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4, 2020

주홍 늪

“이 기차 로마 터미널 가는 거 맞아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막 떠나려는 기차 마지막 칸을 잡아타며 남편에게 물었다. 

“엄마~”  
갑자기 근처 좌석에서 작은아들이 벌떡 일어나며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TV 드라마 속에서나 우연히 만나는 일은 있어도 실제로 이런 먼 타국에서 몇 달 만에 아이를 만나다니! 한 학기를 플로렌스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연휴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아들과 베니스에서 나흘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난데없이, 너무 놀랍고 반가웠다.
"엄마 나 지갑 잃어버렸어요.” 
“어쩌다가?” 
“소매치기가” 
“저런, 호텔로 함께 가서 점심 먹고 유로로 바꿔 줄게.” 
활짝 웃는 내 얼굴이 무색하게 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플로렌스로 갈래요.” 
아이의 확고한 말투와 표정에 두말하지 않고 아이 손에 달러를 쥐여주고 헤어졌다. 

며칠 후 베니스에서 아이를 만났다.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던 로마 여행과는 달리 아이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니니 무척이나 편했다. 아이는 부딪침이 없이 순조롭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안내했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니니?” 
“별것 아닌 것으로 에너지 낭비하지 말아요!” 
한마디로 잘라 말하며 쿨한 척했다. 집에서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을 보며 거리감이 느껴졌다.  

“엄마 내가 필요하면 이메일 해요. 차오.” 
베니스 여행을 마치고 플로렌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손을 들어 인사하더니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갑자기 낯선 창고에 갇힌 듯 답답하고 다리에 힘이 죽 빠졌다. 창밖 사그라지는 황혼이 감싸는 하늘 아래 다닥다닥 붙은 주홍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눈앞에 펼쳐있다. 끝 간데없는 지붕 속에서 삶의 비애가 속삭이는 듯 나의 어린 시절 눈에 생생했던 주홍색이 떠올랐다. 

노란색 방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려고 팔딱팔딱 뛰던 금붕어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산다는 것은 어항을 잃고 물이 없어 헐떡이는 금붕어와 같은 절박함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중학교 삼 학년, 사월로 기억된다. 내게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언니가 있다. 그날은 대학을 갓 졸업한 언니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간 줄 알았던 두 이모가 집 문을 부수듯이 헐레벌떡 들이닥치며 소리쳤다. 
“언니, 언니.” 
항상 아파 누워 있던 엄마는 아픈 몸을 일으켜 몸단장하고 맏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와 누워 있던 참이었다. 
“언니 일어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엄마를 일으키고 나를 앞세워 어디론가 가자고 법석 떨었다. 나는 극성스러운 이모들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숨죽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네가 맏딸이니까 앞장서야 해. 따라나서” 

집 앞에 타고 와서 세워 놓은 택시에 등 떠밀려 탔다. 엄마의 건강을 뺏어서 둘이 노나 가지기라도 한 듯 두 이모는 건강하고 성질이 불같다. 매일 우리 집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아픈 엄마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극성부리며 사는 것이 그녀들의 낙이었다. 오늘따라 이모들은 커다란 물고기라도 낚아 올린 듯 더욱 흥분했다. 나는 뭔가 일상과 다른 분위기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엄마를 끌고, 나를 밀며 도착한 아파트 단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짙은 회색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자 거대한 괴물과 맞닥뜨린 듯 섬뜩했다. 첫 건물 1층 오른쪽 아파트부터 벨을 누르라며 내 등을 쿡쿡 떠밀었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싫다고 했다. 
“어서 앞장서지 않고 뭘 해. 아파트마다 벨을 눌러. 찾을 때까지.” 
이모들이 번갈아 내 등을 철썩철썩 내려치며 떠밀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며 어디론가 숨고 싶어 두리번거렸다. 
“너는 이제부터 맏딸이라는 것을 명심해. 아픈 엄마를 돌봐야 해.” 
내가 발을 질질 끌며 걷다가 멈추면 이모는 밀고, 멈추면 끌고 밀며 아파트 벨을 하나씩 누르라고 재촉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섯 번째 아파트 벨을 눌렀을 때 몸이 마르고 착하게 생긴 여자가 빼꼼히 내다봤다. 
“너 누구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빙룸 안을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빼는 순간 
“누구야?”  
아버지 목소리였다. 나를 애지중지하는 아버지가 낯선 집 안에서, 벼락을 맞은 듯 소스라쳐 놀라 몸이 굳어졌다. 머뭇거리며 뒤로 몸을 빼면서 이모들을 쳐다봤다. 
“여기지? 맞지?” 
성질 급한 두 이모는 나를 밀치고는 여자를 한동안 째려보다가 문을 확 열어젖히며 들어갔다. 엉거주춤 아버지가 일어났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자 체념한 듯 가까이 있던 의자에 철썩 주저앉았다. 
“너 뭐야?”  
이모들이 여자를 밀쳤다. 아버지는 나에게 뭔가 말하려다 획 나가버렸다. 허둥지둥 문밖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봐야 했던 나 자신을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나의 단조로운 어린 시절은 그날로 끝났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여자가 
“제삼자들이 무슨 짓이에요.” 
이모들에게 대들었다. 
“제삼자~ 이년이 뚫린 게 입이라고. 제삼자, 너 혼 좀 나볼래” 
작은이모가 발돋움해서 여자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큰이모는 아귀처럼 달려들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세 여자가 엉겨 붙었다. 이모들 힘에 부친 여자가 문간에서 리빙룸으로 이리 쿵 저리 쿵 떠밀렸다. 가구들이 나동그라졌다. 이웃 사람들이 문가에서 기웃거렸다. 나는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문기둥 안쪽에 몸을 웅크리고 서 있었다. 

