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북클럽에서 읽은 책 외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 저에게 올해 최고의 책은 북클럽에서 읽은 룰루밀러 (Lulu Miller)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입니다.
서술력이 뛰어난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읽기 전에는 과학소설인가? 읽기 쉽지 않겠지? 라는 거부감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슬슬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놀랐습니다. 스릴러와 반전을 거듭하면서 흥미를 돋웠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연애 소설이 아닌가? 할 정도로 로맨틱하게 끝납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인물들은 실존 인물입니다. 이 책은 픽션, 논픽션, 에세이, 과학, 역사, 미스테리어스, 젠더, 우생학이 만든 사회 문제 등 모든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혼돈과 질서,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삶에 대한 사색을 담은 철학적 교훈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성장 이야기와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삶을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혼돈이다."라고 답한 것을 떠올립니다. 혼돈이라는 말은 이 책의 주제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말입니다. 저자는 이 말을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무질서와 혼돈 속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저자는 스스로 초래한 상실의 아픔인 7년간 사귄 떠나간 애인을 되돌려 보려는 희망의 끈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자연의 질서를 찾고자 했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그는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저자가 알아야 할 무언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조던에 관한 모든 책을 샅샅이 찾아 읽습니다. 저자는 자기는 못하는 무언가를 조던은 어떤 위기가 와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그의 삶을 보면서 자기 삶의 구원자로서 희망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를 알아갑니다. 하지만, 조던의 실패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혼돈을 인정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혼돈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습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19세기 과학자이자 분류학자입니다. 그는 수많은 물고기를 연구하고 이름을 붙이며, 자연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여러 번 좌절을 겪게 됩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그의 연구 표본들이 파괴되면서, 그가 쌓아온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다시 물고기를 분류하려 했지만, 룰루밀러는 이를 무의미한 질서에 대한 집착이라고 해석합니다. 조던은 분류학자 일뿐만 아니라, 우생학 운동의 주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류를 개선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고, 이는 후에 강제 불임 정책 등의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과학이 언제든 잘못된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 물고기를 분류하며 자연의 질서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물고기’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현대 분류학에 따르면, ‘물고기’라는 개념은 너무 광범위하여 물에 산다고 다 어류로 분류할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페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는 결론이 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 중 다수가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연 세계는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조던의 삶은 인간이 세상을 완벽하게 정리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연의 혼돈을 이기려 했지만, 결국 자연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저자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혼돈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태도고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리될 수 없으며,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완벽한 질서를 찾는 대신, 변화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깨닫게 해주는 철학적 책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혼돈이다."라고 답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완벽한 통제와 계획을 고집하는 대신,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조던의 연구는 훗날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드러났으며, 그가 주장했던 우생학은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례는 과학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며,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맹목적으로 권위를 신뢰하기보다, 항상 의문을 품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 스스로에게 주는 교훈을 요약해 봤습니다.
삶이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무너질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조던처럼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산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명료히 보게 해주는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고통을 달래며 자신의 무력감을 느낄 때 강박적인 수집에 의지한다. 수집은 폭발적인 도취감을 준다. 그러나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뀔 수 있다.
이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닐 수 있다는 열린 자세, 과연 우리 사회가 들이미는 정신적, 도덕적 잣대는 타당한 것인지, 데이비드가 주장한 생명체의 사다리는 얼마나 허구로 가득한 관념이었는지.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을 우리가 함부로 질서를 부여하고 범주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굳이 애써서 분류하며 선을 긋지 말자. 경계를 흐릿하게 둘 때 양면을 다 살피고 받아들여야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사람이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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