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4, 2022

뜻밖의 선물


 어릴 때 내가 공부를 못한 이유를 요즈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암기하는 것이 힘들고 재미없어 암기하지 않으려고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굳이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애써서 뭐할까? 그냥 한방에 머리에 박혀 입력되는 것이라야 내 것이 되지 않을까? 라는 의심도 한몫했다. 쓱 훑어만 보고 시험을 보니 점수가 나올 리 없었다. 

 잘 노는 것에 충실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군청색 교복 깃 위에 붙이던 흰 깃이 떨어져 나갔는지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십자가 놀이를 한다고 친구들에게 팔이 잡혀 교복 소매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한쪽 팔이 없는 교복을 입고 떨어진 소매를 휘저으며 어둠이 깔리던 저녁에 떡볶이집으로 달려가던 때가 그립다. 

 노느라 정신이 팔린 나는 선생님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반성문을 쓰곤 했다. 어느 날 방과 후 반성문을 쓰며 창밖을 내다봤다. 눈이 쏟아졌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 아카시아 꽃잎이 눈처럼 내렸다. 꽃향기에 취해 꽃잎을 입에 담으려고 입을 벌리고 운동장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물론 선생님에게 귀때기를 잡혀 끌려가 반성문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노는 틈틈히 소설책은 많이 읽었다. 한번 책을 잡으면 밥도 먹지 않고 읽었다. 내가 책을 손에 쥐면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형제 많은 친구 집에 가서 먹고 놀라며 책을 감추곤 했다. 

 엄마는 내가 5살 때부터 아파서 늘 누워계셨다. 나와 놀아 줄 수 없는 엄마를 쳐다보는 아픈 마음을 주인공들과 공유할 수 있는 책이 나의 놀이터였나 보다. 

 놀던 습관은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다. 왜 그렇게 춤이 추고 싶었는지? 디스코 텍에서 몸을 너무 흔들다가 장이 꼬여 앰블런스에 실려 갈뻔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음악만 들리면 몸은 나도 모르게 흔들린다. 남편은 조신하라며 흔들리는 내 몸을 쿡쿡 찌르지만 내가 원하는 어릴 적 꿈은 백댄서였다. 또 다른 원하는 것은 바텐더였다. 백댄서는 몸매가 받쳐주지 못해서 포기했다. 바텐더는 가능성은 있었는데 바삐 살면서 하루하루 미루다가 부엌에서 남편을 접대하는 바텐더로 주저앉았다. 

 출석률이 모자랄 것을 늘 걱정하면서도 학교에 가기 싫었던 대학 시절, 그나마 4년동안 한 달에 두 권씩 책은 읽었다. 그리고 100권을 채우고 졸업했다. 졸업 후엔 부모 떠나 철이 조금 들었는지 먹고 살려고 애쓰며 허덕였다. 그러다 보니 50 훌쩍 넘었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허덕이며 살아야 할까?’ 
회의를 느낄 즈음 온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의사를 만났다. 우울증세가 보인다며 운동을 하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아이들 키우면서는 책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책에 빠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다치면 일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이 크고 난 후 책을 읽으려 했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동네 도서실 북클럽을 기웃거리며 방황했다. 영어로 주절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독후감을 듣는 것도 짜증이 날 즈음 한국말로 하는 북클럽에 들어갔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북클럽은 버벅대던 영어로 마지못해 참석하며 축 늘어졌던 나를 짜릿짜릿 감전하듯 쑤셨댔다. 북클럽 회원들과 적당히 놀며 책이나 읽어야지 했는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로 시작하는 카뮈 소설 ‘이방인’ 첫 문장이 나를 쳤다. 평생을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던 엄마가 곧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사형수가 죽을 날을 받아 놓고 기다리듯 늘 가슴 한켠에 웅크리고 나를 짓눌렀다. 유학 시절 엄마의 죽음을 안 것은 돌아가신 지 두 달 후였다. 아픔을 기억하고 표현하기 두려워 파묻어 버리고 모른 채 방황했던 나는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에게 빠졌다. 

 카뮈의 단편 ‘손님’에서도 황량한 광야에서 점보다 작은 살인자와 그 살인자를 죽음 아니면 삶으로 인도해야 하는 주인공의 갈등은 하루도 안 되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스스로 길을 찾으려는 고통의 시간이 왜 그리 몇 갑년을 지난 듯 길게 느껴졌는지? 

 인생의 마라톤 경주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조바심치며 선두자의 등을 보며 띄기만 할 것이 아니라 멈춰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불교와 철학책을 뒤적거렸다. 왜 친정아버지가 나에게 철학을 공부하기엔 머리가 따라주지 않으니 그나마 철학 다음인 예술을 전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는지를 이해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이따금 한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의 답변을 찾기 위해 우선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빠져나가는 내 머릿속에 그 지식이 남아있을 리 없다.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기억나지 않는 지식을 표현할 수 없어 불편하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다행이도 요즈음은 기억하지 못한 지식을 구글링 하면 볼 수 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는데 뭔가는 얻어야 하지 않을까? 골똘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작가의 지혜를 내 생활 여러 방면에 응용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꽤나 삶이 재미있고 즐겁다. 

 어릴 적 자주 쓰던 반성문은 유학 시절 아버지에게 일주일에 한두 통 쓰는 편지로 습관적으로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글쓰기는 이어졌다. 글을 쓰려고 앉으면 내가 겪었던 가슴 아픈 순간이 떠오른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를 꺼내어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고름을 짜내어 상처를 치유하듯 아픔이 사라진다. 쾌유해진 나는 서서히 변화하며 자유로워진다. 

 나 혼자라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 읽어야 할지 몰라 헤맬 텐데 수 북클럽의 김미연 회장님이 초빙 강사분들과 의논해서 좋은 책을 읽게 해준다. 읽을 책을 정리 정돈해 바로 읽을 수 있게 밥상을 차려주는 식이다. 나는 그저 수저를 들고 잘 먹고 소화 잘 시키고 건강하게 내일에 몰두하면 된다. 

 쉽게 수저만 들고 먹을 수 있게 수 북클럽을 마찰 없이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김미연 회장님의 무단한 노력이 있다. 수면 위에서 평온해 보이는 오리도 물속에서는 발길질을 수없이 하듯이 회장님은 북클럽 회원이 책에만 전념하도록 항상 동분서주 애쓴다.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으로 결정된다.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남편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 아이들 또한 운 좋게 잘 만났다.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다. 진정으로 감사하다면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그들에게 매달려서는 안된다. 가족의 시간과 에너지를 축내지 않게 나 자신의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수 북클럽의 김미연 회장님,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며 성장하는 회원님들 그리고 강사님들과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선물을 풀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삶에 응용하고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을 기다리며 마음을 설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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