금붕어가 튀는 곳을 가만히 가리켜 주었다. “이제 그만해라. 사람 죽이겠다. 고만하지 못하겠니…….”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만류했지만, 이모들은 제 남편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신들의 한풀이라도 하듯 멈추지 않았다. 모두 몇 마리나 살았을까. 작은이모 밑에 깔려 허우적대는 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오직 주홍빛 생명을 건져내겠다는 일념으로, 집안 곳곳의 가구 밑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붕어들을 찾았다.

금붕어가 담긴 그릇을 품에 안고 아파트 복도 벽에 기대어 섰다. 구경꾼들이 에워싸며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전처가 죽었다더니 순 거짓말이었네.” “부인이 저렇게 서슬 퍼렇게 살아있구만!” “어린것이 참 불쌍하기도 하지.”

수군대는 아줌마 중 한 명이 나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소파에 주저앉아 맞은편 벽에 걸린 액자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아줌마가 주스 컵을 건네며 한숨을 쉬었다.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 액자에서 비껴간 내 시선은 다시 품에 안은 그릇 속으로 파고들었다. ‘금붕어 하나, 금붕어 둘, 주홍 셋, 주홍 넷, 주홍 다섯…….’

어항을 잃고 물이 없어 헐떡이던 그 절박한 주홍빛 늪이, 왜 이 먼 타국 피렌체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일까.

우리 부부는 피렌체와 친퀘테레를 여행하는 동안 아들에게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차오, 뉴욕에서 보자.] 쿨하게 아들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내고, 고요한 새벽 가방을 끌며 공항으로 향했다. 캐리어 바퀴가 돌바닥을 긁는 처량한 소리가 새벽 공기를 찢을 때마다 온몸에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어둠을 비집고 붉은 해가 떠올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선로 변에는 듬성듬성 피어난 개양귀비의 짙은 주홍색이 눈이 시리도록 늘어져 있었다. 고대 로마의 폐허 사이에 피어난 그 강렬한 주홍빛은, 마치 공회당 계단에서 동료들의 칼에 핏방울을 뿌리며 쓰러진 율리우스 시저의 혈흔처럼 흐드러져 있었다. 그 지독한 주홍빛이 나를 몽롱하고도 슬프게 자극하고 있었다.

뉴욕의 유랑자

세상이 잠든 새벽엔 생각이 샘물처럼 솟는다. 문뜩 어떤 생각이 잠에서 깨게 했다. 떠오른 것을 잊기 전에 적어 놓으려고 일어났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 나의 시선은 창밖으로 향한다. 8층 창밖, 저 멀리 허드슨강이 어둠 속에 침잠해 있다. 흐름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