리빙룸 입구 끝, 커다란 직사각형 어항 위의 눈에 익은 그림이 보였다. 엉거주춤 다가갔다. 얼마 전 내가 미술 대회에 나가서 상 받았던 수채화가 금빛 액자를 단정히 입고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걸려있다. 경회루도 아니고 향원정도 아닌 경복궁 구석 으슥한 곳에 있던 작은 목조 건물을 그린 그림이다. 아버지가 액자에 넣는다고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집에? 바늘에 찔린 듯 가슴이 콕콕 쑤셨다. 

혹시나 엄마가 눈치챌까 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림 밑 어항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붕어들이 주홍빛을 발하며 바쁘게 날갯짓했다. 배 앞쪽 작은 두 날개를 바삐 움직이면 뒤쪽 꼬리는 덩달아 크게 휘 젖혀져 어항 안은 수많은 주홍빛으로 현란했다. 금붕어들도 평상시와 다른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날갯짓이 더욱더 빨라졌다. 금붕어 입은 나처럼 낯선 곳으로 끌려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뻐금거렸다. 툭 튀어나온 검은 두 눈알은 난데없는 소동에 놀랐는지 바삐 굴렸다. 
“어, 어~ 이모, 어항이 뒤에.” 
저항하는 여자의 힘에 부친 큰이모가 뒤로 밀리면서 몸이 어항 쪽으로 무너졌다. 순간 어항이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금붕어들이 파도 타듯 어항 밖으로 한순간에 쓸려 나왔다. 금붕어들은 세 여자의 발 밑, 깨진 유리 조각과 가구들 틈에 흩어져 살겠다고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나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빈 그릇에 물을 담아 들고나왔다. 나동그라진 두 여자와 내려치는 작은이모 틈을 비집고 돌아다니며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금붕어를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주워 담았다. 엄마도 기운 없는 손을 쳐들어 금붕어가 튀는 곳을 가리켰다.  
“이제 그만해. 사람 죽이겠다. 고만하지 못하겠니?” 
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이모들에게 소리쳤다. 이모들은 씩씩거리며 그녀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한을 푸느라 멈추지 않았다. 모두 몇 마리가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작은이모 밑에 깔려 허우적거리는 여자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 눈은 주홍 잡기에 혈안이 되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구들 밑을 샅샅이 들여다봤다. 

금붕어가 담긴 그릇을 안고 아파트 복도로 나와 벽에 기대었다.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며 한마디씩 했다. 나는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시선을 금붕어 가까이 가져갔다. 놀란 금붕어들의 주홍색 붉은 불길이 솟아오르듯 요동쳤다.  
“전처가 죽었다더니! “웬일이래!” “부인이 멀쩡히 살아있잖아!” “어린 것이 불쌍도 하지” 

싸움을 구경하던 아줌마 중 한 여자가 사람들을 밀치고 나를 끌고 그녀의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다리에 힘이 죽 빠지며 피곤이 몰려왔다. 소파에 주저앉았다. 맞은편 벽 액자를 무심히 쳐다봤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아줌마가 주스를 담은 컵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며 한숨 섞인 소리로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 
액자를 쳐다보던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그릇에 눈을 박았다. ‘금붕어 하나, 금붕어 둘, 주홍 셋, 주홍 넷, 주홍 다섯…’ 

어항을 잃고 물이 없어 헐떡이는 금붕어와 같은 절박감으로 어두운 주홍 늪에서 방황하던 어린 시절이 이 먼 타국 플로렌스에서 생각나다니! 

우리 부부는 플로렌스와 친퀘테레 여행 중 더는 아이에게 연락도 만나지도 않았다. 
"차오, 뉴욕에서 보자."
쿨하게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고요한 새벽,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 가방 바퀴 소리가 돌바닥을 울렸다. 새벽을 찢는 처량한 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붉은 해가 어둠을 비집고 나와 환하게 밝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기차선로 변에 듬성듬성 핀 개 양귀비의 짙은 주홍색이 눈을 찌를 듯 하늘거렸다.
선명한 주홍 양귀비는 공회당 계단에서 동료의 칼에 피를 뿌리며 죽은 율리우스 시저의 혈흔인 양 폐허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몽롱하게 또 슬프게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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